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신다는 것은 마치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우리를 돌봐 주시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항상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건 아니에요. 가끔은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무서운 길을 지나가야 할 때도 있어요. 그리고 아프거나 슬플 때도 있어요. 이럴 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찾아오셔서 안아 주시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주실 거예요.
우리가 무서운 꿈을 꾸거나, 친구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돌봐 주시고, 다시 기쁘게 만들어 주실 거예요. 우리의 잔이 비어가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다시 가득 채워 주실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있어도 “여호와는 나의 목사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할 수 잇는 거에요.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지켜 주시니까요.
이진희 – 우리의 좋은 목자
한때 루터는 갈등 증후군을 겪는 꽤 위태로운 청년이었던 듯하다. 루터는 영적 해법을 찾아냈는데, 때마침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서 치료 역량을 지닌 윗사람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었다. 루터의 해법은 서구 기독교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정치적·정신적 공백을 어느 정도 메웠다. 이런 우연한 상황은 만일 매우 특수한 개인적 재능 발휘와 맞물리면 역사적인 ‘위대함’을 만들어낸다. 청년 루터의 동시대인 중 세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루터는 20대 초반이나 중반 어느 날 에르푸르트 수도원 성가대석에서 갑자기 귀신 들린 사람처럼 날뛰며 헛소리를 하다가 바닥에 고꾸라져 “Ich bin’s nit! Ich bin’s nit!(그건 내가 아니야!)” 아니면 “Non sum! Non sum!(나는 아니야!)”이라고 황소처럼 울부짖었다. … ‘말 못 하게 하는 귀신이 들린 사람을 그리스도가 치유하시다’가 낭독될 때였다.
에렉 에릭슨 – 청년 루터
전라도에서 선교 활동을 한 후 은퇴한 선교사 제위가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주 블랙 마운틴에 조성된 선교사 은퇴촌에 생존해 계실 동안, 그분들이 필자를 불러서 ‘우리의 이야기를 남겨 달라’는 유지를 남겼다. 그로부터 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미국에서 시간 날 때마다 조용히 미 남장로교 호남 선교와 전라도 교회사를 연구해 오면서 그분들이 왜 그런 유지를 남겼는지 폐부 깊숙이 느끼고 있는 중이다. 특히 전라남북도에서 기독교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관 건립 등 중요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학문적으로 자문을 주면서 그분들의 유지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전라남북도 교회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밤을 지새우며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왔다.
최은수 – 목포 기독교 근대 역사관의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