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석
▲이만석 선교사ㅣ한국이란인교회·4HIM 대표

2015년에 대한민국에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사회의 이슈가 되었었다. 교과서는 장차 우리의 조국을 이끌어 갈 학생들의 뇌리에 기초지식을 주입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가장 예민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이슬람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첨단과학을 발달시켜 인류 문명을 이끌어 가던 유럽인들이 이슬람의 테러 때문에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는 이슬람의 정체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이슬람학자들의 미화된 거짓정보만 배운 덕분에 분별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대한민국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천편일률적으로 이슬람이 미화되어 홍보되고 있었으며 이를 바로잡는 것은 장차 국가 안보와 후손들의 행복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국정교과서에 반영해 줄 것을 기대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지적하고자 한다.

◆ 이슬람이 평등교리를 주장함?

교과서에는 “이슬람교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교리를 내세웠으며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사람에게는 세금을 줄여 주었다. 카스트제의 차별에 시달리는 인도인 중에서는 점차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갔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천재262쪽, 천재267쪽, 천재282쪽, 금성281쪽, 금성285쪽, 금성286쪽, 금성362쪽 등)

대한민국의 중학교 교과서에는 ‘이슬람교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필요 이상으로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이슬람에 평등사상이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임에도 순진한 학생들을 속이기 위해서 미화시켜 놓았다. 그런데 교과서 내용을 통해서도 이슬람에 평등사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교과서 내용 중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사람에게는 세금을 줄여 주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것이 의도적으로 미화되었다는 분명한 증거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 보면 지즈야(Jizya)라는 특별한 세금이 있다.(꾸란9:29) 이는 비무슬림들에게만 부과하는 세금이다. 그러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무슬림이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이는 무슬림과 비무슬림 사이에는 평등이 없었다는 증거다. 이것을 개종만하면 세금을 줄여주었다고 미화시켜 놓았다. 문장만 보면 개종자들에게 특혜를 주었다는 인상을 주지만 사실은 특혜가 아니라 비무슬림들에게만 부과했던 지즈야(인두세) 납부 의무가 사라졌기 때문에 드러나는 현상일 뿐이다.

이슬람에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도 평등이 없다. 상속도 여성은 남성의 1/2만 받아야 하고(꾸란4:11) 법정에서도 여성의 증언은 남성의 증언의 1/2의 효력을 갖는다.(꾸란2:282) 이것은 옛날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슬람권에서는 실제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 의해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이슬람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치면 이슬람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심지어 금성교과서 287쪽에는 ‘이슬람에서 인종적, 문화적, 정치적 장벽을 허무는데 도움이 된 것을 찾아보자’고 질문함으로 학생들의 머리 속에 이슬람은 평화와 관용의 종교라고 각인시켜 놓고 학생들이 스스로 그 증거들을 찾아 제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대한민국의 선생님들과 교육제도를 통해서 이슬람 포교를 돕는 것이 된다.

◆ 긍정에 부정으로 '물타기'

교과서 내용 중 “이슬람교도가 늘어나면서 힌두교도들과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산스크리트 어로 된 인도의 문학작품이 아랍어로 번역되기도 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천재262쪽)

이슬람교도가 늘어나면 타종교인들을 멸시하고 친구로 삼지 말라는 꾸란의 가르침(꾸란4:144, 꾸란3:28, 꾸란5:51) 때문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였으나 인도의 문학작품이 아랍어로 번역되기도 하였다는 말로 부정적인 면도 있으나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식으로 희석시키고 있다.) 무슬림들과 타종교인들과의 갈등은 목숨이 달린 잔인한 핍박이며(꾸란9:123, 꾸란8:39, 꾸란9:5) 문학작품 번역 정도의 업적(?)으로 희석시킬만한 것이 아니다.)

◆ 이슬람의 '관용정책'(?)

