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환 목사
김요환 목사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항상 기뻐합니다. 날마다 구원의 감격을 노래하며 천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성도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현대 사회는 우울증, 조울증, 불안, 자살 등과 같은 부정적 현상들이 만연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우울증과 자살의 비중이 세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높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이 우울증과 같은 병리적 증세로부터 자유로울까요? 안타깝게도 성도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극심한 우울감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성도의 특권은 구원의 감격으로 날마다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인데 과연 우울증이 그리스도인에게도 올 수 있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존 파이퍼에 따르면, “신앙은 날마다 기뻐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로 볼 때 어떤 시선에서는 우울감 같은 부정적 감정에 동요되는 것을 두고 쉽게 불신앙의 증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속단은 큰 목회적 상황에서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도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우울증 증세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믿음이 없거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해선 안 됩니다. 실제로 많은 목회자와 신학생들도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과거 위대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또한 극심한 우울증에 괴로워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 속 인물 중에서도 모세, 엘리야, 다윗, 바울 등이 정신적으로 괴로워하고 하나님께 간구한 상황들이 목격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우울증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우울증 그 자체는 결코 신앙적인 유익함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치료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감기에 걸리는 것이 죄가 아니듯, 우울증이라는 질병에 노출된 것을 죄의 결과로 단정해선 안 됩니다. 특히 현장에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우울증에 대해서 속단하지 말고, 먼저는 그들의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울증 증세에 시달리다가 자살에 이른 성도가 있다면, 자살하면 지옥 가냐 마냐의 교리적 문제는 뒤로 미뤄야 합니다. 일단 유족들을 위로하고, 가족과 교회 공동체에 우울감이 전파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성도들을 다독이는 일이 시급합니다. 교리는 교회의 영토이며 타협할 수 없는 진리인 것은 틀림없지만, 병리적 증세로 인한 결과나 논쟁이 될만한 교리적 토론을 굳이 성도의 아픔 앞에서 꺼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보다도 앞서서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초기 우울증 증세를 어떻게 관리하고 해결할 수 있느냐입니다.

첫째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성도를 정죄하거나 불신앙으로 볼 것이 아니라 위로하고 정신과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기도로 다 해결되니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신학 공부가 매우 빈약한 사람일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일반 은총”이라는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특별 은총”입니다. 그러나 물, 공기, 햇빛 등과 같은 것들은 불신자들에게도 모두 주어지는 “일반 은총”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주는 은총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배려 속에 모두가 누리는 혜택입니다. 현대 의학과 정신과 약물 역시 일반 은총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마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사람을 치료하도록 만드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우울증 약을 처방받는 것으로 인해 부끄러워하거나 죄의식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목회자들 역시도 날마다 복음을 능력을 붙들고 은혜의 감격 속에서 기쁘지만, 때때로는 성도들의 슬픔과 지독한 고독으로 인해 한순간에 우울감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기도와 말씀을 붙드는 것은 기본이요, 균형 있는 식사와 적당한 운동 및 휴식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의사의 처방된 약으로 치료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둘째로, 우울증 증세가 찾아올 때마다 구원의 확신을 주는 말씀을 읽고 암송하며 입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현대 의학에 도움을 받지만, 그것에만 의존하지도 않습니다. 성도는 말씀의 능력으로 치유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1~2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는 시시때때로 말씀을 붙잡고 죄와 사망과 우울감과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에 대항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성도는 우울증이 찾아올지라도 말씀 붙들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심지어 우울감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해결될 수 없는 우울증 때문에 고민될지라도 ‘내가 약할 때 강함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셋째로, 우울증 증세가 찾아올 때마다 승리의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우울감은 비교의식이 불러온 열패감 또는 공허감, 허무감 등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감정적인 요인이라서 개인의 의지와 능력으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찬양의 가사에 이입되어 소리 내어 부르면 우울감에 저항할 수 있는 긍정의 마음이 들어서게 됩니다.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은 의지적으로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켜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비판받은 이유는 성경적 방법이라기보단 심리적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긍정의 파워는 심리적 요인이 아니라,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내세에 대한 확신에서 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단순히 긍정의 주문을 외우는 이들이 아니라, 십자가 능력에 붙들려서 찬송합니다. 이런 확신이 있는 성도들은 우울감이 올 때 말씀 읽기와 함께 찬송을 부릅니다. 찬송을 소리 높여 부르는 행위는 전적으로 복음적이며 성경적 방법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송을 불렀을 때 땅이 흔들리고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자살하려던 감옥 간수장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았습니다.

현대인들의 병리적 증세 중 하나인 우울증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교회는 이 우울증 때문에 고통 받고있는 이들에게 위로할 수 있어야 하며, 현대의학이라는 일반은총과 말씀과 찬송과 기도라는 성도의 특권으로 우울함 가득한 이 사회를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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