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한 박사

우리나라가 지난 달 1인당 소득 2만달러에 인구 5000만명을 갖춘 ‘20-50 클럽’에 가입했다. 한국이 지난 6월 23일 인구 5000만명 돌파하여 세계 7번째 ‘20-50 클럽’(1인당 소득 2만달러-인구 5000만명)에 진입했다(2012년 5월 28일 조선일보 1면, 6월 23일 1면 보도).

‘20-50클럽’이란 1인당 소득 2만달러(20K, K는 1000을 나타냄), 인구 5000만명(50M, M은 100만을 의미)을 동시에 충족하는 나라들을 뜻한다. 국제사회에서 1인당 소득 2만달러는 선진국 문턱으로 진입하는 소득 기준, 인구 5000만명은 인구 강국과 소국을 나누는 기준으로 통용된다.

‘20-50 클럽’ 가입은 소득·인구 모두 선진국 영국의 진입 이후 16년 만이며 2차대전 후 독립국 중 유일하다. 한국보다 앞서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20K)와 인구 5000만명(50M) 이상을 달성하여 ‘20-50 클럽’에 가입한 나라는 일본(1987), 미국(1988), 프랑스·이탈리아(1990), 독일(1991), 영국(1996) 등 주요 6개 선진국뿐이다. ‘20-50 클럽’ 가입은 1996년 영국 이후 세계에서 처음 나온 사례인 것으로 확인됐다.

‘20-50 클럽’ 가입은 한국이 확실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여태까지 선진국 문턱에 서 있었는데 이제 선진국에 진입했다니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클럽 국가들은 일단 2만달러, 5000만명의 벽을 넘은 이후에는 이 수준을 대부분 유지했고, 오히려 인구와 국민소득이 모두 성장했다. 독일이 1990년대 초반 통일에 따른 충격으로 잠시 국민소득 2만달러 아래로 내려갔다가 회복한 것이 유일한 예외다.

따라서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잘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2008년 미국(리먼 파산)발 경제위기, 2010년 유럽(PIGS, 포르투칼,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발 경제위기를 잘 극복하여 2012년 6월 ‘20-50클럽’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한국은 2011년에 G20의 의장국의 역할을 하였고, 올해 4월에는 32개국이 참가하는 세계핵안보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여태까지 반만년 역사에서 세계사의 주변국에 머문 처지에서 벗어나 이제 세계사의 중심국으로 점차 부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50클럽’ 진입국은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호주(2380만명), 캐나다(3513만명) 등은 소득은 높지만 낮은 인구성장률을 감안하면 인구 5000만명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 중국(4383달러), 인도(1406달러), 브라질(1만717달러), 러시아(1만351달러), 멕시코(9166달러) 등은 인구 규모는 크지만, 이 인구들의 소득을 모두 끌어올려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돌파하기는 버거운 상황이다. 지난 1996년 영국이 진입한 이후 16년 만에 한국이 처음으로 진입한 것을 보면 규모와 수준에서 모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20-50클럽’은 일단 진입하고 나면 후진 기어 없이 지속적으로 더 전진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일본(1992년)을 시작으로 이탈리아(2004년)까지 진입국들은 모두 예외 없이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돌파했다. 특히 독일은 소득이 훨씬 낮았던 동독을 흡수하고도 통일 후 5년째 되는 1995년에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1945년 해방 후 67년만에, 1953년에 휴전한 한국전쟁(1950-1953년)후 전국토가 황폐화된지 59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필자는 해방 이후 첫 해에 태어난 한국의 시민이요 기독교인으로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다음 몇 가지를 적어 본다.