교과서 내용 중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하여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았다.영토가 빠르게 확장될 수 있었던 데에는 종교적 관용 정책과 우수한 문화와 함께 이슬람교를 믿으면 세금을 줄여 주는 정책이 큰 역할을 하였다”는 내용이 여러 차례 등재되었다.(천재267쪽, 금성281,금성285, 금성286,금성362등, 금성326쪽, 천재303쪽 등)

이슬람에서 종교적 관용정책이란 꾸란에 의하면 존재할 수가 없다.(꾸란3:118-119, 꾸란8:55) 이슬람을 믿으면 세금을 줄여주는 정책이란 이미 위에서 설명한 대로, 비무슬림들에게만 지즈야(Jizya)라는 세금을 부과시켰다는 말이다. 이것은 비무슬림들의 목을 자르지 않는 대가로 세금을 내면 무슬림보다 열등하여 모든 면에서 차별을 받는 2등 시민(Dhimmi)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이슬람의 율법에 의하면 죽은 자에 대한 보상도 다음과 같이 그 죽은 피해자의 종교 또는 성별에 따라 분배된다. 미국의 인권감시단의 종교자유에 대한 보고서의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고로 사망이나 부상을 당했을 경우 배상금이 차등 적용된다고 한다. 피해자가 유대인이나 기독교인 남성이면 배상금은 무슬림 남성의 절반이 된다. 기타 종교인(불교, 힌두교, 시크교, 정령숭배자, 무신론 등)인 경우는 배상금은 무슬림 남성의 16분의 1이 지불된다. 여성은 남성의 절반이다.(꾸란4:11) 미국 내무부에서 2006년도에 조사한 국제종교자유 보고서에 의하면 이란에서는 바하이교를 믿는 사람들을 살해한 경우,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인권문제에 예민한 21세기에도 실제로 이런 불평등한 법들이 이슬람권에서 집행되고 있는데 이슬람에 평등이 있다는 거짓 내용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은 당장 수정하여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 초승달이 이슬람의 상징이 된 이유

교과서 내용 중 “초승달이 이슬람의 상징이 된 것은 무함마드가 처음 계시 받은 밤 샛별과 함께 초승달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는 내용이 보인다.(천재268쪽)

(이슬람에서 초승달을 상징으로 한 것은 원래 꾸라이시 족의 신 알라가 달신(Moon god)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로버트 머레이 박사) 그런데 교과서의 내용은 알라가 달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숨기려고 만들어낸 거짓말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무함마드가 처음 꾸란을 계시 받았다는 밤은 ‘권능의 밤’이라고 하는데 이는 꾸란97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밤은 천사 가브리엘이 계시를 가지고 내려온 날이며 일천 개월보다 더 훌륭한 밤이라고 한다.(꾸란97:3) 이슬람 학자들은 이 권능의 밤(라일라툴 까드르)은 라마단 달(이슬람력 9월) 27일 경이라고 보편적으로 인정한다. 원래는 라마단 달 마지막 10일 중 홀수인 날 중 어느 날이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27일 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슬람력은 음력(Lunar calendar)으로서 달(moon)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만일 무함마드가 진짜 권능의 밤(음력 27일)에 처음 계시를 받고 나서 하늘의 달을 봤다면 초승달이 아니라 그믐달을 봤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과서의 내용은 잘못되었다. 대한민국의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지역에 살던 꾸라이시 족의 신 알라가 달신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거짓을 교과서에 등재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 세계 최고 수준의 이슬람 문명(?)

