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성지로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중에 가장 많은 경전을 기록한 사람이자, 기독교의 기본 토대를 놓은 사람인 사도 바울이 소명을 받은 후에 가장 많은 시간과 열정을 들여 사역한 곳이 아나톨리아, 바로 지금의 터키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초대 기독교에 있어 가장 많은 유적지가 있는 곳도 바로 이곳 터키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부터는 사도 바울의 1, 2, 3차 전도여행과 로마행, 그리고 4차 전도여행과 관련한 글들을 성지와 연결하여 집필할까 합니다.

1. 들어가는 말

바울이 기독교에 있어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지 모르시는 분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바울이 없었으면 지금의 기독교는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사실 바울은 1, 2, 3차에 걸친 전도여행과 사도행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바울의 서신들을 통해 알 수 있는 4차 전도여행을 하며, 지나간 지역마다 교회를 개척하여 제자들을 양육했고, 그리고 바울이 본인이 개척한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 나중에 초대교회 시기를 지나, 4세기 기독교 공인 시기, 중세 시대를 지나며 기독 교회에 경전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시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주신 후 바울을 놀랍게 사용하셨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 내에서 바울의 위상과 영향력이 절대화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울이 이룬 업적과 놀라운 결과들을 보고 바울을 칭송하고 있는데, 바울 뒤에서 바울이 사역할 때 역사 속에서 모든 환경들과 사역의 장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는 자칫 간과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본 글에서는 바울의 행적을 살펴보기 전에 앞으로 전개될 성지 이야기에 하나님께서 바울의 사역을 위해서 친히 준비하신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데, 정치, 언어, 지리, 종교 4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서 살펴 보겠습니다.

1차 전도여행 발자취 – 타우루스 산맥에 놓인 비아 세바스테
1차 전도여행 발자취 – 타우루스 산맥에 놓인 비아 세바스테 ©원여호수아 선교사 제공

2. 하나님의 손길들

정치적인 배경

'팍스 로마나'(Pax Romana)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바울이 사역하던 AD 1세기 중반에는 로마라는 절대 강자가 지중해 세계를 통치했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바울은 마음만 먹으면 로마가 통치하고 있는 그 어느 지역이라도 쉽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방에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작은 도시 국가로 출발한 로마가 3차에 걸친 북아프리카의 강자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 후에 비로소 지중해 연안의 헤게모니를 가져오면서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까지 3개 대륙을 통치 했었는데, 그 덕분에 바울의 활동 무대였던 소아시아 지방과 이스라엘, 그리고 그리스, 로마까지 로마라는 한 정치 세력의 지배 하에 들어와서 바울이 로마라는 정치 세력을 등에 업고 효과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사역하던 시대의 정치적 배경이 알렉산더 대왕 사후의 지중해 세계가 춘추전국시대와 같이 분열하면서 서로 먹고 먹히던 BC 4세기 경과 같았다면 바울의 사역은 훨씬 더 힘이 들게 사역을 했어야 했을 것이고, 사역의 열매도 훨씬 적었을 것입니다.

언어적인 배경

다른 문명과 그 문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의사 소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용하는 언어가 같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경우에 따라서는 그 효과가 배가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사역하던 당시에도 지중해 세계는 로마가 통치를 했기 때문에 라틴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었지만, 로마가 통치했던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라틴어보다는 로마 제국 이전 지난 300여년 동안 헬레니즘이 지중해 세계를 지배했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헬라어' 즉, 그리스어가 공통적으로 통용되었습니다.

마케도니아 출신의 알렉산더 대왕이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후 나아가 페르시아(이란)와 인도까지 점령하면서 헬레니즘 즉, 그리스의 언어와 이념, 문화를 점령지마다 전파했었고,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도 4명의 그의 수하에 의해서 지중해 세계가 통치될 때까지 약 300여년 동안, 그리고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후에도 한 동안 그것이 이어지면서 헬레니즘이 지중해 세계의 정신이 통일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헬레니즘 배경의 대도시인 다소(현재 터키 남부지역인 Tarsus) 출신인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므로 헬라어를 능숙하게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가든 헬라어를 사용해서(주로 헬라 지역) 복음을 전파하면서 효과적으로 사역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리적인 배경

