로마서 5장 7–8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람은 의인을 위해 죽기도 어렵고, 선인을 위해 용감히 죽는 일도 드물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귀한 일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의 죽음은 귀하게 기억된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보다 훨씬 더 깊고 충격적인 사랑을 드러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내어주신 대상은 의인도 아니고 선인도 아니었다.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자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자가 아니라 자기 의를 세우며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이것이 복음의 충격이다. 사랑받을 만한 자를 사랑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주님은 원수를 위해 죽으셨다.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해, 죄인을 위해, 하나님을 떠난 자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주셨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과 율법의 계산을 넘어서는 사랑이다.
바울은 이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표현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만 선언된 사랑이 아니다. 그 사랑은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 확증되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고, 그 아들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의 가장 분명한 증거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확실한 표지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모든 것의 끝처럼 보인다. 존재가 사라지고, 영광과 권세와 자랑이 모두 끊어지는 가장 두려운 자리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생명을 주는 죽음이었다. 주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었다. 주님의 죽으심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났고, 그 사랑 안에서 죄인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완전한 자기 계시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본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시는 분이 아니시지만, 죄인을 버려두시는 분도 아니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드러났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본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고, 그 말씀을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이루셨다.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시는 분이다. 예수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보여준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그대로 드러내셨고, 우리는 그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을 배우게 된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 사랑을 정말 알고 있는가.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있는가. 십자가를 익숙한 종교적 상징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십자가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다. 내가 사랑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주어진 은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랑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선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죽으셨고, 원수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셨으며, 그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이 사랑을 받은 자는 이제 그 사랑을 증거하고, 그 사랑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