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차 나부터포럼
제6차 나부터포럼 참석자들이 단체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나부터포럼

조선 말기 구체제의 모순과 몰락 속에서 한국인의 근대적 정체성과 민주주의 시스템을 형성한 결정적 동력은 개신교와 칼뱅주의 사상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 원장(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나부터포럼’(대표 류영모 목사)이 개최한 ‘제6차 나부터포럼’ 주제강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번 행사는 ‘한국인 그 뿌리를 찾아 내일의 한국을 그리다(기독교·한국·한국인)’라는 주제로 진행됐으며, 교계 주요 지도자와 신학대 총장, 각계 전문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함 원장은 “조선의 종교혁명과 계급혁명, 문체혁명을 이끈 핵심 주체는 개신교와 친미기독교파였다”고 했다.

함 원장에 따르면,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 당시 칼에 맞아 중상을 입은 민영익(閔泳翊)을 미국인 의료선교사 호러스 알렌(Horace Allen) 박사가 헌신적으로 치료해 목숨을 건지면서, 고종과 조정의 신임을 얻고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廣惠院) 설립으로 이어졌다.

또한 1883년 보빙사(報聘使)로 미국에 파견된 민영익 일행이 기차 안에서 존 가우처(John F. Goucher) 박사를 만난 것을 계기로, 감리교의 로버트 매클레이(Robert S. Maclay) 목사가 이듬해 조선을 방문해 고종으로부터 병원과 학교 설립 허가를 받아냈다. 그 결과 헨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목사와 메리 스크랜튼(Mary F. Scranton) 여사, 윌리엄 스크랜튼(William B. Scranton) 박사 등이 조선에 파견됐으며, 장로교의 호러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목사는 당초 인도 선교를 가려던 계획을 “조선에 갈 사람이 없느냐”는 환상을 보고 철회하며 극적으로 조선 땅을 밟게 되었다.

함 원장은 “16세기 유럽 종교개혁과 구한말 조선의 상황이 매우 유사했다”며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동방교회의 그리스어 서적과 학자들이 서방으로 유입되면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발흥했다. 특히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가 그리스어 원전 신약성경을 번역하면서 마태복음 3장 2절의 ‘메타노에이테(metanoeite)’를 불가타(Vulgate) 라틴어의 ‘고백하라(poenitentiam agite)’ 대신 ‘회개하라(resipiscite)’로 바로잡음으로써 중세 고해성사의 신학적 근거를 흔들었다”고 했다.

이어 “장 칼뱅(Jean Calvin)은 1541년 『교회조례(Ordonnances ecclésiastiques)』를 발표하며 성경에 명시된 교직은 목사(Pastor), 박사(Doctor), 장로(Elder), 집사(Deacon)뿐임을 내걸고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를 제안했다”며 “칼뱅의 제자 존 녹스(John Knox)가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회를 세우고, 영국의 청교도(Puritans), 프랑스의 위그노(Huguenots), 화란 개혁교회가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건너가 미국을 세운 뒤 조선에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제6차 나부터포럼
함재봉 원장이 강연하고 있다. ©나부터포럼

그러면서 “막스 베버(Max Weber)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분석처럼,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속을 경건으로 변혁시키고자 했던 칼뱅주의의 엄격한 일상 규율과 ‘하나님 앞에서의 만민평등’ 사상은 계급을 무너뜨리고 근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이행의 촉매제가 됐다”고 했다.

아울러 “구한말 조선에 들어온 개신교는 주자성리학의 신분제와 남녀차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에디슨 박사 등의 치료를 받고 감동하여 개종한 백정 박성춘의 사례처럼, 교회 안에서는 양반과 천민이 동등하게 ‘형제’와 ‘자매’로 불렸다”고 했다.

또한 “1888년 9월 이화학당 첫 세례식에서 ‘이씨’, ‘박씨’ 등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지며 이름조차 없던 여성들에게 마르다, 미리암, 살로메 같은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여매례(Mary), 박에스더(Esther), 하란사(Nancy), 김활란(Helen) 등 초기 여성 지도자들이 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며 “특히 1887년 10월 7일 언더우드 목사가 설립한 새문안교회(당시 정동 장로교회)에서 치러진 장로 선출 투표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민주적 투표 선거로 기록된다. 존 로스(John Ross)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어둠을 뚫고 모인 14명의 교인이 투표를 통해 백홍준과 서상륜을 장로로 선출했다. 신분과 성별 구분 없이 동등하게 투표권을 행사한 이 사건은 1948년 정부 수립보다 60년 이상 앞선 서구식 민주주의의 최초 도입 사례”라고 했다.

함 원장은 “1934년 윌리엄 에리엇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의 기록처럼, 선비들과 특권층 학자들로부터 ‘더러운 글’이라며 경멸당하던 언문(한글)은 언더우드 등 선교사들에 의해 ‘천상의 보물을 담는 용기’로 재창제 됐다”며 “종교개혁 시절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이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 영어 문체혁명을 일으켰듯, 조선선교사 존 로스, 호러스 언더우드, 헨리 아펜젤러,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조지 히버 존스(George H. Jones), 윌리엄 레놀즈(William D. Reynolds) 선교사는 한문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며 근대 국문학의 기틀을 다지면서 종교개혁과 유사한 혁명을 일으켰다”고 했다.

나부터포럼
청중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노형구 기자

함 원장에 따르면, 제임스 게일 목사가 번역한 『천로역정』(1894)은 이광수, 윤동주 등 한국 근대 문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한문의 경전이 『사서삼경』이었다면 한글의 경전은 『성경』이었으며, 배재·이화·경신학당 등은 성경을 교재로 한글을 적극 보급했다.

그는 “근대화 과정에서 기존 사대부 중심의 지배 체제가 해체되고 역관(외국어), 형리(법), 의관(의사), 산관(회계) 등 전문성을 갖춘 ‘제2신분계층(중인·무반·서얼·서북인)’이 근대 국가의 새로운 인적 자원으로 부상했다”며 “이와 함께 고영근, 남궁억, 박용만, 서재필(Philip Jaisohn), 안창호, 양홍묵, 윤치호, 이상재, 이승만, 이승훈, 이원긍, 이준, 정교, 주시경, 최병헌 등 유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신문』 발행과 독립협회 운동을 이끌었다. 이들은 음주·흡연·도박·축첩을 금하는 생활 개혁을 실천하며 성도(Saint)이자 시민(Citizen)인 근대적 ‘한국 사람’을 만들어내는 운동을 선도했다”고 했다.

함재봉 원장은 “조선의 근대 민주주의 시스템과 국문 체계, 평등 사상은 존 칼뱅의 장로교 정치를 충실히 이행했던 교회와 친미기독교파로부터 출발했다”며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가 뿌리를 되찾고 본질로 돌아갈 때 내일의 희망을 그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제 강의 이후 정상규 작가(보훈문화연구원 원장)와 김주용 목사(연동교회 담임)이 패널로 나서 좌담회를 진행했다.

제6차 나부터포럼
류영모 목사가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나부터포럼

한편, 앞서 나부터포럼 대표 류영모 목사는 인사말에서 140년 역사의 출발점이었던 초기 선교 정신을 미래의 나침반으로 제시했다. 류 목사는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제물포에 내려왔던 그 정신, 그 열정, 그 마음으로 돌아가자”며 “우리 한국을 한국인보다 더 사랑했던 선교사님들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했다. 아울러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던 때 한국교회가 가야 할 길을 고민했다”며 “나부터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단체 출범 배경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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