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목사
이태희 목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향한 분명한 뜻과 목적을 갖고 계신다. 그 목적과 뜻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슬기로운 신앙생활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변화”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8:28-30)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목적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 즉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져 가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변화”다. 변화를 받아야만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곳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61:3)

“슬픔의 재”가 “화관”으로 변화되고, “기쁨의 기름”이 우리의 “슬픔”을 대신하며, “근심”이 변하여 “찬송”이 되는 삶의 변화. 이와 같은 삶의 변화를 누리기 위한 조건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슬기로운 신앙 생활의 본질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진 자들로 변화되어져 가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변화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고난”을 통해서 이뤄진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도구는 바로 “고난”이다. 고난은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켜서 “열매”를 맺게 하는 자양분이요 “토양”이다. 그래서 성도들의 신앙 생활은 항상 고난과 맞물려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우리가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면 우리 삶에 고난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니다. 고난은 우리의 신앙 생활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양”이다. 그래서 고난이라고 하는 토양이 사라지게 되면 신앙생활도 뿌리 채 뽑혀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 생활”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이 나무는 “고난”이라고 하는 토양에 뿌리를 내려서 “그리스도의 형상”이라고 하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은 슬기로운 신앙 생활의 “적”이 아니라 “조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들의 고난을 그냥 “고난”이라고 부르지 않고 “연단”이라고 부른다.

“고난”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살아가면서 겪는 괴롭고 힘든 일이나 상황”. 하지만, “연단”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서 단단하게 하다.”“몸과 마음을 굳세게 하다.” 성도들의 고난은 단순히 성도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더욱 단단하고 굳세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연단”인 것이다. 즉, “고난은 도구”일 뿐이요, “연단이 목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무엇을 연단하시는가?

(1)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신다.

성경은 우리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고 말씀하신다.

다른 모든 것이 있어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한 조건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둘째,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이심을 믿고, 셋째, 그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55:22)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여호와께로 나아가 여호와께 모든 짐을 맡길 때 그 때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고 요동치 않게 하시는 상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시55:16)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여호와께로 나아가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우리는 우리를 모든 환란과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의 열 두살 된 외동딸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급히 그의 집에 가고 계시는 길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한 여인이 조용히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댔다. 그러자 그 즉시 혈루증이 고쳐졌다. (눅8:40-48)

예수님께서는 즉시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줄을 아시고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물으셨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베드로가, “아니 주님, 여기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서 주님을 밀어대고 있는데, 누가 주님에게 손을 댔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 여인이 나아와 자신이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을 댄 이유와 자신의 병이 즉시 낫게 됐음을 말씀드렸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벧전1:5)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를 모든 환란과 미혹, 질병과 원수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믿음을 성장시켜 주시는 것이 바로 “고난”이라는 것이다.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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