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선교지 매월 지원하는 ‘땅끝12’ 사역 진행
“일상에서 선교 실천하는 ‘생활밀착형 선교’ 확산하길”

“‘받기만 하지 말고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필통사역을 하면서 한국의 청소년들에게도, 시리아 난민 아이들에게도, 필리핀과 태국 등 다른 제3세계 국가 아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이야기하는 말이에요. 너희들도 주는 사람이 되라고요. 복음이 그런 것이잖아요.”

필통미니스트리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촌에서 난민들과 함께한 김필통 선교사. 김 선교사는 레바논, 터키,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촌을 방문해 필통을 전달하고 문화공연 사역을 했다. ©필통미니스트리

필통미니스트리 대표 김필통(김정환) 선교사를 지난달 26일 서울 합정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본명보다 ‘김필통 선교사’ ‘배달부 김필통’으로 불리기 원하는 그는 2016년 11월 필통미니스트리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인도·네팔·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터키·레바논 등 중동, 에티오피아·탄자니아·케냐·남수단 등 아프리카, 도미니카 등 중앙아메리카에까지 전 세계 23개국에 6천여 개의 필통을 전달했다. 튼튼한 천필통에는 연필, 볼펜, 지우개 등을 담아 아이들이 학용품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하면서 꿈과 희망을 키워갈 수 있도록 했다.

후원자들은 천필통에 도안과 특수 물감 등을 이용하여 정성껏 그림을 그리고, 글씨와 이름을 써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필통을 선물하고 있다. 그래서 필통사역에는 단지 학용품을 담는 필통을 전달하는 의미뿐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필통’(feel通), 반드시 통하는 ‘필통’(必通)이라는 의미까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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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상징 필통(왼쪽), 다양한 언어로 사랑을 쓴 ‘사랑해’ 필통(오른쪽 위), 불가능(Impossible)을 가능(I’m possible)으로 재치 있게 표현한 필통(오른쪽 아래). 기본 필통은 국내 몽골교회 몽골인 성도들이 제작하며, 필통에는 학용품과 현지에서 구입한 간단한 간식도 함께 넣어준다. ©필통미니스트리

“처음부터 많은 필통을 보낸다는 꿈은 없었어요. 받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한 명이라도 의미 있게 보내고 받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다음세대에 선교적 꿈을 심어줄 수 있다면 더 좋고요.”

필통사역은 단순히 풍요로운 나라의 후원자가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돕는 사역이 아니라고 했다. 나이, 계층, 인종, 국적, 장애, 정치, 경제 등의 장벽을 뛰어넘어 누구든지 나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한 취지에 맞게 탈북 난민인 탈북민학교 학생들이 시리아 난민 아이들에게, 시리아 난민 아이들이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한국의 지적장애인들이 태국의 장애인들에게, 안산의 고려인 아이들이 선교지 아이들에게, 가정도우미 등으로 생계를 꾸리는 조선족들이 말레이시아 로힝야 난민 아이들에게 필통과 함께 응원하는 마음을 전달했다. 기본 천필통 제작도 몽골교회 몽골인 성도들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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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통 선교사는 “어려운 선교지를 방문하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히 큰 능력이고 축복임을 현지 크리스천들을 보고 깨닫는다”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문화사역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진행하던 ‘필통(feel通)콘서트’는 코로나 사태로 열리지 못하고 하늘길이 막혀 필통 전달도 힘들어졌지만, 대신 일상 속에서 작은 물질을 모아 어려운 선교지를 돕는 ‘땅끝12’ 사역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김필통 선교사와의 인터뷰 내용.

