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HMM 나무호 피격 사건과 관련해 공격에 사용된 비행체가 이란산 대함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비행체 잔해에서 이란산 터보제트 엔진과 유사한 형태가 확인됐고, 일부 부품에서는 이란 제조사 각인으로 추정되는 표시가 발견됐다는 설명이었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별관에서 HMM 나무호 사고 조사 결과 브리핑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정부는 국방과학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진행한 현지 조사와 국내 정밀 분석 결과를 종합해 공격 비행체의 엔진, 탄두, 화약, 기체 잔해, 전자기판 등을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박 차관은 엔진 분석 결과에 대해 “이란산 터보제트 엔진과 유사했다”며 “부품에서 이란의 제조사 각인으로 추정되는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탄두와 기체 잔해에서도 이란산 대함미사일 계열과 유사한 특징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번 발표는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 중이던 HMM 나무호가 미상의 비행체 2기에 의해 약 1분 간격으로 두 차례 공격을 받은 지 20여 일 만에 나왔다. 당시 나무호에서는 화재가 발생했고, 선체 일부가 크게 파손됐다.
◈ 엔진·탄두·기체 잔해 분석서 이란산 대함미사일 정황 확인
정부 조사에 따르면 첫 번째 공격에 사용된 비행체의 탄두는 폭발하지 않은 불발탄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됐다. 박 차관은 “탄두의 경우 형태가 다소 온전한 상태인 불발탄으로 추정됐다”며 “이란 대함미사일 누르 또는 카데르의 탄두 형상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화약 성분에서는 완전히 폭발하지 않은 고폭 화약물질이 확인됐다. 기체 잔해는 하늘색 계열로 도색돼 있었는데, 정부는 이 색상과 도장이 이란산 대함미사일 누르 계열에서 나타나는 특징과 같다고 설명했다. 전자기판 잔해는 약 20~30년 전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됐으며, 생산 시기를 고려할 때 구형 누르 미사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됐다.
박 차관은 “국방부에서는 현장 조사에 이어 엔진, 탄두, 화약, 기체 등의 비행체 잔해물을 분석했다”며 “나무호는 총 두 차례 미상 비행체의 공격을 받았고, 첫 번째 탄두는 불폭, 두 번째 탄두는 기폭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만 공격이 시작된 지점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시 HMM 나무호와 이란 내륙 사이의 거리는 약 90~100㎞였으며, 공격체가 대함미사일이었다면 비행 시간은 약 6~7분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두 발의 비행체는 함께 발사된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었다.
◈ “여러 증거가 이란 향해”… 공격 주체 특정에는 신중
브리핑에 함께 참석한 류윤상 해군제독은 공격 의도와 관련해 “공격 주체와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두 발을 쐈다는 것은 피해를 주겠다는 의도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두 차례 공격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우발적 접촉이나 단순 오발보다는 선박에 실질적 피해를 입히려는 성격이 있었다는 판단이었다.
박 차관은 공격 배후가 이란인지 묻는 질문에 “여러 증거가 이란을 향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공격 주체를 이란 정규군이나 혁명수비대 등 특정 조직으로 단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란 내부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주체를 확정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고의성 여부에 대해서도 정부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박 차관은 “고의성은 확정하기 매우 어렵다”며 “주관적 영역과 관련이 있어 그쪽에서 인정하지 않는 한 고의성을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공격체의 기술적 출처와 성격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공격 주체와 명령 체계, 고의성 여부 등 외교적·법적 책임과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 외교부, 주한이란대사 초치… 강력 항의와 재발방지 요구
외교부는 이날 저녁 주한이란대사를 초치해 HMM 나무호 피격 사건에 대한 정부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강력히 항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재발 방지를 포함한 책임 있는 조치를 이란 측에 요구할 방침이었다.
박 차관은 이란 측에 강한 규탄 메시지를 전달하고 사과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선박 안전, 재외국민 보호 관련 소통도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남아 있는 한국 관련 선박 25척과 선원들의 안전 문제를 놓고 이란 측과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양수산부도 관계기관과 관련 정보 및 동향을 실시간으로 점검하며 해당 선박들에 안전수역 이동 등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었다.
박 차관은 “호르무즈 선박, 선원 안전 문제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계속 협의하고 있다”며 “호르무즈에 있는 모든 선박에 대한 자유로운 항행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란뿐 아니라 유관국에도 이야기하고 있고 협조를 요청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정부 “사실 확정 뒤 가장 이른 시점에 공개”… 미국과도 정보 공유
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 발표가 확인된 사실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알리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박 차관은 발표 배경에 대해 “사실이 확정된 시점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투명하게 언론과 국민에 보고드린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미국과의 정보 교류도 이뤄졌다고 밝혔다. 박 차관은 “미국 측과 정보 교류 부분은 긴밀한 소통을 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해서 우리 자체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확정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국방과학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한 국방 분야 전문가들을 현지에 파견해 HMM 나무호 잔해물에 대한 현장 조사와 기술 분석을 진행했다. 이후 15일부터는 비행체 엔진 등 주요 잔해를 한국으로 옮겨 국방과학연구소 등에서 정밀 분석을 이어갔다.
선체 피해도 상당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에 따르면 HMM 나무호의 좌측 선미 외판은 폭 약 5m, 선체 내부 방향으로 깊이 약 7m까지 훼손됐다. 선체 내부 프레임은 안쪽으로 휘어졌고, 외판 일부는 바깥 방향으로 돌출되거나 굴곡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한국 선박과 선원 안전 문제를 다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HMM 나무호 피격 사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란 측에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한편, 호르무즈 해협 내 한국 선박의 안전 확보와 자유로운 항행 보장을 위해 유관국과의 협의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