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북송 피해소송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왼쪽부터) 가와사키 에이코, 리소라 씨 ©트루스포럼 캡쳐

재일한인동포 북송 피해자인 가와사키 에이코와 리소라 씨가 5일 트루스포럼(대표 김은구)이 주최한 ‘재일교포 북송 피해소송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라는 제목의 정기모임에서 피해자 증언을 했다. 이날 행사는 유튜브로도 생중계됐으며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제작한 김덕영 영화감독도 배석했다.

재일동포 북송사건은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일본에서 거주했던 재일한인동포 약 10만여 명이 북송된 사건이다. 먼저 2003년 북한에서 탈출한 후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는 가와사키 에이코 씨는 “2차 대전 직후 폐허를 겪은 일본 정부는 남아있던 일본 재일동포를 일본에서 내보내고 싶었다. 일본 정부로선 전쟁 직후 어려워진 직업 제공 등의 문제로 재일동포를 본국으로 귀국시키고 싶었던 것”이라며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재일동포의 남한 귀환을 위해 한 사람당 식민지 피해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일본에 요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재일동포들 사이에선 북한을 지지하는 조총련계로부터 설득을 당해 자본주의보다 무상·평등 배급을 기치로 내걸던 북한 사회주의에 매료된 이들도 많았다”며 “원래 8.15 해방 직후 북한 김일성 주석은 ‘자본주의에 물든 사람은 거부하겠다’며 일본 정부의 재일동포 북송 제안을 반대했으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탓에 노동력 부족을 겪기도 했다”고 했다.

특히 “북한은 지하자원이 풍부했고 공업지대 분포율도 높아 남한보다 산업규모가 컸다. 그래서 김일성 주석은 다시 재일동포의 북송 사업을 제안했다”고 했다.

그녀는 “재일동포들은 당시 조총련계의 지속적이고도 기만적인 홍보로 인해 북한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졌으며, 여기에 국제적십자사도 관여하면서 인도주의적 허울을 쓴 북송사업을 신뢰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재일동포 북송사건 피해자 리소라 씨는 “북한에서 태어나 탁아소에서 심한 차별을 겪었는데 이유는 어머니가 북송한 재일동포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이라며 “북한 사회는 더 이상 답이 나오지 않는 사회라는 생각에서 탈북을 결심했고, 보위부의 추격 끝에 겨우 일본에 입국해 재일동포 북송사건 피해와 관련한 진실을 파헤치고자 일본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그녀는 당시 재일동포의 북송 사건은 일본적십자사, 북한을 지지했던 조총련계, 일본과 북한 정부의 합작품이었다고 지적했다. 리 씨는 “일본은 2차 대전 패전 이후 재건에 따른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지만 재일동포는 취업 전선에서 철저히 차별했다”며 “한국전쟁과 도쿄올림픽을 전후로 중흥기를 이룬 일본은 그럼에도 끝까지 재일동포를 차별했다”고 했다.

이어 “당시 재일동포 6명 중 1명은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일본은 국가적 부담을 많이 느껴 결국 재일동포 60만 명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된 10만 명을 북송하기로 추진했다”며 “당시 재일동포들은 인도주의 단체인 국제적십자사의 개입으로 북송 사업을 신뢰했지만 결국 거짓으로 드러나 적십자사의 과오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있으나 그들은 이 사건을 묵살하고 있다”고 했다.

김덕영 감독은 “재일동포 북송사건은 1959년부터 1984년까지 187회에 걸쳐 9만 3,339명이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간 사건이다. 이 가운데 현재 약 100명이 탈북했다. 당시 북송한 재일동포 중 일본국적자 출신은 6,700여명, 남한 출신은 98%”라며 “이는 20세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폐쇠된 집단인 북한으로 이주민을 돌려보낸 유일한 사건이다. 도올 김용옥은 북송 사건을 재일동포의 자발적 이주에 따른 선택으로 규정하지만, 두 분의 증언대로 이 사건은 자발적 이주가 아닌 기만과 억압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2차 대전 이후 일본 재일동포의 약 80%는 실직 상태로 법적 지위를 보장받기 어려운 탓에 직업도 얻을 수 없어, 결국 빈민촌 등지에서 생활하면서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며 “일본 후생성은 1956년부터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적 정책을 펼치고 대대적 단속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시 아사히신문은 재일동포에 대해 ‘그들은 상당히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며 가짜뉴스를 퍼뜨리기도 했다. 재일한국인 상당수는 당시 생활보호수급 혜택을 박탈당했고 이로 인해 일본 정부는 연간 예산 약 24억엔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재일교포 북송 피해소송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김덕영 감독이 재일교포 북송 피해 사건 관련 간략한 브리핑을 전하고 있다. ©트루스포럼 캡쳐