ㅡ찬양사역자에서 영락교회 교육목사, 지금은 필통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90년대 후반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다 문화사역단체인 낮은울타리에서 문화센터 관리 간사를 하며 문화사역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웠어요. 이후 낮은울타리를 나와 큐프레이즈, 아하밴드 등의 음악사역팀을 조직하여 채플, 수련회, 집회, 그리고 요즘은 버스킹이라고 부르는 길거리, 지하철 찬양 공연도 많이 했습니다. 한 번은 백화점 행사에서 찬양할 기회가 있었는데, 세상 가운데 찬양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일이 제게 큰 의미부여가 되었어요. 신학대학원에 진학했고 교회 전도사, 교육목사로 사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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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에 있는 남수단 난민촌의 ‘안조요’에게 필통을 전달하는 모습. 김 선교사는 “한국말로 ‘안조요’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웃음이 났지만, ‘조요’라는 뜻이 평화라는 의미이고 ‘안조요’는 평화가 없다는 의미이기에 가슴 아프게 남았다”며 “집회현장에서 전쟁 지역의 여성과 어린이의 아픔을 안조요를 통해 소개한다”고 말했다. ©필통미니스트리

ㅡ필통사역을 시작한 계기가 청소년들에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했지요.

“강원도에서 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청년들과 독서모임을 하는데 ‘요즘 청소년들은 자신의 것을 나눌 기회가 너무 없는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나눔의 기회를 만들어주자고 했는데, 자기가 사용하던 중고필통 기부 행사를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청소년들이 사용하던 필통 중 깨끗한 것을 가지고서 문화콘서트에 모여 연합집회를 했습니다. 집회 후 ‘평소 선교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는데, 필통으로 선교에 참여할 수 있어 감사했다’는 후기를 보며 제게 감동이 왔습니다. ‘아이들이 선교지에 직접 가지 못해도 선교에 참여하고, 선교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통로가 되어야겠다!’고요. 다음세대가 선교에 참여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필통사역이 시작된 것이죠. 그때가 2013년 강원도의 영락교회 교육목사로 있을 때였는데 교회 안에서 첫 필통사역을 시작했고, 이후 2016년 필통미니스트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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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 아이들이 선물 받은 필통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필통미니스트리

ㅡ지금까지 23개국에 6천여 개의 필통을 전달했습니다. 필통사역에 참여한 분들, 또 필통을 받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필통사역에는 5~6세 어린아이부터 70~80대 어르신까지 참여하고, 탈북민, 장애인, 외국인이주민들도 참여했습니다. 한 교회의 주일학교 부서가 참여하기도 하고, 오후 예배를 필통콘서트로 진행하며 전 성도의 후원을 받기도 합니다. 기업과 학원에서 단체로 신청하면 필통사역 강의, 필통 만들기, 후원의 시간을 갖습니다. 해외에서는 미국 한인교회, 일본 한인교회가 참여했고, 선교지 아이들이 필통에 그림을 그려 또 다른 선교지 아이들에게 보내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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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아이들이 선물 받은 필통을 들여다 보고 있다. ©필통미니스트리

필통이 전달되는 선교지는 직접 요청이 오거나, 추천을 받은 곳들입니다. 시리아 난민 아이들에게는 매년 1월 제가 방문해 필통을 전달하고 문화공연 사역을 하고 있어요. 지난 1월에도 시리아 난민촌을 방문하여 500개의 필통을 선물하면서 한국 성도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성탄 캐럴도 함께 불렀습니다. 동행한 태권도선교회 선교팀은 태권도 공연과 레슨, 태권도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셨습니다. 시리아 현장 사역은 매년 가을부터 성탄까지 ‘크리스마스 포 시리아’(Christmas for Syria) 집회를 통해 준비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오신 것처럼, 크리스마스 때 땅끝 난민에게 선물을 전하자는 취지로 진행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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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교사가 송도의 한 교회 청년이 시리아 난민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려 넣은 필통을 들어 보였다. ©이지희 기자

ㅡ필통사역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한 번은 송도의 한 교회 청년이 시리아 이야기를 듣고 필통에 그림을 그려 보내주었는데, 감동을 받았어요. 한 면은 슬퍼서 눈물짓고 있는 사람들을 다른 슬퍼하는 사람들이 안아주는 그림이, 다른 면은 위로와 안식을 얻은 사람이 서로 얼싸안고 행복을 맛보는 그림인데, 양해를 구하고 필통사역 강의 때마다 샘플로 가지고 다니며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팟케스트 방송을 들으신 도미니카 선교사님이 도미니카의 아이티 아이들에게 필통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연락해오셨어요. 마침 이틀 후 한 청년이 도미니카에 선교하러 들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그때 우리가 가진 필통은 6개월 전 알바니아로 보냈다가 반송되어 온 20여 개의 필통이 전부였습니다. 청년에게 급히 필통을 보내 도미니카까지 무사히 전달했지요. 여러 사람의 헌신으로 필통이 지구 반대쪽을 돌아 원래 목적지는 아니지만, 또 다른 필요한 선교지에 잘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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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선교사의 요청으로 아이티 어린이들에게 필통을 긴박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아이티 대지진으로 어려움을 겪은 많은 아이티인이 이웃 국가인 도미니카에서 일하고 있어 아이티 아이들이 도미니카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필통미니스트리

