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
강태광 목사

1985년 5월 14일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성경공부를 도와주던 루스 펠케(78) 할머니를 여고생 4명이 찾아갑니다.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에 할머니는 선뜻 문을 열고 그들을 집안으로 들였습니다. 그 순간 15세의 소녀 폴라 쿠퍼는 꽃병으로 할머니의 머리를 내리칩니다. 쓰러진 할머니가 주기도문을 외우자 쿠퍼는 준비했던 부엌칼로 할머니의 팔과 다리에 칼질하고, 복부를 33차례 찔렀습니다. 이렇게 해서 네 소녀가 훔친 돈은 10달러였다.

앳된 소녀들의 잔혹한 살인은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재판부는 공범 3명은 25~60년형을, 주범 쿠퍼는 사형을 선고합니다. 당시 인디애나주에선 10세 이상은 사형이 가능해 쿠퍼는 최연소 사형수가 됐습니다. 쿠퍼 구명운동이 일어나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소녀 사형수를 위한 구명운동에 200만 명이 참여합니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펠케 할머니를 기억하는 인디애나주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특히, 자신들에게 성경공부를 인도해 준 할머니를 살해한 범행에 분노가 대단했고, 쿠퍼의 감옥 생활도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심지어 간수들과 자신의 독방에서 성관계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임신 반응 테스트를 받기도 했습니다. 코너에 몰린 쿠퍼는 모든 희망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을 포기한 쿠퍼에게 예상 밖의 구원의 손길이 펠케 할머니의 손자 빌 펠케로부터 왔습니다. 빌도 다른 유족들처럼 분노하면서 범인의 사형을 원했었지만, 쿠퍼의 사형 선고 후에 빌은 악몽과 불안에 시달립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살폈습니다. 문득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쿠퍼를 용서하고 오히려 품어 주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악몽이 사라지고 불안도 사라집니다.

빌은 용기를 내어 쿠퍼를 찾아갑니다. 할머니를 위해, 자기 마음의 평안을 위해 쿠퍼를 용서합니다. 결심대로 용서를 실천해 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빌은 용서가 주는 축복을 누립니다. 용서가 자신에게 큰 선물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빌은 '가해자를 용서하는 살인 피해자 유족회'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매년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교제하면서 상처를 보듬는 자리를 갖습니다. 용서의 축복을 누리게 하는 활동입니다.

용서가 무엇인가요? 용서에 대한 부담을 갖고 사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용서를 어렵게 생각합니다. 용서가 쉽지 않은 것은 용서의 개념문제입니다. 테네시 주립대학교 캐서린 로울러 교수팀은 용서를 연구했습니다. 이 연구팀의 중요한 소득은 '용서의 개념' 정리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캐스린 교수 연구팀이 주장하는 사실은 용서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용서라는 개념에 중요한 합의점이 있긴 하지만 용서에 대한 보편적인 개념 설정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용서의 의미를 정리하고 다음 주에 신학에서의 용서의 개념을 간략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먼저 심리학에서 말하는 용서의 의미를 소개합니다.

첫째, 용서는 상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상처가 없다면 용서도 필요 없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용서라는 선물은 상처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의 과정을 통해서 상처가 치유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과정을 시작하려면 자신에게 있는 상처의 아픔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용서는 고통을 이기는 과정입니다. 용서는 사건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용서는 상처의 아픔을 잊어가며 이겨가는 과정입니다. 용서가 과정이라는 점에서 용서를 작정한 용서(Decisional forgiveness)와 감정적 용서(Emotional forgiveness)로 구분합니다. 감정적으로 완전히 용서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용서를 결심했다면 이미 용서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적으로 용서가 되지 않아도 용서를 작정해야 합니다.

셋째, 용서는 원한을 극복한 승리입니다. 용서는 가해자를 향한 분노와 복수심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용서는 원한과 증오를 이긴 것입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종종 원한을 품고 삽니다. 그 원한으로 말미암아 상대가 고통을 당하거나 복수심에 사로잡혀 살게 합니다. 용서는 원한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원한과 복수의 사슬에서 벗어납니다.

넷째, 용서는 새로운 관계의 설정입니다. 용서는 나에 대하여, 가해자에 대하여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과정입니다. 용서는 가해자를 더 이상 가해자로 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그 사람이 가해자가 아니면 나는 절대 피해자가 아닙니다.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면 인생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여기서 가해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관계의 개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해자를 마음에서 놓아주는 것입니다.

용서의 유익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용서에 대한 부담 때문입니다. 그러나 용서를 조금은 가볍고 편안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용서는 과정입니다. 감정의 깨끗한 정리나 관계 회복 같은 부담을 버리고 용서를 결심하면 용서는 시작됩니다. 용서를 결심하는 순간부터 용서의 과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표)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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