그는 “당시 재일동포 북송 사건에서 일본정부의 역할은 상당했다. 요시다 내각은 1952년 내건 공약에서 ‘악질 조선인 강제 송환 강화, 위험분자, 사회주의자, 범죄자 추방, 재일조선인 추방이 일본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도 했다”며 “1955년 일본 외교관 이노우에 마스타로는 일본적십자 외사부장에 취임했는데, 공산권 국가를 중심으로 외교활동을 주로 했던 그는 재일동포 북송사건의 주요 설계자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정부는 재일동포 북송 사건에서 국제적십자를 내세워 인도주의 사업으로 포장할 것을 강조했다. 심지어 당시 시마즈 다다쓰구 일본적십자 대표는 ‘국제적십자의 이름만 빌려달라라’고 국제적십자에 요청하기도 했다”며 “아울러 50년대 말 북한 정세는 한국전쟁 이후 중국 지원병 30만 명이 철수하면서 부족해진 노동력을 메꾸고자 재일동포 북송사업을 강력히 원했다”고 했다.

또 “북한은 국제적십자의 개입 하에 인도주의 사업으로 포장된 재일동포 북송사업을 통해 이미지 메이킹을 꾀할 수 있었고, 재일동포의 자발적 선택에 따라 북한으로 이주한다고 날조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남한에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광고할 좋은 기회로도 봤다”며 “이와 맞물려 1957년 일본 내 좌익세력인 조총련계는 재일동포를 상대로 북한 귀국 캠페인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차별을 받던 재일동포들은 조총련이 적극 홍보한 ‘북한은 지상낙원’ ‘북한은 무상의료·무상배급·세금면제, 직업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주의 국가’ 등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울러 “국제 인도주의 단체인 적십자는 자발적 귀환 의사를 밝히는 세 가지 원칙인 ▲특별실 설치 ▲일대일 면접 ▲외부인 배제를 무시한 채 일본적십자사 관계자의 배석을 허용함으로써 재일동포의 북송을 암묵적으로 부추겼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아사히신문 기자 데라오 고로는 ‘38도선의 북’이라는 저서에서 ‘북한은 일본의 생산성을 추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일본 지식인·작가·기자 모두가 재일동포의 북송을 유도하고자 사실 날조에 가세하기 시작한 일본 언론의 기만적 행태”라며 “그러나 당시 미국은 침묵했다. 결국 북송된 재일동포들은 일본 정부와 지식인 집단, 그리고 북한 정부에 의해 기만당한 것”이라고 했다.

특히 “북한은 1971년 재일동포들을 동요계층으로 규정하면서 탄광으로 보내고 때론 숙청도 시작했다. 북송된 한 재일동포가 일본에서 거주 중인 가족에게 보낸 편지는 ‘우리는 마을 밖으로 외출할 자유가 없다. 큰형 여기 오지 마십시오 여동생도 역시 북으로 와서는 안돼요. 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옳았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했다.

재일교포 북송 피해소송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김덕영 감독이 재일교포 북송 피해 사건 관련 간략한 브리핑을 전하고 있다. ©트루스포럼 캡쳐

이어서 가와사키 에이코 씨는 “저는 조총련계 인사의 제안으로 조총련계 학교에 입학했는데 거기엔 김일성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학생들에게 김일성 찬양가를 부르도록 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재일동포 북송사업이 시작되자 ‘북한은 세금 면제, 의료·집 무상 제공,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이 보장된 국가’라고 강조하기 시작했다”며 “북한의 지상낙원설에 세뇌당한 학생들도 동요하면서, 적극 북한 사회주의에 참여하자고 학급 학우들에게 설파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녀는 “선생님들과 학우들의 계속된 북한 찬동 선전에 휘둘려 북한으로 가기로 결정했다”며 “일본이 재일동포의 북송 비용 전부를 지불하기로 북한과 협약을 맺은 이 북송사업에 참여하고자 저는 준비된 북송선을 타고 북한 청진항으로 출발했다. 항구에 도착할 즈음, 멀리 보이는 청진항 규모는 기대와 달리 초라했고, 환영나온 북한사람들의 행색도 거지와 같았다”고 했다.

