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경상수지 사상 최대 흑자, 반도체 호황 이후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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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로 번 달러의 국내 투자 환류와 초격차 확보가 관건
지난 2월 1일 오후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놓여 있다. ©뉴시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5월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2026년 5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5월 경상수지는 386억1000만 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최대치였던 지난 3월의 379억3000만 달러를 넘어선 규모로, 경상수지는 37개월 연속 흑자 흐름을 이어갔다.

상품수지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5월 상품수지는 378억6000만 달러 흑자로 집계됐으며,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62.9% 증가한 943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IT 품목 수출이 128.9% 급증했고, 비IT 품목도 10.0% 늘면서 전체 수출 증가를 이끌었다. 수입은 22.2% 증가한 564억8000만 달러로 나타났다.

경상수지 사상 최대 흑자는 한국 경제가 강한 수출 흐름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다만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의 흑자를 단순한 호황 신호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의존도와 환율 흐름, 흑자로 확보한 달러가 국내 투자와 성장 기반 확충으로 이어지는지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가 이끈 사상 최대 경상수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5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413억 달러로 집계됐다. 유성욱 한국은행 금융통계부장은 올해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가 1515억 달러라며, 6월에도 10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면 전망치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상품수지 흐름을 고려하면 상반기 전망치를 웃돌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비스수지는 10억9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지만, 여행수지는 5000만 달러 흑자로 전환했다. 여행수지는 지난 3월 11년4개월 만에 흑자를 기록한 뒤 다시 적자로 돌아섰지만, 5월 입국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19.4% 증가하면서 한 달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본원소득수지는 21억7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고, 배당소득수지도 11억5000만 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금융계정 순자산은 310억8000만 달러 증가해 지난 3월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증가폭을 기록했다.

다만 금융계정에서는 국내외 자금 흐름 변화도 나타났다. 내국인의 해외주식 투자액은 76억 달러로 전월보다 순매수 규모가 확대됐다. 반면 외국인의 국내주식 투자액은 310억5000만 달러 감소해 역대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외국인 투자자의 리밸런싱 종료 시점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흑자 규모보다 흑자의 활용이 중요”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 생산능력 확대와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한 경제지 기고문을 통해 수출 흑자가 확대되는 동시에 해외투자도 증가하면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로 환류되지 않고 다시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원화 약세와 환율 괴리 장기화의 배경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권 원장은 최근 수출이 사상 처음 월 1000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단기적으로는 외국인의 차익실현과 환헤지 수요 등이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 투자와 소비로 흡수되지 못하고 해외 금융자산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흐름은 흑자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기반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권 원장은 환율 수준 자체보다 환율이 경제의 실질 여건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흑자로 확보한 달러가 국내 생산능력 확충으로 연결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환율 안정 정책과 함께 수출기업의 대규모 국내 투자,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외국인 직접투자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결국 현재의 경상수지 흑자는 분명한 긍정 지표지만, 확보한 자금이 국내 공장과 인프라, 인재와 기술 투자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장기 성장 동력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흑자 규모보다 흑자의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이유다.

◈반도체 호황에 ‘착시 효과’ 경계

반도체 호황이 한국 경제 회복세를 이끌고 있지만, 이를 ‘반도체 착시’로 경계해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역시 한 경제지 기고문을 통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1.7%와 관련해 반도체 수출 확대가 주요 성장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산업의 흐름은 상대적으로 부진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기고문에서 그는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가 현재 반도체 호황의 핵심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반도체 지표의 호조가 내수 부진과 다른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가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거 사례도 경고 요인으로 제시됐다. 기고문은 1995년 한국이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사상 처음 수출 1000억 달러를 돌파했지만, 이듬해 D램 가격 급락으로 반도체 의존도가 높았던 경제가 큰 충격을 받았고, 경상수지 적자 누적과 1997년 외환위기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AI 반도체 호황 역시 공급망 안정과 후발 주자의 시장 진입이 본격화될 경우 가격 조정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우려가 있다. 중국의 범용 반도체 추격과 고부가가치 시장 진입,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 등이 맞물리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은 호황기일수록 미래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호황을 미래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경제 전문가들의 우려는 현재의 흑자를 부정적으로 보자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의 성과를 미래 성장 기반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상수지 사상 최대 흑자와 반도체 호황은 한국 경제에 분명한 기회지만, 특정 산업 의존과 환율 왜곡, 투자 환류 부족이 이어질 경우 장기 성장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반도체 산업이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자산이 됐다며, 정부 차원의 인프라 지원과 세제 혜택, 인재 양성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 역시 호황기에 확보한 자본을 미래 원천기술 개발과 경쟁력 강화에 재투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와 기업은 경상수지 흑자를 산업 기반 확충과 기술 초격차 확보, 국내 투자 확대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호황을 미래 성장의 밑천으로 전환하려면 흑자로 확보한 자금이 국내 생산능력과 연구개발, 인재 양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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