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목회포럼 대표 이상대 목사.
미래목회포럼 대표 이상대 목사.

한민족이 일본의 부당한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제97주년 3.1절을 맞아,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소리높이 만세를 외쳤던 민초들과 시대정신에 앞장섰던 한국교회를 되돌아보자.

3·1운동이라는 역사적인 운동을 태동시키고 불을 붙이며, 확대한 주도세력이 바로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들이었다. 물론 민족대표 33인의 종교적 성향에서 보듯이 이 운동은 기독교계 이외에도 당시 천도교와 불교계 등과의 연합에 의해 추진된 초종파적인 민족연합운동에 기독교가 중심이었다. 3·1운동 당시 기독교 교세는 전인구 1,700만명중 2%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이러한 열악한 교세를 가지고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측 인사가 16인이나 참여하였다는 사실은 교회가 얼마나 신실한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품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된다.

3·1운동의 기본은 독립청원이었다. 당시 ‘동양평화’를 내세우며 한국침략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던 일제당국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논리적 반박은 분명 돋보이는 활동이었다. 자신들을 과거의 조선인이 아니고, 세계의 대세를 알고 문명의 정도를 깨달은 ‘신조선인’으로 규정하면서, “조선 독립은 민족요구의 정의인도(正義人道)이며, 필연의 공리천칙(公理天則)으로 확신한다”라고 선언하며, 당당히 옥고를 치루었다.

3·1운동으로 핍박을 받은 수원 제암리교회에서는 일본 경찰들이 주민들을 교회에 몰아넣고 문을 잠근채 사방에서 총을 쏘고 불을 질러 집단학살 하였다. 일제가 만든 통계로도 3월 1일에서 5월말까지 학살된 사람이 7979명, 부상자만 1만 5961명, 검거된 사람이 4만 6948명에 이른다.

3·1운동은 당시 서구 열강의 식민지 내지 반식민지하에서 신음하고 있던 여러 약소민족에게 독립정신과 독립운동의 불길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어주었다.

3·1운동으로 인하여 그 해 4월에 한민족의 독립정신을 세계에 천명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가져오게 되었다.

3·1운동은 개항이후 이 나라의 새로운 지도 이념과 시대정신으로서의 그 위상을 지켜오며 축척해온 자주독립의식을 분출하므로 교회는 많은 피해와 상처를 입었으나, 이 운동을 통해 교회는 민족의 수난과 호흡을 함께한 민족종교로서의 위상을 정립했다. 3·1운동의 초기단계에서부터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이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므로 3·1운동을 점화하고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통해 근대사의 흐름을 이끄는 정신적인 지주로서 역할과 자리매김을 가져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보물 같은 전 민족의 재산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3·1운동정신이다. 3·1운동 정신은 빈부의 차이, 남녀의 차이, 양반과 상인의 차이, 지역과 종교의 차이 등 그 시대의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벽을 뛰어넘어 온 겨레가 한 마음이 되었던 민족통합정신이다. 지금처럼 국론 통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시대에 3·1운동정신은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2019년이면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근대사에 끼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역할과 공헌을 재평가하는 작업과 더불어 3·1운동을 전민족적인 평화통일운동으로 재점화하고 확산시키므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여는데 기여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제2의 3·1운동을 재현해야 한다. 탑골공원을 뒤덮으며 독립의지를 불태우던 함성소리가 다시 일어나야 한다. 3·1정신을 계승하는 제2의 주기철, 신석구, 유관순, 김마리아 같은 인물들이 나와야 한국교회는 미래가 있다.

제97주년 3·1절을 맞아 교회는 다시 3·1정신을 계승하고 기독교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97주년 3·1절을 맞으며

미래목회포럼

대표 이상대 목사
이사장 오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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