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이태희 목사
이태희 목사

에스겔이 살아가던 당시 이스라엘은 단순한 곤경에 빠진 정도가 아니었다. 나라가 망해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와 있는 상황이었다. 예루살렘의 성벽은 무너져 돌무더기가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빈털터리가 되어 모든 것이 다 끝장난 상태로 바벨론땅 낯선 강가에 포로 신세로 앉아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 무슨 소망이 남아 있겠는가? 그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모든 소망은 고갈되었다. 그들은 나라를 잃었고, 그들의 지도자를 잃었고, 가정을 잃었고, 군대와 무기를 잃었다. 그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은 전부 다 고갈되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포로들 사이에 끼어 있던 한 사람, 에스겔에게 홀연히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겔6:1)

모든 소망이 고갈된 에스겔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다. 바로 이것이 에스겔 뿐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세대에 걸쳐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환란과 절망에서 건져내어 소망과 미래로 인도하시는 방식이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시107:19-20)

우리의 상황은 바벨론에 잡혀간 이스라엘 자손의 무력하고 절망적인 상황처럼 심각한 곤경에 빠져 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우리의 미약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성령 하나님은 바벨론 강가에 앉아 있던 에스겔에게 임했던 메시지와 같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달해 주셔서 우리를 위험한 지경에서 건져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성령의 음성, 인간의 정신으로 고안해내거나 자기 생각의 결과물이 아닌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 즉 성령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비극은 그들이 처한 상황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여기서 오늘 제가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성령의 음성”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음성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임하게 되는 것이지, 성경의 말씀이 곧 성령의 음성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헌신 때문에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저는 아주 보수적인 교단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교단이 그렇듯이 우리 교회도 매우 말씀 중심적인 신앙 생활을 강조했다. 성경의 절대 무오함,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믿고 성경 중심적인 신앙 생활이 건강한 신앙 생활의 초석임을 매우 강조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그렇게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강조하면서도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는 충분하게 강조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하와이에 위치한 YWAM이라고 하는 선교 단체에 들어가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그 때 성령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해 제 눈이 열렸다.

“성경”이 전부가 아니라 성경을 통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성경의 가르침이 전부가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에 처음 눈을 뜨게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치유를 경험하고, 성령의 권능을 경험하기 위함이다.

성경과 기도 앞에 진을 치고 살아가는 사람의 심령 속에는 내 생각과 정신에 새겨 주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이 있다. “어디로 가라. 무엇을 하라. 무엇을 말하라. “정확한 행동 지침을 주시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책망과 질책, 때로는 평안과 확신을 주시는 성령의 음성이 있다. 이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음성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행8장에 보면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를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시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읽고 있었다. 그 때 성령 하나님께서 빌립에게 이 내시가 타고 있는 수레 가까이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빌립이 입을 열어 그 내시가 읽고 있던 사53:7의 말씀을 설명해 줄 때 성령의 권능으로 말미암는 회심의 역사가 이 내시 가운데 일어나게 된다. 빌립이 들었던 성령 하나님의 말씀 “저 수레 가까이 가라”는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빌립 안에 살아 계셔서 말씀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 지역으로 선교를 떠나려고 하였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행16:6-7)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라.” (행16:9-10)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10:19-20)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성령의 음성은 가장 일차적으로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전달된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 즉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항상 기도와 말씀 앞에 진을 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병행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와 같은 기도와 말씀의 삶을 도구로 삼아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기도와 말씀의 삶은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나눔을 위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영적인 수단이고 도구다. 그와 같은 영적인 수단을 잘 활용하여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누리게 되면 우리는 기도와 말씀의 시간 때 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사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성경과 기도는 내 안에 거하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나눔을 위한 영적인 수단이요 도구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기도와 말씀의 삶을 목적으로 삼아 정작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사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새벽 예배 후, 교회에서 꼭 필요한 것은??

#이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