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진 목사ㅣ군포제일교회
▲권태진 목사ㅣ군포제일교회

오늘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제목은 ‘지혜로운 성도의 삶’입니다. 어떤 분이 집을 하나 큼지막하게 짓다가 너무 무리해서 세상을 떠났다고 가정해봅시다. 사람들은 ‘그렇게 무리할 필요가 있었는가, 건물보다 목숨이 더 소중한데, 미련하다’고 얘길 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육신적인 일에 바쁘고, 육신의 쾌락을 좇아 살고, 건강을 유지하고자 정신없이 가다보면 육신 속에 사는 영혼을 망치게 됩니다. 그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똑같은 원리입니다. 우리가 지은 세상의 집은 여러 번 바꿀 수 있지만 우리의 육체의 집은 바꿀 수 없습니다. 육체의 집은 100년 안에 허물어지고, 우리의 영은 하나님 앞에 갑니다. 그러므로 무너질 육체에 너무 집착하면 영혼은 손해를 봅니다. 본문을 보면 사랑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고, 때로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미움과 무관심 속에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을 받으면 마음에 평안과 만족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산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도 누구의 사랑을 받느냐, 누구의 인정을 받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척 사랑하십니다. 역사의 기록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 있고 세상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권주의자, 로마 군병, 유대인, 세상 사람에게는 미움을 받았습니다. 십자가 형틀에서 자기의 몸이 창에 찔려 피와 물을 쏟는 형벌을 받을 정도로 미움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들에게 미움을 받아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생명을 유지했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로마에 가면 카타콤이 있고, 터키에 가면 신앙의 자유를 위해 바위에 굴을 파고 들어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벽화를 그린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의 사랑을 받고 살 것인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도 때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처럼 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고보 사도를 통하여 말씀하기를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 4:1) 라고 합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2-4). 이것은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시기하고 살인하지 말고, 정욕으로 쓰려고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므로 물리침의 대상이 되지 말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마귀는 물러갑니다. 죄인은 손을 깨끗이 하고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많은 죄를 지은 것과 잘못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서 애통하고 슬퍼하며 울고, 근심하면서 구원에 이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암탉이 병아리를 모으는 것처럼 우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시골에 살 때, 공중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맴돌면 암탉이 ‘꼭 꼭 꼭 꼭’ 소리를 내었고 병아리들이 달려와서 암탉 품 안, 그 날개 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암탉의 품은 안전합니다. 독수리가 내려와도 새끼를 안고 있는 암탉은 지는 법이 없습니다. 새끼가 없는 닭은 조그만 강아지에게도 쫓겨 다니지만 새끼를 품은 닭은 개가 온다 할지라도 눈을 찍어 버릴 정도로 용감해집니다. 하나님은 그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고 지키십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합니다. 가정에서 어린이들은 매우 귀합니다. 어린이는 나라와 가정의 장래를 좌우하는 사람이요, 교회의 기둥이요, 교회의 능력입니다. 어린이들을 대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작은 육체 안에 영혼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속에 영혼이 있는 것을 모르고 육체만을 생각하고 육체만 키우려 하다 보면 나중에 불신자를 만들고 세속에 깊이 빠뜨려서 폐인을 만들기 쉽습니다. 드럼통을 굴릴 때라도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그 통을 잘 보호할 수 있습니다. 저 육체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린이 속에 영혼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뱃속에서만 나온 줄 알지만 성경은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시 127:3~5)고 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주신 기업이요, 하나님이 주신 상급입니다. 어린이는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다고 했습니다. 시편 128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 128:1~3).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때에 가정이 행복합니다.

온 가족이 잘 되기를 원하시면 여호와를 경외하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을 가리켜서 좋은 가정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세속적으로 많은 부와 지식과 권세가 좋은 가정의 기준은 아닙니다. 넓은 집, 많은 지식보다 더 귀한 것은 여호와를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하나님은 지혜가 있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이 아닌 모습을 보고 닮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부모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자녀도 엇나갑니다. 부모님이 아무리 교회에 나가라고 해도 부모님이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자녀도 나중에는 안 나옵니다. 자녀를 바르게 키우려 해도 부모님이 바르게 살지 않으면 자녀들은 부모님의 삶을 따라갑니다. 오늘날 청소년 범죄를 보면서 ‘왜 아이들이 그렇게 악해졌는가?’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의 속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른은 절제할 능력이 있지만 아이들은 부모님의 속마음이 느껴지는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청소년의 문제는 바로 기성세대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다가 인간관계의 균형이 깨질 때가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 십계명에도 1~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5~10계명은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인간관계의 첫 단추는 부모님과의 관계입니다. 부모와의 관계가 올바를 때 인간관계도 올바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약 4:11上)고 했습니다.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서로 비방하지 맙시다. 말이 많은 교회는 서로 자꾸 비방합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목사가 장로를 비방하고 장로는 목사를 비방하고, 성도는 지도자를 비방하고 지도자는 성도들을 비방합니다. 가정에서 남편을 비방하고 아내를 비방하고 형제들까지 비방합니다.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약 4:11下) 인간은 피조물이고 율법을 준행할 뿐 재판자의 권한은 하나님이 주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죄인은 죄에 덮여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도 잘 모릅니다. 아내나 남편이, 목회자, 그들 모두는 진정한 의지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이고, 이해와 용서의 대상일 뿐입니다.