첫째, 한국의 이러한 성장과 발전에는 한국 기독교의 역할이 컸다. 기독교는 감리교 장로인 초대 대통령 이승만, 윤보선, 김영삼, 이명박 등을 배출하였다. 이승만은 냉전 시대에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유엔 인정의 합법적 정부를 출범시켜서 자유민주국가의 초석을 닦았던 것이다. 그는 정동제일감리교회의 장로직을 가진 신자로서 초대 대통령으로서 훌륭한 결단을 하였다.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설립하고자 했던 그의 결단이 오늘날 한국을 단군 이래 최고로 잘 살게 된 나라로 이끌었던 것이다. 한국 사회가 해방 이후 남북으로 분단되어 이념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이승만, 김구, 이시영 등은 기독교적 이념으로써 한국사회를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정의가 지배하는 나라로서 초석을 닦았다. 윤보선은 안국동에 위치한 안동교회 교인으로서 4.19 혁명 이후 어려운 시기에 민주정부를 이끌었다. 김영삼은 충현교회 장로직을 가진 신자로서 민주화 투사로서 군사정치를 민주화하는 데 공헌하였고 최초의 문민정부 수립, 군부 일심회 해체, 경제실명화 등의 공적이 있다. 김대중은 천주교 신앙을 가진 자이며 그의 부인은 감리교 장로직분을 가진 자로서 한국정치의 민주화에 공헌하였다. 이들 역대 대통령들은 기독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한국의 지도자로서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가 되고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밑거름의 역할을 하였다. 이명박은 소망교회 장로츨신으로서 어려운 세계경제의 침체 속에서 경제를 잘 운영하여 한 유럽 FTA, 한미 FTA 체결, G2,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등으로 국격을 높이는 데 공이 있는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한국 기독교는 무신론과 인권말살의 공산주의 이념을 차단하면서 한국사회를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지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국 기독교는 한국전쟁 시에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다가 많은 순교자를 내었다. 한국 기독교는 오늘날 북한에서 보다싶이 가장 많은 박해를 받았던 종교다. 박해받은 북한 기독교인들은 남하하여 남한 반공세력의 중추가 되었다. 이들의 반공은 체험적 반공주의였다. 이러한 체험적 반공정신은 한국사회가 이념체제적으로 안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해방 후처럼 좌파와 우파로 나누어져서 사회적으로 혼란에 빠졌더라면 오늘날의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구권의 사회주의 정권은 1989년에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브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 개방(글라스노스트) 정책에 힘입어 무너졌다. 그 이듬해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되었고,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연방은 1991년 12월 31일 해체되었다. 중국도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하고, 1992년 공산주의 정치체제에 시장경제제도를 헌법에 도입하면서 오늘날 중국은 개혁개방 40년만에 G2(미국과 중국)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오늘날 북한만이 세계적으로 사라져가는 공산주의 이념을 세습적으로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 국민들을 가장 어려운 도탄에 빠지게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기독교는 무신론과 인권 말살(抹殺)의 공산주의 이념에 대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공헌해왔다.

셋째, 한국 기독교는 청교도적 정신을 우리 사회에 가져다주었다, 청교도 정신이란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순례자의 삶의 태도를 말한다. 청교도 정신이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지키고, 자녀 교육에 힘쓰고, 매일의 삶을 하나님 면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초창기 청교도 선교사들(베어드,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렌튼 등)을 통해서 이러한 사상을 받아서 한국사회가 지식과 산업을 일으켜 근대화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것은 기독교 학교 교육 선교, 기독교 병원 선교, 기독교 실업인, 기독교 법조인, 기독교 농민운동(가나안 농민 학교 등)를 통하여 전개되어 결실을 맺게된 것이다. 이러한 청교도 정신을 계승한 한국교회의 수많은 신실한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각 교회와 삶의 처소에서 예배와 각종 기도회로 모이고 말씀 공부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서 살려고 하는 그 영성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번영하는 토대가 된 것이다.

넷째, 한국 기독교는 이제 북방선교와 세계기독교 쇄신에 눈을 돌려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선진화된 국력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로운 한반도의 통일에 기여하고, 통일된 한국이 만주지역과 중국, 중앙아시아 등의 미개척분야인 북방선교에 대한 새로운 기획과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은 끝났다. 한국기독교는 한국정부가 선진사회라는 체제안정을 토대로 관용적 태도로써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인도하도록 매개 역할을 해야 한다. 무너졌던 북한 교회를 재건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 이후 시대를 맞고 있는 서구와 미국의 기독교에 대하여 한국의 청교도적 기독교를 다시 활성화 하여 이들에게 기독교의 새로운 모습을 재수출해주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한국 기독교는 철저한 자기 성찰과 더불어 인격적인 하나님 앞에서 거듭나는 지도자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해 나가는 데, 한국교회는 그 양적 성장에 걸맞지 않는 지도자들의 각종 비리 때문에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다. 한국의 정치권은 구태의연하고 경제성장에 상응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5년마다 새 지도자(대통령)를 선출하게 되니 정치는 그래도 민주화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은 엘리트를 잘 규합하여 연구와 제품생산에 힘쓰게 됨으로써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그런데 교계는 그러하지 못하다. 한국 교계는 일부 대형교회에서 매관 매직과 세습으로 얼룩져 있어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가장 보수요 정통이라는 신학대학의 직원인사에 각종 뇌물사건이 일어나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내년(2113년)에는 부산 벡스코에서 WCC 총회, 2014년에는 서울 코엑스에서 WEA 총회를 개최하여 그 국제적인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즈음에 있다. 한국 기독교는 그 동안 높아진 국격(國格)에 맞추어 다시 한 번 지도자들부터 솔선수범하여 국제적으로 높아진 스스로의 위상에 걸맞는 삶과 선진사회를 향한 지도력을 보여주었으면 한다우리나라가 지난 달 1인당 소득 2만달러에 인구 5000만명을 갖춘 ‘20-50 클럽’에 가입했다. 한국이 지난 6월 23일 인구 5000만명 돌파하여 세계 7번째 ‘20-50 클럽’(1인당 소득 2만달러-인구 5000만명)에 진입했다(2012년 5월 28일 조선일보 1면, 6월 23일 1면 보도).