로마 제국이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까지 이르는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고 난 후, 그 광범위한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작업이 바로 도로를 정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 저서인 '로마인 이야기'의 10권에 나오는 제목이기도 한데요. 어느 곳에서 출발하건 모든 길의 종착점은 로마라는 말인 동시에, 모든 길은 로마에서 시작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저서에서 로마인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500년 동안 꾸준히 길을 만들었으며, 로마를 둘러싸고 있는 1번~8번 국도는 지금도 대부분 그대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견고하고 합리적으로 만들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가도는 제국의 동맥이었으며, 수도 로마에서 12갈래로 갈라져 출발하는 가도는 추운 북해에서 뜨거운 아프리카 사하라까지, 대서양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뻗어나가는 동안 375개의 간선도로로 늘어나고, 이 거대한 도로망은 지금의 유럽 연합보다도 넓었던 제국의 영역을 통제하는 핏줄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황제의 편지는 씌어지자마자 마치 날개 달린 전령이 나르는 것처럼 신속하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배달된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 로마는 가도를 통해 제국을 지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이 지은 포장 도로가 없었다면 20만이 안되는 병력으로 대제국을 통솔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사실 지금 유럽 전지역에 놓여져 있는 고속도로는 거의 대부분이 로마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건설한 도로를 기반으로 건설했다고 합니다.

로마인이 인류 역사에 남긴 최고의 걸작은 무엇일까요? 로마 제국이 건설한 구조물 중에서 가장 오래 존속했거나 역사에 영향을 미친 것을 꼽으라면, 당연히 로마의 도로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로마의 도로를 따라 이동한 것은 단지 물자와 군대만이 아니었습니다. 금석 문자 전문가인 로몰로 A. 스타촐리는 "그 도로를 통해 사상, 예술적 영향, 철학 이론과 종교 교리가 전달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울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교리도 그 도로를 통해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지중해 세계에 신속히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종교적인 배경 1 - 디아스포라 유대인 회당과 70인역 성경

기원전 1세기와 기원후 1세기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유대교가 양적으로 부흥을 경험했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두 가지 유대교 내의 중요한 현상 때문이었는데, 한 가지는 헬라 세계에 퍼져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자기가 살고 있던 지역에 회당을 만들고 회당을 중심으로 생활했던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유대교 경전인 토라(모세 5경)가 헬라어로 번역된 것(70인역 성경)입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 회당은 하드웨어이고, 70인역 성경은 그 하드웨어를 돌리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역사는 오래 되었는데, BC 6세기경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 당하면서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현상이 시작 되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디아스포라 현상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진행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불순종과 우상숭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주변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들어 유대 나라를 징계하시고 그들을 70년 동안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많은 재능들을 보내 최첨단의 교육을 받고 돌아온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유대 땅에 건설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진행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디아스포라 현상은 바벨론을 지나,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의 지배를 거치면서 많은 지배 왕조의 정책에 의해 강제 혹은 자의로 유대 땅에 살던 유대인들이 유대 밖으로 나가서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 대륙까지 진출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고, 자연히 유대인들이 많이 모인 곳은 회당(Synagogue)이라는 유대인 공동체를 세우고 그 회당을 중심으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드웨어가 준비되어집니다.

한편 BC 4세기 초 동방원정을 나온 알렉산더 대왕이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면서 그의 헬라 왕국은 그의 4명의 수하 장군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그 중에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장군이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팔레스틴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들은 대대로 학문을 사랑하고 아꼈었는데, 그의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BC 284~246)도 학문을 사랑해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으로 키우고 싶어서 부친이 세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세상의 모든 책들을 모으라고 도서관장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또한 왕은 도서관장에게 유대인의 율법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유대 율법서인 '토라'를 헬라어로 번역해서 도서관에 비치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이집트에 많은 유대인들이 하층민으로써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집트 안에서는 '토라'를 헬라어로 번역할 수 있는 학식과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본인이 통치하고 있던 유대 땅으로 전령을 보내서 각 지파에서 6명씩 총 72명의 율법 학자들을 알렉산드리아로 불러모아 토라 번역 작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이 성경이 바로 '셉투아진트'라고 부르는 70인역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다분히 헬라적 정서가 개입된 번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바닥만한 땅에 갇혀 있던 하나님과 유대 문화가 알렉산드리아를 통해 세계로 진출하는 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소프트웨어가 준비되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 발자취 – 비시디아 안디옥 진입도로
1차 전도여행 발자취 – 비시디아 안디옥 진입도로 ©원여호수아 선교사 제공

종교적인 배경 2 - 유대교의 두드러진 성장

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하면서 유대교가(특히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됩니다.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유대인들의 수가 많아지고, 또 디아스포라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생겨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디아스포라 유대인 2세, 3세, 4세...이렇게 세대가 흘러갈수록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정체성이 흐려지면서 점차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모든 사고방식이 변화하게 되고, 특히 언어적인 면에서 히브리어나 아람어는 다 잊어버리고 공용어였던 헬라어 밖에 모르는 유대인들이 많이 생겨나게 됩니다.