절대 사람을 보고 실망하지 맙시다. 하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여러분! 사람을 안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저 또한 사람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종으로 세웠으니 성도들이 저를 보고 실망하지 않게 해 주세요. 서로서로 바른 삶을 살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합니다.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6~18)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공산주의자들은 이상론을 펼치며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는 잘못되었다고 했는데, 지금 알거지가 되고 나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원리를 반영하는 추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 잘못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성경에 나타난 진리뿐입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으며 후손들에게 삶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달인 5월이 중요합니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불립니다. 어떤 사람은 5월을 다이아몬드와 같고 열두 달 중에 가장 빛나는 달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5월을 장미의 계절, 가장 아름다운 달이라고 합니다. 5월은 효도를 가르치고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며, 스승을 찾아뵙는 달입니다. 사랑과 감사가 가득합니다. 일 년 365일을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산다면 참된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1~4)라고 말씀합니다. 자녀를 주의 교양과 교훈으로 양육하면 늙어서도 그 말씀을 떠나지 않습니다. 자녀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속 썩일 일이 없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날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인생은 안개와 같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인생이 안개와 같다고 했습니다.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저는 가끔 어머니가 간절히 생각나는데 효도하려고 해도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효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연세 드신 분들을 보면 다 부모님이라고 생각하고 반갑게 맞이합니다.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인생은 안개입니다.

지금 권사님들도 2~30년 전에는 결혼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얼굴이 포동포동했습니다. 남자 집사님들도 청년 때는 말 뛰듯 뛰어다녔습니다. 인생은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성경은 인생을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개와 같다는 것은 인생의 무상성을 가리킵니다.

솔로몬도 말하기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했습니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낙을 누리며 잘 먹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 결국 인생은 헛것이라는 결론이 나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허무주의로 끝나지 않습니다. 안개와 같은 인생을 영원한 인생으로 바꾸려면 예수님 안에 속해서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연결시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를 향해 ‘인생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말라 버리고, 꽃도 떨어지만 마르지 않고 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영혼을 위해서 노력하고 헌신하는 아름다움이 있게 되길 바랍니다.

언젠가 오산리 기도원에서 설교를 할 때였습니다. 설교를 하기 위해 강단에서 서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신학생일 때 갔을 때는 조그마했던 나무들이 지금은 큰 나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새들이 깃들일만한 곳이고 사람들이 기대서 쉴 수 있는 곳을 제공하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과거에 기도하고 결심하기를 ‘하나님! 저에게 땅을 주시면 나무를 심고, 산을 주시면 기도원과 수련장을 짓고, 돈을 주시면 사람을 키우겠습니다’라고 입버릇처럼 자신에게 이야길 했는데, 그곳은 잘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설교를 하고 나오며 정말 열정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기도원이 필요하다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야가 가뭄이 든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구름이 떠오른 것처럼, 우리 교회의 기도원의 모형도 떠올라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기도원이 만들어지면 하루 한 번 복지관을 향해 가던 차량에 또 한 대의 차량이 더해져 기도원을 향하여 가서 군포 전체의 성도를 싣고 교회 앞에서 출발하게 될 것입니다.

‘제일교회 앞에 가면 오전 10시에 기도원으로 출발하는 차가 있다더라’ 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그곳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가정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기도의 불이 활활 타오르는 곳이 되도록 합시다. 뒷감당은 어떻게 할꼬,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뒷감당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15절에는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라고 합니다. ‘주의 뜻’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계시와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에 주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통해 이루시는 자기의 뜻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3. 선을 알았으면 온전히 행해야 합니다

17절에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라고 말합니다. 선을 아는 것은 행함의 책임도 있다는 것입니다. 선을 알게 하면서 행함의 책임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노인 문제가 10년 후에는 더 심각해집니다. 지금 기도원 옆에 큰 땅이 있다면 실버타운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노인 문제가 올 줄 알면서도 나 혼자 잘 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역 사람들이 영적으로 갈한 것을 알았으면 갈한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못 본 사람은 사람을 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본 사람은 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책임까지 우리에게 맡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행함에는 책임도 있습니다.

우리는 무상하고 허망한 세상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인생은 안개이나, 선을 알았으면 행해야 하고, 어린이들에게 본을 보이며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각오를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권태진 목사
군포제일교회 담임목사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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