‘20-50클럽’이란 1인당 소득 2만달러(20K, K는 1000을 나타냄), 인구 5000만명(50M, M은 100만을 의미)을 동시에 충족하는 나라들을 뜻한다. 국제사회에서 1인당 소득 2만달러는 선진국 문턱으로 진입하는 소득 기준, 인구 5000만명은 인구 강국과 소국을 나누는 기준으로 통용된다.

‘20-50 클럽’ 가입은 소득·인구 모두 선진국 영국의 진입 이후 16년 만이며 2차대전 후 독립국 중 유일하다. 한국보다 앞서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20K)와 인구 5000만명(50M) 이상을 달성하여 ‘20-50 클럽’에 가입한 나라는 일본(1987), 미국(1988), 프랑스·이탈리아(1990), 독일(1991), 영국(1996) 등 주요 6개 선진국뿐이다. ‘20-50 클럽’ 가입은 1996년 영국 이후 세계에서 처음 나온 사례인 것으로 확인됐다.

‘20-50 클럽’ 가입은 한국이 확실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여태까지 선진국 문턱에 서 있었는데 이제 선진국에 진입했다니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클럽 국가들은 일단 2만달러, 5000만명의 벽을 넘은 이후에는 이 수준을 대부분 유지했고, 오히려 인구와 국민소득이 모두 성장했다. 독일이 1990년대 초반 통일에 따른 충격으로 잠시 국민소득 2만달러 아래로 내려갔다가 회복한 것이 유일한 예외다.

따라서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잘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2008년 미국(리먼 파산)발 경제위기, 2010년 유럽(PIGS, 포르투칼,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발 경제위기를 잘 극복하여 2012년 6월 ‘20-30클럽’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한국은 2011년에 G20의 의장국의 역할을 하였고, 올해 4월에는 32개국이 참가하는 세계핵안보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여태까지 반만년 역사에서 세계사의 주변국에 머문 처지에서 벗어나 이제 세계사의 중심국으로 점차 부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50클럽’ 진입국은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호주(2380만명), 캐나다(3513만명) 등은 소득은 높지만 낮은 인구성장률을 감안하면 인구 5000만명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 중국(4383달러), 인도(1406달러), 브라질(1만717달러), 러시아(1만351달러), 멕시코(9166달러) 등은 인구 규모는 크지만, 이 인구들의 소득을 모두 끌어올려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돌파하기는 버거운 상황이다. 지난 1996년 영국이 진입한 이후 16년 만에 한국이 처음으로 진입한 것을 보면 규모와 수준에서 모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20-50클럽’은 일단 진입하고 나면 후진 기어 없이 지속적으로 더 전진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일본(1992년)을 시작으로 이탈리아(2004년)까지 진입국들은 모두 예외 없이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돌파했다. 특히 독일은 소득이 훨씬 낮았던 동독을 흡수하고도 통일 후 5년째 되는 1995년에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1945년 해방 후 67년만에, 1953년에 휴전한 한국전쟁(1950-1953년)후 전국토가 황폐화된지 59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필자는 해방 이후 첫 해에 태어난 한국의 시민이요 기독교인으로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다음 몇 가지를 적어 본다.