이처럼 반송 문제 때문에 필통은 주로 우편이 아닌 인편으로 전달합니다. 저는 1년에 두 차례 정도 해외를 방문하고, 나머지는 선교사님들, 여름 단기팀들을 통해 전달했습니다.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귀국하는 케냐 근로자를 통해 필통을 전달한 적도 있어요. 최근에도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 필통을 실은 컨테이너가 채워지지 않아, 1년이 지나도록 아이들에게 필통을 전달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필통이 한 아이를 찾아가는 과정이 이토록 쉽지 않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필통을 나눠줄 때는 항상 복음의 의미를 먼저 잘 전달하려고 합니다. 전투적으로 구호물자를 받아가는 것처럼 필통을 받아 간다면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아서요. ‘한국도 70년 전 전쟁으로 폐허가 됐고,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다른 나라를 섬기는 나라가 됐다. 너희도 그런 꿈을 가지고 너희 나라를 재건하고, 나눠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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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시리아 남학생들이 필통을 보고 있다(왼쪽 사진). 레바논 난민촌의 시리아 여학생들이 필통 선물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필통미니스트리

ㅡ코로나로 필통콘서트가 개최되지 않고, 선교지에 필통을 직접 전달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사역하시나요.

“지난 1월 이후 필통을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방법으로 바꾸었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전 세계 땅끝 선교지에 재정을 보내는 ‘땅끝12’ 사역을 지난 4월부터 시작했어요. 여기서 ‘12’는 일 년 ‘열두 달’ 선교지에 재정을 보내는 것뿐 아니라, ‘열두 달’을 ‘열두 제자’처럼 살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코로나로 한국도 힘들지만, 난민을 비롯하여 일자리가 없어 경제활동을 못하는 선교지 사람들은 너무나 힘든 상황입니다. 저는 이 사역이 교회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개개인이 생활 속에서 선교에 참여하는 ‘생활밀착형 선교’로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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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몇 달 전 제 생일이었는데 지인들에게 ‘차 한 잔 사준다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합쳐주면 선교지에 재정을 보낼 수 있다’며 후원을 요청했습니다. 가정예배를 드릴 때 아이들이 드리는 헌금, 생일을 맞이한 사람, 시험 성적이 잘 나온 사람 등 생활 속에서 감사한 일이 있었다면 그 마음을 작은 물질에 담아 선교지로 흘려보내자는 취지입니다.

‘땅끝12’를 통해 6월부터 미얀마 현지인에게 매달 재정을 보내고 있고, 7월에는 인도 나갈랜드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는 현지인 교회를 지원했습니다. 8월에는 감사하게도 탈북민 행사에서 탈북민 아이들에게 전달할 필통 50개를 준비 중입니다. 9월은 잠비아 지원을 계획하고 있고요. 필통무용연합팀도 무용영상을 촬영해 ‘땅끝12’ 안내 메시지를 넣어 알리고 있어요. 많은 재정이 아니더라도 꾸준하게 선교지에 재정을 보내는 운동이 더욱 확산되면 좋겠습니다.”

ㅡ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교회와 선교사,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도전과 격려의 말씀 부탁드려요.

“이번에 제 생일 때 후원을 받는데 쑥스럽고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좀 참으면 선교지에 한 명이라도 더 도움이 되니 용기를 냈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어요. 선교도 어렵고 목회도 어려울 때, 낙심하고 좌절하고 움츠러들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만 머무르지 말고 조금 용기를 내서 서로서로 독려하고 고민하여 이 상황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작은 일부터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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