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는 1심보다 감형된 형량이지만,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국가 최고위 공직자로서 헌법적 책무를 저버린 채 비상계엄 과정에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2-1부는 7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내란 방조 등 혐의로 기소된 한 전 총리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 가운데 처음으로 나온 항소심 결론이다. 형량은 1심에서 선고된 징역 23년보다 8년 줄어든 수준이며, 내란 특검팀이 1심에서 구형했던 형량과 동일하다.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한 전 총리가 국헌 문란 목적 아래 내란 중요임무에 종사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국무회의 개최를 건의하고, 국무위원 심의를 거친 것처럼 외관을 형성하려 했던 행위 등을 핵심 근거로 들었다.
또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무위원들에게 관련 문서 서명을 받으려 한 점 역시 내란 중요임무 종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행정 절차 문제가 아니라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 체계를 흔든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국가 최고위 공직자의 책임을 무겁게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비상계엄 절차 관여·사후 계엄문 작성 모두 유죄 인정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주요 기관 봉쇄 및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이행 방안을 논의한 점에 대해서도 유죄로 판단했다.
이와 함께 비상계엄 해제 이후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하자를 보완하기 위해 작성된 이른바 ‘사후 계엄 선포문’ 작성과 폐기 과정에도 관여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작성한 사후 계엄 선포문에 한 전 총리가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함께 서명한 뒤 이를 폐기한 혐의에 대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선포문을 보지 못했다’는 취지로 증언한 부분 역시 위증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김용현 전 장관이 이상민 전 장관에게 비상계엄 관련 문건을 전달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부분에 대해서는 1심 유죄 판단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또 비상계엄 선포 이후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전화해 국회 상황을 확인한 행위와 계엄 해제 이후 국무회의 심의를 지연시킨 행위 등에 대해서는 1심과 동일하게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참석 예정 행사에 대신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수락한 행위 역시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후 계엄 선포문을 실제 행사했다는 허위공문서 행사 혐의에 대해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 “국민과 역사 앞 책임 무거워”…한덕수 측 상고 방침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 전 총리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았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과 지위의 막중한 책무를 저버린 채 비상계엄 절차의 정당성을 갖추려는 방식으로 내란 행위에 가담했다고 지적했다. 또 자신의 책임을 감추기 위해 사후 범행까지 저질렀다며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의 제1보좌기관이자 행정부 2인자로서 대통령 권한이 헌법과 법률에 맞게 행사되도록 보좌하고, 잘못된 권한 행사에 대해서는 견제와 통제를 했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 전 총리가 1970년대 공직 생활을 시작한 이후 과거 위헌·위법한 비상계엄과 내란 상황을 직접 경험했던 만큼, 비상계엄이 초래하는 국가적 혼란과 피해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재판 과정에서 “비상계엄 충격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진술을 반복하며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고도 지적했다.
이어 국민과 역사 앞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진술했음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반복한 점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50여 년간 공직자로 재직하며 국가에 헌신한 점과 내란 행위를 사전에 조직적으로 모의하거나 적극적으로 주도했다고 볼 명확한 증거는 부족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징역 15년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선고 직후 한 전 총리는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숙인 뒤 법정을 빠져나갔다.
한 전 총리 측은 취재진과 만나 사실관계와 법리 측면 모두 납득하기 어렵다며 상고를 통해 대법원에서 판단을 다시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란 특검팀은 1심 선고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하면서, 판결문 분석 이후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당시 국무총리로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막아야 할 헌법상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또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사후 선포문 작성 및 폐기에 관여한 혐의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과정에서 위증한 혐의도 함께 적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