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니 크로스비의 가장 가까운 모든 이들은 그녀가 가장 많은 일을 할 때 죽었다. 브래드베리가 죽은 후, 로우리 박사의 죽음은 역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30년 후 그가 뉴저지 주 플레인필드 그의 집에 누워 있을 때, 패니는 유람선을 타고 강을 건너 그를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그들은 함께 동역하고 사역했던 세월들을 기억하면서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에 친구를 위해 시를 썼다.

곧 우리가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울면,

하나 씩 하나 씩 그들은 강가로 다가오고;
곧 그들의 감미로운 확신을 알게 된다.
우리가 천국에서 각각의 깨진 고리를 찾게 될 것이라는 것을,

곧! 그리고 그렇게 영광스러운 새벽,
출렁이는 물결 너머 아름다운 아침의,
우리가 깨어났을 때 우리의 구세주가 기뻐하게도,
완전히 그리고 순전하게 우리는 만족하게 될 것임을.

   패니 크로스비는 항상 윌리엄 브래드베리와 보낸 4년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특히 그는 그녀에게 많은 중요한 사람들을 소개해주었다. 루시우스 비글로, 실베스터 메인, 필립 필립스, 로우리 박사 등 그녀의 사역에 있어 훌륭한 동역자들이었다. 브래드베리는 그녀에게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노래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커다란 유산을 남겼다. 그리고 그 후 브래드베리가 원했던 것처럼 46년 동안 그녀의 사명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윌리엄 하워드 돈
윌리엄 하워드 돈(William Howard Doane)

   브래드베리가 패니 크로스비에게 소개해주었던 많은 동역자 가운데 대표적인 한 사람을 꼽으라면 그것은 윌리엄 하워드 돈(William Howard Doane, 1832-1915) 박사일 것이다. 패니는 그와 절친한 친구처럼 동역하면서 많은 은혜의 찬송가를 만들어냈다. 패니 크로스비는 돈 박사와 모든 것에서 마음이 잘 맞았다. 특히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섭리에 따라 사역하는 모든 것이 동일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와 함께 사역하는 것을 더욱 좋아했다. 돈 박사는 1832년 2월 3일 패니 크로스비가 태어났던 곳인 코네티컷 주 푸트남에서 태어났으며 1848년 우드스탁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그리고 1857년 아버지의 동업자의 딸 프랜시스 트리트와 결혼했다. 그는 30세도되기 전 ‘페이 컴퍼니’를 인수해 그 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사업적인 수완이 좋아서 많은 단체의 회장을 맡았으며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어릴 때부터 늘 좋아했던 교회음악의 관심이 남아있었다. 그는 음악적 실력도 뛰어나 12세 때에는 플루트 연주자로 정기연주회를 했으며, 13세 때에는 바이올린과 더블 베이스의 연주자가 되기도 했다.

   그는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자 음악에 대한 열정이 분출됐다. 보스턴에서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에게 음악교육을 받으면서 실력을 쌓아나갔다. 하지만 그가 찬송가 작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는 갑자기 몸이 아프면서였다. 어느 날 그는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고 오랜 기간 병원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갑자기 어느 날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는 하나님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만일 하나님께서 눈을 뜨게 하신다면 죽을 때까지 주를 위해 살겠다는 서원기도를 했다. 그 기도가 끝난 후 기적처럼 24시간 이내 회복되었고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주를 위해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 남은 일생을 복음전도에 힘쓰기로 결심한 돈 박사는 그가 벌었던 엄청난 물질을 주님께 모두 드리기로 했다. 그는 선교회와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회중을 위한 찬송가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돈 박사의 첫 찬송가 집 “주일학교 보석”이 1862년에 출간되었고, 1864년에는 “작은 광선”이 1867년에는 “실버 스프레이”가 뒤를 이었다. 돈 박사는 모든 찬송가는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그분을 노래하는 목적이어야한다고 말하면서 무엇보다도 기도로 지어져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기도를 통해 마음이 감동되지 않는 찬송가는 발간하지 않았다.
어느 해 5월 도시축제기간에 한 친구 목사는 돈 박사에게 ‘파이브 포인츠 선교회’의 10주년 기념식에 쓸 새로운 시를 찾아달라고 했다. 돈 박사는 새로운 시를 위해 수십 명의 작가들을 만나 시를 검토했지만 그가 원하는 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친구 로우리 박사는 돈 박사가 어려움에 처해있음을 알고선 패니에게 그녀 시 중 한 편을 보내라고 청했다. 그 때, 패니는 비록 돈 박사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녀가 작업하고 있었던 “더욱 그리스도처럼”(찬송가 454장 “주와 같이 되기를”)이라는 제목의 찬송가를 심부름꾼 소년에게 보냈다. 돈 박사는 친구 목사와 이야기로 바빴었고, 심부름꾼이 도착했을 때 그 찬송가를 옆에 치워 놓았었다. 나중에 그가 우연히 그것을 읽었을 때 즉시 흥분했다. 그는 소년을 추적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 날 남은 하루 내내 그는 패니 크로스비가 사는 곳을 알기 위해 물으며 다녔다. 그날 저녁 늦게 그는 그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패니 크로스비를 만나고선 기쁨에 넘쳤다.

   “당신을 찾아서 너무 기쁩니다. 난 하루 종일 당신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네요.”

   돈 박사는 자신을 소개했고, 그들은 잠시 동안 이야기를 했다. 대화가 끝날 무렵 그가 말했다. “당신에게 찬송가 값을 지불하고 싶습니다.”

   그가 떠나면서 패니의 손에 무엇인가를 쥐어주었다. 패니는 늘 그랬던 것처럼 2달러짜리 지폐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 금액이 확실치 않았고 그래서 물었다, “이게 뭐죠?”

