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법과 가이사의 법(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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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헌제(한국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마 7:5)

서헌제 박사(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하루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모세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는 것이 옳은지를 물었다(레 20:10). 겉으로는 예수님의 의견을 구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한 함정이었다(요 8:6). 곤경에 빠뜨리려는 이들의 의도를 아신 예수님은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양심의 가책을 받아 손에 들었던 돌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다(요 8:9). 이 장면은 성경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 중 하나로 꼽힌다.

요즘 정권이 바뀌고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한창이다. 공수(攻守)만 바뀌었을 뿐 청문회의 방식은 전과 다르지 않다. 그동안 청렴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인물들이 어떻게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는지 폭로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국민이 허탈함을 느낀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중 다수가 바로 이전 정권 청문회에서 후보자들에게 거칠게 돌을 던졌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 허위와 가식을 보며 절로 “폭싹 속았수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 당시 사람들조차 오늘날의 정치인들보다 더 양심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자의 자질, 도덕성, 정책 역량을 국민 앞에 검증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할 경우, 본래 목적은 퇴색하고 무분별한 폭로전과 정치적 공격으로 얼룩지기 십상이다. 결국 후보자는 법정에서 명예훼손 여부를 다투는 또 다른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청문회다. 가족의 입시 비리, 사모펀드 투자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는 대규모 검찰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졌다. 일부 언론 보도는 법원에서 허위로 판단되어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이 결정되었으며, 조 전 장관 측의 명예훼손 고소 사건 중 일부는 무죄 판결이 나기도 했다.

법원은 이 과정에서 발언의 공익성, 허위 여부, 그리고 당시 진실이라 믿을 만한 정황이 있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공공의 이익에 해당하며,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도 진실성과 공익성이 인정된다면 명예훼손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즉, 단순한 비판이나 의혹 제기는 처벌 대상이 아니며,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명백한 허위 사실’이어야 하고 ‘공익 목적’이 결여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판례가 무차별 폭로를 정당화하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반드시 사실에 기반해야 하며, 사생활 침해나 인격 모독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 ‘검증’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을 ‘사법 피의자’로 전락시키는 관행은 청문회의 근본 취지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정치 불신과 사회적 분열을 더욱 심화시킨다.

인사청문회가 다시금 국민 신뢰를 받는 제도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치적 목적의 폭로가 아닌,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검증 문화가 필요하다. 언론과 정치권 모두 ‘사실’과 ‘추정’의 경계를 엄격히 구분하는 책임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공직은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자리이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한 검증 과정 또한 정의롭고 정당해야 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과 양심을 쉽게 바꾸는 정치인일지라도,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먼저 제거한 후에야 남의 눈 속의 티를 논할 자격이 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늘의 청문회 장면 속에서 깊이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다시 공수가 바뀔 날이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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