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교리가 온전히 믿어진다면, 죄인이 회개하기만 한다면 그가 얼마나 악한 삶을 살았든, 지은 죄가 얼마나 많든 간에 영혼이 멸망할 것이라는 의심이나 두려움이 설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은혜는 사람들의 눈에 가려져 있습니다. 마귀가 그것을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이 은혜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그 안에 사람을 이끄는 능력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논증보다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긍휼과 그에 관한 계시는 죄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입니다. 긍휼은 녹이는 성질이 있습니다. 죄로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게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를 꺼리던 마음을 생명을 위해 기꺼이 나아가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죄인들 앞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존 번연 - 예루살렘 죄인도 구원받는다
종교나 신앙과는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결국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등의 존재론적 질문을 하기 마련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역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와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나의 신앙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며, 하늘 나라는 어떤 곳일까?', '하나님 나라는 우주와 어떤 관계인가?" 등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질문을 하지만, 이런 것은 사람이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서 곧 잊어버린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무의식 속에 묻어두는 한, 기회가 있을때마다 의식 속으로 뚫고 들어와 괴롭힘으로써, 활기차고 생생한 신양을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다.
김태철 – 하나님 나라와 우주
필자는 이슬람권에서의 선교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을 깨달았다. 첫째, 선교는 ‘함께 살아가는 사역’이다. 이슬람 문화 속에서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며 그 공동체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하여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동일 화시키는 일체감이 중요하다. 경제적으로 전근대성을 면하지 못한 그들이지만 그들의 전통과 문화 양식에 따라 자유와 존엄성을 가지고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문화의 개별성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을 '함께 사는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을 향하여 '그들의 문화의 옷'을 벗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문화의 옷'을 훌훌 벗어던져서 의식의 동질성을 갖게 되는 것이 타 종교, 타 문화권 선교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안 되면 물과 기름처럼 겉돌거나 문화적 우월감 속에서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둘째, 선교는 ‘섬기는 사역’이다.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돌보는 일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가장 진실한 복음의 표현이다. ‘우리의 관심은 한 종교(religion)가 아니라 한 인격(person)이다.’라는 말을 명심하자.
김진홍 – 무슬림 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