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통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긍휼하신 것처럼”, 바로 그 사랑의 품 안에서 다시 깊이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그 고통, 그 상처, 그 아픔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통해 당신을 긍휼의 사람으로 빚어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하면 그분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뀝니다. 하나님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나와 함께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무섭고 차가운 분이 아니라 따뜻하고 자비로우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나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분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은밀한 죄악이 빛 가운데 드러나며 비로소 진정한 회개가 시작됩니다. 수치와 부끄러움이 낱낱이 다 드러납니다. 그런데 지금 드러나는 것이 최후의 심판 때에 드러나는 것보다 낫습니다. 지금 드러나서 회개할 수 있는 것이 빠른 은혜입니다.
지현호 – 긍휼마음학교
여기서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율법은 언제나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고 지시합니다. 그런데 예수는 언제나 “무엇 무엇을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주는 기능에 머물게 됩니다. 그것조차도 내용에 따라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과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들도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헐어 버린 것은 선택을 필수로 만들고, 그 안에 사람의 자유를 가두어 둔 그 장벽이었던 것입니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일들이 가끔 벌어집니다. 만일 거짓 교사들의 주장이 관철되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이 땅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과 정신은 유대인의 율법주의 안에 가두어 둘 수 없는 자유로운 정신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에 이렇게 퍼져 나간 것입니다.
홍지훈 - 루터와 함께 읽는 갈라디아서
헨리 나우웬은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책에서 나이가 들면서 신자 상호 간에 더 깊이 깨닫게 되는 진리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 줄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장 난 물건을 수리해 주는 것, 도움이 될 만한 충고를 해 주는 것, 상담자가 되어주는 것, 병자를 고쳐주는 것,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모두 훌륭하지만, 더 훌륭한 것은 자신의 삶을 나와 함께 나누려는 사람이 헨리 나우웬 자신을 가장 잘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약한 모습을 고백하는 사람이 자신을 잘 도와준다는 것일까? 자신을 믿어줘서 그의 약함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신자는 함께 성숙과 조화, 하나 된 가족 경험을 하게 된다. 영적 승리는 당연히 뒤따라오게 된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이러한 은혜가 풍성하게 자리 잡길 기대한다.
이은호 – 언브로큰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