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면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분은 제국의 흥망성쇠와 우주 만물의 질서를 주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분명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통로는 성도의 고난입니다. 뜨겁고 강렬한 영적 체험이 고갈될 때, 지성의 고백과 사유의 표현 또한 주님과의 깊은 만남에서 맺히는 열매라는 깨달음은 큰 위로가 됩니다. 비록 흐릿하고 모자랄지라도,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을 향한 진심이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감히 사랑이라고 인정해 주시기에, 우리는 겸허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신 주님께 베드로가 부끄러움에 잠긴 목소리로 내놓았던 답은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21:18).
김지은 - 나의 어둠을 밝히시네
우리는 삶이 어려워지면 홀로 남겨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고통 속에 깊이 빠져들수록 더욱 깊은 소외감을 느낀다. 성경은 그런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는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신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분은 우리만 느낀다고 생각하는 슬픔을 이미 과거에 직접 느껴보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그것을 능히 짊어지실 수 있다. 우리의 죄는 극한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손길도 극한으로 치닫는다. 그분의 구원이 항상 우리의 죄를 압도하고 능가한다. 그 이유는 그분이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이다.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라는 말씀이 육신을 입고 나타나서 월요일 아침에 학교나 일터에 가기 위해 우리처럼 옷을 차려입는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말씀은 2천 년 전에 이스라엘 땅을 돌아다니면서 치유와 가르침과 포옹과 용서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켰던 한 갈릴리 목수의 형상으로 나타나셨다.
데인 오틀런드 - 예수님의 마음
회심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이며, 회심 이후의 가장 큰 어려움은 그 마음을 하나님과 함께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종교의 본질적인 긴장이 있으며, 이것이 생명으로 가는 길이 좁은 길이고 천국 문이 좁은 문인 이유입니다. 손을 깨끗이 씻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위선자들이 겉으로는 깨끗한 손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정결케 하고, 살피며, 올바르게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일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맛보는 달콤함만큼 마음을 꾸준히 그리고 균형 있게 붙잡아 주는 것은 없습니다. … 하늘의 일에 대한 기쁨이 세상의 일에 대한 기쁨만큼 크다면, 마음이 위를 향하는 움직임도 그만큼 자유로울 것입니다.
존 플라벨 - 성도다운 삶의 제1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