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가 선교를 하지 않아 핍박을 받았다는 주장은 과연 옳은가라는 질문으로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다. 예루살렘 성도들이 핍박받은 것이 선교의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사도행저 7장 마지막 부분에는 유대 지도자들이 모인 공회에서 담대히 그리스도를 전하던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 그 후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일어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스데반의 죽음으로 핍박이 일어나기 전에도 예루살렘에서는 성도들이 많은 핍박을 받았다. 핍박을 받아야 선교를 한다는 가설이 맞으려면 제자들이 핍박을 받던 그때 바로 선교를 해야 하지 않았을까. 핍박 받는 상황에서도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면 핍박을 받아야 선교를 한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어렵다.
손창남 – 사도행전을 선교적으로 읽으면 두 모델이 보인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인간의 현실적 계산을 뛰어넘는다. 하나님의 최선의 시간은 인간이 가장 무능할 때다. 인간의 계산이 나오지 않을 때가 바로 하나님의 시간인 것이다. 인간의 계산과 능력으로 우리가 무엇을 이루려고 할 때 하나님은 일하지 않고 기다리신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은 요단강 범람의 수위를 바라보는 대신 하나님 말씀의 신실성에 집중한다. 나는 어릴 적에 친구들과 연날리기를 자주 했다. 연을 하늘로 높이 날리다가 실이 엉켜 도무지 풀 수 없었을 때 영영 풀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실뭉치가 어른들 손에서는 술술 풀어지곤 했다. 내 힘으로는 도무지 풀 수 없는, 아무리 크고 대단한 문제라도 하나님 손에 가져다 놓으면 다 풀릴 줄로 믿는다. 난제 앞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 “하나님, 제 힘으로 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옳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세요”라고 고백하며 나의 두 손을 들고 모두 맡기자.
이기용 – 진짜입니까?
‘예언’은 미래의 일어날 사건을 미리 말하는 것이다. 고대의 종교나 지혜자들의 미래에 대한 예언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남겨진 기록이 있고, 그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은 책이나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일시적이나마 전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선지자가 죽으면 그 선지자와 같은 인물의 등장은 찾기 어려웠고 그저 역사 속에 잠들었을 뿐이다. 성경의 예언이 다른 예언들과 다른 것은 이스라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예언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 예언한 내용들이 성경에 4천 년 이상 그 기록들이 보관되었고, 그 기록들이 시간이 흘러 그대로 예언이 성취된 것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자, 성경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다른 특징이다. 선지자가 죽거나 그 사명을 마쳐도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선지자를 택하여 이스라엘의 미래의 사건과 운명을 예언과 성취를 계속해서 수천 년을 이어가고 있다.
조하놐 - 하쉠 예슈아 : 내일이 본 이스라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