특히 “부두 근처에 배가 들어서면서 ‘야 거기 탄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내리지 말고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일본말도 들렸다. 알고 보니 먼저 북송을 결정해, 이미 북한에 살고 있던 조총련계 학교 선배의 목소리였다”고 했다.

이에 김덕영 감독이 “당시 재일동포들이 북한을 선망했냐”는 질문을 던지자, 가와사키 에이코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북한 평양은 외관적으론 매우 세련됐으나 평양만 벗어나면 결코 아니”라며 “평양 외곽 지역에 거주했던 저는 주로 대두콩 등 잡곡을 배급받았는데, 대두콩 100%만 주니까 하루만 먹고 이후 먹지를 못했다. 자주 위장병에 시달렸고 북송 재일동포들 가운데 선전선동에 속아 정신장애를 격은 이들도 상당수였다”고 했다.

김 감독은 또 “북한 재일동포들의 민중봉기는 있었는지”를 묻자 에이코 씨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에이코 씨는 “한 재일동포는 북송선 탑승시 벽에 걸렸던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 그림을 실수로 떨어뜨리고 밟았는데 이후 북한에 도착하자, 보위부 관계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일’이라고 분개했다. 이후 그 재일동포의 생존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며 “북한에서 생활하면서 함부로 말과 행동을 하지 못했다. 말을 잘못했다 감시에 걸려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 “일반 생필품 등 물건들은 상점에서 돈을 주고도 살 수가 없었다. 조총련 관계자들은 일본 재산은 모두 일본에 놔두고 북한으로 갈 것을 설득했는데, 알고보니 재산 모두를 조총련 관계자들이 가져갔다”고 했다.

김덕영 감독은 “미국 故 오토 웜비어 씨 유가족이 제기한 북한 강제억류 피해 사건 관련 피해보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얻어낸 것과 달리, 올해 3월 일본 재일동포 북송 피해자들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일본 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기각처리 됐다”며 “이에 일본 재일동포 북송 피해자 단체는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가와사키 에이코 씨는 “호소만 갖고는 안 되며 법적 투쟁을 통해 북한에 타격을 가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리소라 씨는 “올해 3월 판결은 패소가 아니라 기각”이라며 “보통 재일동포 북송사건이 재일교포들의 자발적 선택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판결에선 재일교포의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당시 조총련 등 단체들의 기만·선동에 따라 타의적 결정이었다고 판시했고 이를 확인받았다는 데 매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현재 일본 고등법원에 항소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재일교포 북송 피해소송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왼쪽부터) 김덕영 감독, 가와사키 에이코 씨, 리소라 씨, 김은구 대표 ©트루스포럼 캡쳐

이어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는 “국제적십자의 당시 협력적 행태는 인도주의적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북한 정부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생각은 있는지” “공소시효 초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리소라 씨는 “국제적십자는 북송 사업과 관련해 핵심적 문건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이에 우리는 한국에 입국해 유엔(UN) 서울인권사무소에 호소를 한 뒤 이들이 책임을 지고 59년부터 84년 사이 재일교포 북송 사업 관련 문건을 적십자로부터 넘겨받은 후 분석을 거치는 중”이라고 했다.

또 “일본을 상대로 한 재판은 맨 마지막에 할 것”이라며 “당시 재일동포 북송 사건과 관련 일본 정부의 음모가 드러날 것이며, 일본 정부의 반발도 다소 있겠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일본 국민들도 진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청중의 “재일동포 북송 피해자 단체가 한국정부에 북송사업 부서 신설을 요구하면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이 있을 수 있다“는 질문에 리소라 씨는 “이 문제는 복수나 피해보상의 차원이 아니라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구제 요청”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 외교권도 일본이 정치적 시각이 아닌 인도주의적 해결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다루도록, 외교적 차원에서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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