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단지 개인적인 것을 예상하고 추측하거나 혹은 비합리적인 것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이 주는 가치를 위해 삶의 방향을 세우고 그것을 위해서 온몸과 온 마음을 맡기고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근본이 바로 그분이 바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신앙이 사람을 그가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통해서 아름답고 선하고 유익하게 만드는 조건인 것이다. 삶의 과정의 반복 안에서 신앙은 이어달리기와 같다. 계주에 참여한 모든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에 이어 달리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도 실수하면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신앙도 이어달리기의 수많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문을 배우는 과정, 예배하는 과정, 말씀 묵상하는 과정, 기도하는 과정, 전도(선교)하는 과정을 이어 달리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이수환 – 신앙의 언어들
바울이 예수님을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부른 이유도 분명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올라가셨다가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딛 2:13). 그 약속은 의인에게 영광스러운 몸의 변화불, 악인에게는 공의의 심판을 예고하죠. 따라서 우리 삶의 최종 목적지는 이 확실한 소망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점을 바울은 강조합니다. 또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과 예수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한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이사야 환상 중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했던 것(사 6:8), 베드로가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즉시 그물을 버리고 따랐던 것처럼(막 4:19-20), 우리 역시 부르심 앞에서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셈입니다.
양디모데 – 디모데가 디모게에게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회복시키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그가 선 곳이 “거룩한 땅”이라는 말씀은 그에게 대단히 충격적인 도전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그곳을 거룩한 곳이라고 여겨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거룩한 곳이 아니라 오히려 실패의 장소요 좌절의 장소였다. 쓸쓸히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던 곳일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의 관점을 바꿔 놓으셨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권능의 하나님이시다. 한번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뜻을 두셨다. 우리는 환경의 주인공이다. 내가 속한 환경은 나를 통하여 변화될 수밖에 없다.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그 환경을 바꾸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것이 기독교적 소명 의식이다.
라영환 – 다시 시작할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