교과서 내용 중 “당시 세계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이슬람의 학문은 유럽으로 전해져 근대 과학과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였다”는 내용이 여러 차례 기록되었다.(천재269쪽, 금성288쪽, 금성289쪽)‘신의 용광로’(저자:데이빋 리버링 루이스 저, 이종인 역)라는 책은 이슬람 문명을 찬란한 최고의 문명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책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의 찬란한 문명이라는 것이 과연 있었는가하는 것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주후 570년에 태어난 무함마드라는 사람이 주후 610년 자신의 종족신 알라(Allah)를 유일신이라고 주장하다가 우상숭배자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주후622년 메디나(Medina)로 이주하면서 창설한 종교다. 그는 메디나에 온지 채 2년이 안 되어서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 등극하였다. 그가 아라비아 제 2도시 메디나의 통치권을 쥐고 처음 맞는 해인 주후 624년부터 군사력과 정치적 힘이 생기자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Nadir족, Quraiza족 ,Khaibar족)을 살육하고 유목민들을 학살하고 군사력을 키워 630년 메카의 항복을 받아내어 아라비아 반도를 점령했다. 그리고 주후 632년 무함마드 사후에도 칼리프들을 통해서 칼의 정복 역사는 계속되었다. 이들은 어떤 문화를 소중히 여기거나 문명의 유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고 파괴와 살육의 정복 행진이었다는 것은 초기 이슬람의 역사를 양심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며 이슬람 군대가 이란이나 이집트를 정복할 때의 피로 점철된 역사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무함마드가 죽고 아부바크르가 첫 번째 칼리프로 선출되자 여러 종족들이 그를 따르기를 거부했을 때 그는 많은 배교자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아부바크르가 진두지휘하는 이슬람을 따르게 되었다. 심지어는 무함마드의 후계자들인 정통칼리프 4명 중 병들어 죽은 사람은 아부 바크르 한 사람 뿐이었고 나머지 3명(우마르, 우트만, 알리)은 모두 살해되었다. 이슬람의 역사에는 항상 피가 흘렀으며 어떤 점령지역에서도 그 지역의 문화나 문명을 소중히 여기는 전통을 보인 일이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라고 하는 IS가 이라크 점령지에서 인류문화재들을 파괴하는 것을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책에서 주장하는 이슬람의 찬란한 문명이란 천문학, 삼각법, 아라비아 숫자, 그리스 철학 등을 꼽았다.

그런데 천문학은 아라비아가 아니라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혹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생하여 발전한 것이고 이슬람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슬람이 천문학의 원조라면 정확한 태양력을 놔두고 왜 부정확한 월력(음력)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을까?

또한 삼각법은 두산 백과사전에 보면 기원전 6세기경에 그리스의 탈레스가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데 주후 7세기에 무함마드가 만든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인가?

또한 아라비아 숫자가 이슬람의 산물이라니 황당할 뿐이다. 아라비아 숫자의 십진법이나 영(Zero)의 개념 등은 인도에서 만들어 유럽으로 건너간 것이다. 그것이 아라비아를 거쳐 갔다고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지금도 아라비아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1, 2, 3, 4 등의 숫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역사적으로 한 번도 공용 숫자로 사용한 일이 없다.

그리고 그리스의 철학이 왜 이슬람의 산물인가? 그리스의 철학과 문학은 다신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슬람은 유일신 철학을 기본으로 한다. 이것을 마치 이슬람이 만들어 낸 문명처럼 홍보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이슬람은 미술을 금기시 한다.(그림을 그린 자와 그림을 소유한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며 천사는 그림이 있는 집에는 들어가지 않는다.(Sahih Bukhari vol 3. book. 34, no. 318)

이슬람은 음악을 금기시 한다.(간음과 음악과 음주와 남자가 실크(비단)옷을 입는 것을 허용하는 자들은 산이 무너져 죽을 것이며 거기서 살아남은 자들은 심판의 날까지 돼지와 원숭이가 될 것이라”(Sahih al Bukhari Hadith No. 5990)

이슬람은 이교도들의 시와 문학을 금기시 한다.(꾸란26:224)

이슬람은 조각을 금기시 한다.(꾸란5:90)

미술과 음악과 시와 문학과 조각 등을 제외하고 무슨 찬란한 문명을 말한다는 것인가?

이슬람의 역사에 보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관한 기사가 있다. 2대 칼리프인 우마르가 이슬람 세계를 통치하던 때 아므르 알 아아스(Amr al-Aas) 장군을 보내 이집트를 점령했다. 당시 이집트 수도였던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그는 세계 최대의 도서관을 발견했다. 역사에 의하면 거기에는 수십만권의 책과 두루마리들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도서관의 책들을 어떻게 할까를 물었더니 우마르는 “그것이 꾸란과 조화를 이루는 내용이라면 더 이상 필요치 않으며 꾸란과 다른 내용이라면 이단 문서이므로 파괴해야 한다.” 이 명령을 받은 아아스 장군은 그 책과 두루마리들을 도시의 목욕탕에 땔감으로 주어 6개월간 모두 태워 없앴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천주교의 교황 베네딕트16세는 이 역사를 2006년 1월18일 그의 연설문에 인용했다. 물론 이 이야기의 진위의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미술, 음악, 조각, 시, 문학 등을 대하는 이슬람의 태도를 볼 때 그랬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현재의 IS의 세계적인 고대 문화재 파괴행위를 보면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그들은 경전대로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에 기록된 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미화된 홍보자료를 생각 없이 교과서에 옮겨서 차세대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부터라도 학생들에게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바른 시각으로 보는 지혜와 분별력을 가질 수가 있다.)