한편 유대교 경전인 '토라'가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 성경이 출간되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데, 히브리 민족의 고유 종교인 유대교가 헬라 제국 전체, 특히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에 퍼져가게 됩니다.

유대인의 정체성과 히브리어, 아람어를 잊어 버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증가하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는 이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서 70인역 성경을 도입하여 각 회당마다 사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디아스포라 유대인 회당과 70인역 성경이 역사적인 필요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만나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유대인 회당에서 신앙 생활을 했던 부류는 태생적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 유대인들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처음에는 이방인들 중에도 유대교로 개종하고 싶지만 히브리어로 기록된 그들의 경전을 읽을 수 없었고 경전을 읽을 수 없으니 유대교의 신앙에 대해서 무지할 수 밖에 없어서 개종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명에 의해 70인역 성경이 등장하고 그 성경이 각 회당마다 도입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헬라어로 기록된 유대교의 경전을 읽으면서 급속도로 유대교가 양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시대(BC.31~AD.14)에는 로마 제국 전체의 인구가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략 5천만 명 정도라고 하는데, 그 중에 약 10%인 5백만 명이 유대인이었고, 그 중 300만 명이 혈연적 유대인이고 나머지 200만 명이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 유대인이었다고 합니다.

종교적인 배경 3 - 회당에서의 바울의 사역과 반응들

바울은 주로 대도시를 거점으로 거기 세워진 유대인 회당 중심의 전도 사역을 펼쳤습니다. 항상 어떤 도시를 처음 방문하면 안식일에 유대인 회당을 찾아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복음을 증거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바울은 주로 이방인의 사도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경우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증거할 때, 반응이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는데, 한 부류는 혈연적인 유대인으로써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바울의 예수에 대한 복음을 듣고 격분했던 것을 알 수 있고(행13:45,50), 또 한 부류는 이방인이지만 유대교로 입교한 헬라 유대인들로써 이들이 바울의 예수에 대한 복음을 듣고 폭발적으로 반응을 했던 것입니다.(행13:42,43)

이방인이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의 경우는 70인역 성경 덕분에 유대교로 개종하여 신앙 생활을 시작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대교의 중심으로 들어가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율법과 할례, 그리고 정결의식 등 유대교 특유의 의식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행하는 대로 모든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며, 정결의식을 지켜야만 유대교 내부에 깊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유대교를 믿고 부모들의 지도 하에 율법을 행하며, 각종 유대교 의식을 행했던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지만, 하지만 수십년 동안을 율법과 상관없이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행해왔던 이방인들에게는 유대인의 율법과 모든 의식들이 아주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할례를 행하고 정결의식을 지키고, 율법을 전부 지켜야만 의롭다 함을 얻고 기본적인 유대인으로써의 조건이 충족이 되며 다른 유대인들에게도 진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는 의롭게 되지 못하니 항상 유대교 공동체 내부에 깊게 들어가지도 못하고 겉만을 맴도는 '아웃 사이더'로 남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헬라 유대인들의 이러한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율법과 유대교 의식들을 온전히 지키지 못해 항상 마음이 움츠려 있고, 회당 주변만 맴돌던 주변인으로 생활하며, 항상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야 했던 헬라 유대인들에게 바울의 메시지는 그야말로 '복음'(good news)이었습니다. 바울의 혁신적인 메시지가 그들이 메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게 하고, 항상 억눌려 있던 그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이방인 헬라 유대인들은 바울의 등장과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에 열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바울의 메시지는 유대교의 근간을 뒤흔드는 아주 위험한 메시지이며, 바울의 존재는 유대교에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므로 유대인들에게는 자연히 반대의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행14:5,19)

그래서 바울은 1차 전도여행에서 비시디아 안디옥 사역을 마친 후 자신의 사역 방향을 확실하게 '이방인'으로 틀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행13:46~48)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이방인'은 정확히 이방인이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 유대인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쌩짜 이방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유대교로 개종하여 어느 정도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배우며,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간직한 헬라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통 신약 성경에서는 그 사람들을 일컬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행 10:1~2,22; 13:16,26), 혹은 '경건한 개종자들'(행 13:43), '경건한 헬라인들'(행 17:4), '경건한 자들'(행 17:17), '개종자들'(행 2:11; 6:5; 13:43)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차 전도여행 발자취 – 더베
1차 전도여행 발자취 – 더베 ©원여호수아 선교사 제공

종교적인 배경 4 -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준비

사실 알고 보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공동체인 회당과 거기에서 유대교로 개종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헬라 유대인들, 헬라어 유대교 번역본인 70인역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울의 사역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요소들입니다.

