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 설교자의 인생은 참 고달프고 힘들다. 설교자인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직업이 하나 있다. 가수다. 왜 내가 가수를 부러워할까? 가수는 신곡이 하나 나오면 그 곡으로 적어도 4~5년 노래를 부른다. 대중들 앞에 설 때마다 신곡이 아닌 자신의 18번 송만 불러도 팬들은 환호하고 좋아한다. 설교자는 한 주만 같은 설교를 해도 쫓겨나고 말 것이다. 평생 30~40년 설교를 하는데, 매번 새로운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게 설교자의 고달픈 일생이다.

[2] 내가 표현하는 설교자는 다음과 같다. '일주일 내내 임신한 배를 움켜잡고 애를 쓰다가 주일날 갖은 수고를 다하여 아이를 해산한다. 해산 후 ‘휴!’하고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다시 임신한 자신의 모습을 다음날인 월요일에 발견한다.' 그렇다. 이게 설교자의 삶이다. 설교자라면 누구나가 다 날마다 매일 매순간 오는 주일에 전해야 할 설교문 작성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릭 이젤의 『설교, 변하는 청중을 사로잡으라』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3] “설교란 설교문을 준비해서 그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를 준비하여 그를 전하는 것이다.” 릭 이젤, 『설교, 변하는 청중을 사로잡으라』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4), 143.

모든 설교자들이 명심해야 할 소중한 문장이다. 자신의 청중들을 위한 식단을 준비하는 설교자들에게 맹점이 하나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자기 성도들이 귀 기울여 듣고 회개하고 변화하고 열매 맺어야 할 말씀을 잘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 늘 신경을 쓴다.

[4] 문제는 남들이 들어야 할 말씀 준비에는 여념이 없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씀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하여 변화를 경험하지 않는 설교자의 설교에 성도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청교도 목사 존 오웬(John Owen)은 이렇게 말한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먼저 듣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된 설교를 할 수 없다.” C. H. Spurgeon, Lectures To My Students (Complete & Unabridged). (Grand Rapids, MI: Zondervan, 1954), 15.

[5] 이해인 수녀가 쓴 한 편의 시가 떠오른다.

<말을 위한 기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으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6] 이 시의 내용처럼 사람들은 태어나서 저마다 말이란 씨들을 많이 뿌리고 살아간다. 그중 설교자들은 누구보다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 허다한 말의 씨들 중에서 허공으로 사라진 것도 있고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맺은 열매도 있겠지만, 내 속에서 선한 열매를 맺은 말의 씨들은 얼마나 되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강해설교’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던 해돈 로빈슨 교수의 정의가 있다.

[7] “강해설교란 성경본문을 그 자체의 정황(context) 속에서 문법적이고 역사적이며 신학적으로 연구하여 찾아낸 성경적 개념(biblical concept)을 오늘의 상황에 전달하는 것으로서, 이 성경적 개념을 성령 하나님께서는 먼저 설교자의 인격과 경험 속에 적용시키시며 그 다음에 설교자를 통하여 그의 청중들에게 적용시키신다. Haddon W. Robinson, Biblical Preaching: The Development and Delivery of Expository Messages, 2d ed. (Grand Rapids: Baker, 2001), 130.

이 정의 속에도 본문 저자의 핵심 메시지를 ‘먼저 설교자의 인격과 경험 속에 적용시켜야 함’에 대한 언급이 나옴을 보라.

[8] 그렇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위치에 있다 하나 그 역시도 자신이 전하는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하는 연약한 죄인임을 놓쳐선 안 된다. 약 3:1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아는 만큼, 전하는 만큼’ 그 내용들에 의해 심판을 받아야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모든 설교자들은 꼭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9] 설교자의 사명이 얼마나 중대하고 무거운 것인가를 제대로 안다면 목사의 길로 가는 이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미 목사로 부름 받아 그 길로 가고 있는 이들은 먼저 자신이 전하는 말씀의 내용대로 사는 것이 가장 필요함을 늘 기억하고 살자.

이런 목사들로부터 말씀을 전해 받는 성도들은 늘 말씀을 준비해서 전해주는 수고를 감내하는 설교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10]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 5:17).

오늘도 전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열매 맺는 삶을 충실히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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