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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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짐 데니슨 박사가 집필한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성경구절'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소개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두려움에 맞서 싸울 것을 요구하는 뉴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성경구절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조각한 것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레위기 26 : 1).

이 구절을 읽으면서 성령께서 묵상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이 명령은 우리 삶과 세계의 모든 차원에 적용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서 이러한 성찰이 이 칼럼을 쓰게 했다.

우상 숭배와 무관함

레위기 26장 1절은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이 바알, 아스다롯, 몰렉, 그리고 다른 우상을 숭배하는 가나안 사람들로 가득 찬 날과 분명히 관련 있었다.

이 구절이 우리와 어떻게 관련 있는가?

기독교 신학의 기초 원리 중 하나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처음 영감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과 관련성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현재 우리의 삶과 문화에 신성한 진리를 말씀하며 권위를 갖는다(히브리서 4:12).

그러나 오늘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돌을 세우는 유혹에는 거의 직면하지 않는다.

성지로의 많은 여행에서, 유대 민족들이 명백한 종교적 우상 숭배보다 세속주의와 물질주의에 의해 더 유혹을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44년 동안 설교를 해왔지만 아직 물리적인 우상에 대한 설교하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우리의 삶과 영혼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와 관련성

그러나 기독교 신학의 또 다른 기본 원칙은 성경이 계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들은 레위기 11장의 식이법을 따를 의무가 없다. (이것은 사도 행전 15장 28~29절에서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들은 원칙으로서 우리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을 돌 보시고 우리가 그분의 영광과 선을 위해 먹고 살기를 원하신다.

마찬가지로 물리적 우상에 대한 레위기의 계율은 원칙으로서 매우 관련 있다. 우리의 삶과 영혼이 주님을 신뢰하고 섬기는 것보다 더 신뢰하고 섬기는 어떠한 것이 있다면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 우상은 물리적이고 영적일 수 있다.

몇 가지 예가 분명하다. 무언가 잘못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할 때, 그 죄를 우상으로 만든다. 반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된다"(야고보서 4:17).

다른 형태의 영적 우상 숭배는 덜 분명하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 여러분을 더 기쁘게 하기 위해 이 칼럼을 쓰고 있다면 여러분을 나의 우상으로 만든 것이다.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보다 여러분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면, 내 자신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모든 사람이 '궁극적인 관심사'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이 주님이 아니라면 우리의 우상이다.

우상 숭배의 유혹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 삶과 세상의 모든 차원과 무관하다는 주장을 하는 '무신론'(atheism)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많은 신들이 존재하며, 각각의 신은 적절한 곳에서 신뢰되고 섬겨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다원주의'(pluralism)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에는 전쟁, 바다, 지혜 등의 신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주일 종교의 신과 월요일 세속주의 신처럼 훨씬 더 미묘한 방식으로 물려 받았다.

우리는 구주께서 우리를 지옥에서 구해주셨으며 그분의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다는 성경적 믿음의 유익을 알기 원한다. 그 분에게 감사의 응답으로 시간과 재정의 일정 비율을 기꺼이 드릴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제공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현대 세속주의의 이점을 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에서 일하는 한 이것은 우상적이지 않다. 그 분은 기독교인을 의사와 교사, 정치 지도자 및 학생으로 부르고 계신다. 그 분은 소금을 소금그릇에 숨겨두거나, 등불을 말 아래 두기 원하지 않으신다(마태복음 5:13~16).

그러나 우리가 세상이 요구하는 것과 주님이 요구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 레위기 26장 1절은 우리에게 시급히 관련이 된다.

다윗은 다음과 같은 선언을 자신의 약속으로 삼는 법을 배웠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편 20 : 7).

오늘 우상에게 유혹을 받고 있는지 보여달라고 주님께 기도하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병거와 말을 신뢰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만든 이를 신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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