회당 공동체에서 70인역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을 나름 유지해 오던 헬라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다이나마이트이며, 바울은 그 회당을 돌며 다이나마이트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장본인인 것입니다.

바울의 메시지가 그 동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잠재적인 다이나마이트의 도화선에 불을 붙임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폭발력을 얻어 지금도 전세계로 그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입니다.

3. 나오는 말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시고, 바울에게 사명을 주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면서 바울을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친히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지겠금 준비하신 요소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알아 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세계에 전파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정치, 언어, 지리, 종교 등의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신실한 주의 종들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바울이 한 일을 폄해서도 안되고, 폄훼해서도 안되지만 분명한 것은 바울이 한 일중 가장 중요했던 일은 바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해서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하며 나아가며 순종했던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은 준비하신 모든 것들을 전부 이루실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바울처럼 하나님이 친히 계획하시고 실행하시고 이루실 일들에 대해 '순종'으로 동참할 주의 백성들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용기를 내어서 '나를 보내소서'하며 순종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들을 축복하시며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계획하신 모든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개인적인 간증을 잠깐 하자면, 저는 우상을 섬기던 시골 가문에서 태어나서 20년 동안 하나님을 모르고 어둠 가운데 살아가다가 먼저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누나의 전도를 받아서 20살 때 교회를 처음 나갔습니다.

매주 교회를 출석하며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 말씀을 생전 처음으로 읽다가 어느 한 구절에 마음이 꽂쳐 버렸습니다. 바로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의 '모든 족속들을 제자 삼으라'는 말씀인데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저도 모르게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 저도 이 말씀처럼 내 생명 다해서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겠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지 않으면 가슴에 있는 불이 꺼질거 같지 않아서 참다못해 며칠 뒤에 새벽 기도회를 처음 나가서 헌신하는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은 그 이후로 선교사가 되기로 결정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서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가 되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서울 근방에 있는 S대학교의 간절히 원했던 컴퓨터공학과로의 진학에 실패하고, 군에 바로 입대를 해서 26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해서 저의 진로를 놓고 고민하며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교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교를 가기로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서울 모교회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서 공부를 하고 생활을 했어야 해서 일주일에 3일은 노가다를 나가서 돈을 벌고, 나머지 시간은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말이 좋아 주경야독이지 너무 힘이 들어서 이런 생활을 계속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를 했었는데, 그때 기도하며 읽은 말씀이 열왕기상 17장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팔레스틴 땅에 기근이 오랫동안 들었었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사르밧에 있는 어떤 과부에게 보내서 그 과부에게 떡을 만들어서 대접을 받도록 합니다. 그런데 그 떡은 오랜 기근으로 너무 힘들어서 그 과부와 외아들이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엘리야가 달라고 하니 흔쾌히 자신들이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했지만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하여 떡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주었을 때,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 가루통에서는 밀가루가, 기름병에서는 기름이 팔레스틴에 비가 오는 날까지 끊이지 않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읽으면서 마찬가지로 그 말씀이 눈에 갑자기 붕 떠오르며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사르밧 과부처럼 저도 저에게 있던 모든 돈을 모아서 돌아오는 주일에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금액이 30만원 정도 되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금액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돈이 제게 있는 모든 것, 저의 전부였습니다. 저의 전부를 헌금으로 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열왕기상 17장의 말씀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 기적이 동일하게 저에게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청년부를 통해서 놀랍게 역사 하셨습니다. 청년부에서 저를 돕기 위해서 한 달에 얼마씩 시험 보는 달까지 후원금을 모아서 매달 후원을 해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 모아보니 매달 80만원이라는 금액이 모금되었고,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동안 후원금으로 마음 놓고 공부와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천년 전에 지구 반대 쪽 팔레스틴 땅에서 일어났던 기적이 시공을 초월해서 저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니까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저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서 신학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을 해서 교회 사역을 하다가, 말씀을 좇아서 터키로 와서 지금까지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하나님 말씀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용기' 하나만 있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실 수 있습니다.

레팜 난민선교회 원여호수아 선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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