첫째, 한국의 이러한 성장과 발전에는 한국 기독교의 역할이 컸다. 기독교는 감리교 장로인 초대 대통령 이승만, 윤보선, 김영삼, 이명박 등을 배출하였다. 이승만은 냉전 시대에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유엔 인정의 합법적 정부를 출범시켜서 자유민주국가의 초석을 닦았던 것이다. 그는 정동제일감리교회의 장로직을 가진 신자로서 초대 대통령으로서 훌륭한 결단을 하였다.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설립하고자 했던 그의 결단이 오늘날 한국을 단군 이래 최고로 잘 살게 된 나라로 이끌었던 것이다. 한국 사회가 해방 이후 남북으로 분단되어 이념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이승만, 김구, 이시영 등은 기독교적 이념으로써 한국사회를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정의가 지배하는 나라로서 초석을 닦았다. 윤보선은 안국동에 위치한 안동교회 교인으로서 4.19 혁명 이후 어려운 시기에 민주정부를 이끌었다. 김영삼은 충현교회 장로직을 가진 신자로서 민주화 투사로서 군사정치를 민주화하는 데 공헌하였고 최초의 문민정부 수립, 군부 일심회 해체, 경제실명화 등의 공적이 있다. 김대중은 천주교 신앙을 가진 자이며 그의 부인은 감리교 장로직분을 가진 자로서 한국정치의 민주화에 공헌하였다. 이들 역대 대통령들은 기독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한국의 지도자로서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가 되고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밑거름의 역할을 하였다. 이명박은 소망교회 장로츨신으로서 어려운 세계경제의 침체 속에서 경제를 잘 운영하여 한 유럽 FTA, 한미 FTA 체결, G2,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등으로 국격을 높이는 데 공이 있는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한국 기독교는 무신론과 인권말살의 공산주의 이념을 차단하면서 한국사회를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지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국 기독교는 한국전쟁 시에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다가 많은 순교자를 내었다. 한국 기독교는 오늘날 북한에서 보다싶이 가장 많은 박해를 받았던 종교다. 박해받은 북한 기독교인들은 남하하여 남한 반공세력의 중추가 되었다. 이들의 반공은 체험적 반공주의였다. 이러한 체험적 반공정신은 한국사회가 이념체제적으로 안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해방 후처럼 좌파와 우파로 나누어져서 사회적으로 혼란에 빠졌더라면 오늘날의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구권의 사회주의 정권은 1989년에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브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 개방(글라스노스트) 정책에 힘입어 무너졌다. 그 이듬해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되었고,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연방은 1991년 12월 31일 해체되었다. 중국도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하고, 1992년 공산주의 정치체제에 시장경제제도를 헌법에 도입하면서 오늘날 중국은 개혁개방 40년만에 G2(미국과 중국)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오늘날 북한만이 세계적으로 사라져가는 공산주의 이념을 세습적으로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 국민들을 가장 어려운 도탄에 빠지게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기독교는 무신론과 인권 말살(抹殺)의 공산주의 이념에 대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공헌해왔다.

셋째, 한국 기독교는 청교도적 정신을 우리 사회에 가져다주었다, 청교도 정신이란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순례자의 삶의 태도를 말한다. 청교도 정신이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지키고, 자녀 교육에 힘쓰고, 매일의 삶을 하나님 면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초창기 청교도 선교사들(베어드,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렌튼 등)을 통해서 이러한 사상을 받아서 한국사회가 지식과 산업을 일으켜 근대화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것은 기독교 학교 교육 선교, 기독교 병원 선교, 기독교 실업인, 기독교 법조인, 기독교 농민운동(가나안 농민 학교 등)를 통하여 전개되어 결실을 맺게된 것이다. 이러한 청교도 정신을 계승한 한국교회의 수많은 신실한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각 교회와 삶의 처소에서 예배와 각종 기도회로 모이고 말씀 공부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서 살려고 하는 그 영성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번영하는 토대가 된 것이다.

넷째, 한국 기독교는 이제 북방선교와 세계기독교 쇄신에 눈을 돌려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선진화된 국력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로운 한반도의 통일에 기여하고, 통일된 한국이 만주지역과 중국, 중앙아시아 등의 미개척분야인 북방선교에 대한 새로운 기획과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은 끝났다. 한국기독교는 한국정부가 선진사회라는 체제안정을 토대로 관용적 태도로써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인도하도록 매개 역할을 해야 한다. 무너졌던 북한 교회를 재건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 이후 시대를 맞고 있는 서구와 미국의 기독교에 대하여 한국의 청교도적 기독교를 다시 활성화 하여 이들에게 기독교의 새로운 모습을 재수출해주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한국 기독교는 철저한 자기 성찰과 더불어 인격적인 하나님 앞에서 거듭나는 지도자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해 나가는 데, 한국교회는 그 양적 성장에 걸맞지 않는 지도자들의 각종 비리 때문에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다. 한국의 정치권은 구태의연하고 경제성장에 상응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5년마다 새 지도자(대통령)를 선출하게 되니 정치는 그래도 민주화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은 엘리트를 잘 규합하여 연구와 제품생산에 힘쓰게 됨으로써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그런데 교계는 그러하지 못하다. 한국 교계는 일부 대형교회에서 매관 매직과 세습으로 얼룩져 있어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가장 보수요 정통이라는 신학대학의 직원인사에 각종 뇌물사건이 일어나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내년(2113년)에는 부산 벡스코에서 WCC 총회, 2014년에는 서울 코엑스에서 WEA 총회를 개최하여 그 국제적인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즈음에 있다. 한국 기독교는 그 동안 높아진 국격(國格)에 맞추어 다시 한 번 지도자들부터 솔선수범하여 국제적으로 높아진 스스로의 위상에 걸맞는 삶과 선진사회를 향한 지도력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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