   “20 달러입니다.”그가 말했다.

   “네? 그건 내게 너무 많아요.” 패니가 말했다.

   “하나님이 내게 그 찬송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20달러 이상을 받게 될 겁니다.”

   돈 박사는 다음 날 저녁 새로운 제목을 가지고 왔고 패니에게 찬송가를 쓸 수 있을지 물었다. 그녀는 동의했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돈 박사는 즉시 돌아와 “더욱 그리스도처럼”(찬송가 454장 “주와 같이 되기를”)의 찬송가 작업을 했고 좋은 곡조가 떠올랐다. 친구 목사가 좋은 찬송가 시를 찾았는지 물으러 왔을 때, 돈 박사는 행복하게 대답했다. 함께 그들은 근처 교회까지 걸어갔고, 그곳에서 친구 목사는 돈 박사가 찬송가를 연주하고 부르는 동안 오르간을 쳤다.

난 더욱 더 그리스도처럼,
내 구세주가 내게 사시도록
내 영혼은 평화와 사랑을 느끼고,
나를 비둘기처럼 온유하게 만드네.
난 더욱 더 그리스도처럼 갈 것이니,
이 세상 순례자로 있을 때
내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내 구세주가 내게 사시도록.

<찬송가 454장>
주와 같이 되기를 내가 항상 원하나
온유하고 겸손한 주의 마음 주소서
세상에서 우리가 나그네로 있을 때
주의 형상 닮아서 살아가게 하소서

   찬송가를 반쯤 끝냈을 때 그 친구 목사는 눈물을 흘리느라 오르간 연주를 계속 할 수 없었다. 그 친구 목사는 오르간 뒤에서 나와 돈 박사의 목에 그의 팔을 얹으면서 소리쳤다, “돈 박사, 어디서 이걸 얻었나요?”

   “패니 크로스비입니다. 난 그 시를 지금 바로 곡으로 만들어 끝낸 것입니다.”

   돈 박사는 이후 그녀를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배려했다. 둘 다 하나님의 섭리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관계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맺어준 주님의 크신 은혜라고 믿었다. 돈 박사는 크로스비에게 충분한 대우를 해주었다. 그는 패니 크로스비를 이야기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소중한 보석을 주셨습니다.’고 말하기를 좋아했으며 크로스비를 통해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늘 감사하며 고백했다.

   우리 찬송가에는 돈 박사와 크로스비가 함께 한 찬송가 중 11편의 찬송가가 실려 있다. “예수여, 나를 십자가 가까이 지키소서”(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와 찬송가 496장 ‘십자가로 가까이’로 원가사가 같음) “죽어가는 자를 구원하라”(찬송가 498장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예수 품에서 안전한”(찬송가 417장 ‘주 예수 넓은 품에’)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오 온유한 구세주여”(찬송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삶보다 더한 구세주”(찬송가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오, 주님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찬송가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예수님께 오직 한걸음만”(찬송가 532장 ‘주께로 한 걸음씩’)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위한 말” “예수님이 그의 종들을 상주시기 위해 오실 때”(찬송가 ‘언제 주님 다시 오실는지’),” “축복받은 기도의 이 시간”(찬송가 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등이다.

   돈 박사는 사업차 여행 중일 때 기차 안에서 곡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1868년 4월 말경에 그는 평소처럼 기차에서 곡을 썼고 뉴욕에 막 도착했을 때 크로스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패니,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찬송가를 써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기차 안에서 막 작곡한 찬송가 곡에 붙일 가사를 부탁하려고 왔습니다. 그 곡을 위해 가사를 써줄 수 있겠어요? 다시 기차를 타고 떠나기 전 단지 40분의 시간밖에 없어요. 가기 전에 그 곡에 붙일 가사를 줄 수 있겠어요?”

   돈 박사는 그 곡을 허밍으로 불렀고 패니는 조심스럽게 듣고 있었다. 그 곡을 다 들었을 때, 그녀는 박수치고 외쳤다. “그 곡은 ‘예수 품에서 안전한’(찬송가 417장 ‘주 예수 넓은 품에’)이예요! 15분 정도면 그 곡의 제목에 맞는 찬송가 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녀는 서둘러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늘 해왔던 대로 무릎을 꿇고 주님께 도움을 구했다. 그리고 앉아서 머리를 끄덕이며, 입술을 움직이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웃으며 말했다. “돈 박사님, 떠날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요?”

   “약 10분 정도요,” 그가 대답했다.

   “오, 좋아요. 그 시간이면 박사님께 찬송을 적게 할 충분한 시간이에요!”

   돈 박사가 크로스비가 말하는 가사를 다 적었을 때, 그녀가 말했다.

   “다 마쳤나요?” 돈 박사는 거의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죠?”

   “네, 축복의 성령님께서 저에게 말씀해주셨어요. 박사님께 3절을 적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패니는 그 가사를 암송했다.

예수의 품에서 안전한
그의 온유한 가슴에서 안전한,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그늘을 드리우고,
내 영혼은 달콤한 쉼을.
들어라! 이 천사들의 목소리를,
내게 노래로 태어나네,
영광의 들판을 넘어서,
푸른 바다를 건너서.

<찬송가 417장>
주 예수 넓은 품에 나 편히 안겨서
그 크신 사랑 안에 나 편히 쉬겠네
영광의 들을 넘고 저 푸른 바다 넘어
천사의 노래 소리 내 귀에 들리네

가진수 교수
가진수 교수

   돈 박사는 그 찬송가를 즉시 주일학교에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찬송가 집으로 출간되었다. 그 찬송가는 세계에서 가장 잘 불리는 찬송가 중 하나가 되었다.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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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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