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 ‘고난과 고통 없는 삶은 없을까?’ ‘하나님을 믿고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가진 신자들에겐 그저 기쁘고 행복한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 세월 네 명의 자식들을 낳아서 길러주시고, 늘 기도와 신앙으로 큰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아버지께서 병약하셔서 자식들의 수발을 받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도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어릴 때 우리의 대소변을 갈아주시던 아버지가 이젠 자식들로부터 똑같은 수발을 받고 계신다.

[2] 큰 며느리인 집사람이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케어하기로 했으나, 당뇨로 인해 발이 자꾸 부어올라 집에선 치료가 불가하다 해서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정든 대구집을 떠나 세 명의 자식들이 가까이 사는 용인 구성에 위치한 요양병원으로 옮기신다. 사안이 심각하다 보니 집이 아니면 어디도 가지 않겠다고 고집하시던 아버지도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하셨다.

[3] ‘고난과 아픔과 사망이 없는 인생이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지금보다 더 강하게 든 때는 없었다. 잘 몰라서 그렇긴 하지만, 알고 보면 고난과 아픔의 연속인 삶 속에서도 위대한 일을 감당한 인물들이 적지 않다. 너무도 존경받는 삶을 잘 살아온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기에 개인과 가정에 좋은 일만 가득하리라 생각했던 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잘 살아온 분들 속에도 남들이 모르는 고통과 아픔이 있음을 발견하곤 흠칫 놀란다.

[4] 강준민 목사님이 보내주신 『리더의 고독』 (두란노, 2022)이란 책 속에서 중국 선교의 아버지인 허드슨 테일러의 이야기를 읽다가 충격을 받았다.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853년, 22살의 청년 허드슨 테일러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배웅을 받으면서 중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6개월 만에 중국에 도착한 그는 중국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모든 서양 선교사들이 서양 옷을 입고 사역할 때, 그는 중국 사람들의 옷을 입었다.

[5] 중국 사람들처럼 금발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머리를 땋아 길게 늘어뜨리고 다녔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성육신 선교를 실천한 것이다.

그는 현지에서 중국 선교사인 마리아를 만나 결혼했다. 중국에서 열심히 사역하던 중에 그는 고통스러운 상실을 경험했다. 1867년에 중국에 열병이 돌았다. 8살인 큰딸 그레이스가 열병에 걸렸다.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전도의 열정을 가진 큰딸을 무척 사랑했다.

[6] 하나님께 그 딸을 살려 주시도록 며칠 밤낮을 기도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큰딸을 데리고 가셨다. 그는 사랑하는 딸을 양자강변에 묻었다. 그 뒤에 아들 사무엘이 열병에 걸렸다. 5살의 나이였다. 허드슨 테일러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무엘도 데리고 가셨다. 그는 사무엘을 그레이스 옆에 묻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 노엘이 태어난 지 20일 만에 열병에 걸렸다.

[7] 역시 하나님이 노엘도 데려가셨다. 그는 노엘을 사무엘과 그레이스 옆에다가 묻었다. 노엘이 죽은 지 13일 뒤에 그의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도 열병에 걸렸다. 세 자녀를 잃고 이제 사랑하는 아내마저 열병에 걸려 눕게 되자 그는 하나님께 울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아내도 데려가셨다. 마리아는 "당신을 사랑해요, 천국에서 다시 만나 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33살의 나이에 하나님 품에 안겼다.

[8] 허드슨 테일러는 아내 둘과 많은 자녀를 잃으면서 극한 고독에 빠졌다. 심한 우울증이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는 계속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선교하는 중에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그는 73살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중국에서 40년 넘게 사역했다. 그는 양자강이 보이는 전장시의 한 공동묘지에 가족들과 함께 묻혔다“(강준민, 『리더의 고독』 (서울: 두란노, 2022), 105-106).

[9] 일생을 살아가면서 허드슨 테일러만큼 사랑하는 이들을 많이 잃은 아픔을 맛본 이도 드물 것이다.

C.C.C의 한국 대표셨던 김준곤 목사님 역시 남달리 가족 상실로 인한 아픔을 누구보다 많이 뼈저리게 경험했던 분으로 알고 있다.

가족 상실의 아픔을 어떤 사람보다 더 크고 강하게 경험하셨던 분이 또 한 분 계신다. 누굴까?

[10] 그분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시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위해 십자가에 희생시키신 바로 그분 말이다. 온 인류의 죄를 뒤집어쓰신 채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랬던 분이 당신이 사랑하는 신실한 사역자들에게 가족 상실의 아픔을 경험하도록 허용하셨다면 분명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믿어야 한다. 그게 무엇인지 아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11] 정말로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뜻한 바가 있어서 그런 아픔과 고통을 허락하신다는 사실과 또한 그분이 그 고난과 슬픔에 동참하신다는 사실이다. 시 119:71절이 떠오른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유 없어 보이는 고난과 고통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익을 주는 것임을 믿고, 늘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지혜자들이 다 되었으면 좋겠다.

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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