◆ 바드르 전투 미화

교과서 내용 중 바드르 전투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바드르 전투: 메카세력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메디나에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금성285쪽) (바드르 전투는 이슬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주후622년 난민으로 메디나에 들어온 무함마드는 2년이 채 못 되어 메디나의 총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통치자로서 믿고 따를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메디나 주민들의 경제를 살려야 했다. 이를 위해서 세금을 더 거둘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농사나 수공업을 장려할 형편도 못 되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군사들을 동원해서 주변의 부자들을 공격하여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선택한 공격 목표는 자신을 추방시킨 꾸라이시 족의 대상무역 상단이었다. 무함마드는 바드르(Badr)계곡에 이슬람 군사들을 매복시켜 놓고 기다리다가 메카의 가장 큰 무역 상단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여 많은 전리품을 얻었던 전쟁이었다. 그 전쟁에서 무슬림들은 14명 죽었으나 메카 군인들은 70명이 죽고 패퇴하였다. 이 전쟁의 승리로 무함마드의 위상이 메디나 주민들에게 높아지게 되고 무슬림들은 그의 명령을 철저히 복종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무슬림들의 경제문제는 대상무역 상단을 공격하는 일과 주변의 군소 부족들을 공격하여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여 전리품을 나눠 주는 것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무함마드 생전에624년부터 630년까지 6년 동안 27차례나 직접 칼을 들고 전쟁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래서 메디나 주변에 평화롭게 살던 유목민들과 군소종족들은 무함마드의 군대가 오면 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쪽을 택했다. 꾸란 8장은 ‘전리품의 장’으로 불리며 전리품들을 어떻게 분배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다. 이것이 폭력적 이슬람의 시작이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 지하드의 의미

교과서 내용 중 “지하드는 위협을 받을 때 최후의 선택이다”는 내용이 등재되었다.(금성286)

(지하드는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지하드가 없었다면 이슬람은 이 시대까지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상징에 보면 전쟁용 긴 칼이 많이 등장한다. 이슬람의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도 “이슬람의 신앙고백과 전쟁용 칼”이 그려져 있다. 지하드가 이교도들을 죽이는 전쟁이라는 것은 꾸란의 일관된 개념이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즉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의 이스라엘의 베긴 수상과 양국간 평화조약을 맺었을 때, 온 세계는 이제 곧 이슬람과 기독교의 화해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며 기뻐했다. 그러나 사다트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는 이유로 암살당했다. 체포된 암살범은 이슬람권의 영웅이 되었고 이란에는 그의 이름으로 명명된 ‘칼레드 이슬람볼리(Khaled Islamboli)’라는 거리가 생겼고 그의 얼굴이 실린 우표까지 발행되었다. 그에게 암살을 사주한 알-아즈하르 대학의 ‘쉐이크 우마르 압둘 라흐만’ 교수는 법정에서 그를 죽이는 것은 꾸란의 지하드 명령을 실천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법관이 지하드는 영적이고 내면적 죄악과의 투쟁을 말하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고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나는 세계 최고의 이슬람 신학교인 알-아즈하르 대학에서 평생 꾸란과 이슬람 율법을 가르쳐왔는데 당신은 내가 모르는 새로운 꾸란 구절을 계시 받은 것이냐고 되물으면서 꾸란 구절들을 외우자 법관은 그를 처벌하지 못하고 ‘증거불충분’혐의로 석방하고 말았다. 지하드는 알라를 위해 싸우는 전쟁으로 무슬림들이 싫어해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꾸란2:216)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물론 한글 꾸란에는 성전이 허락되었다고 번역해 놓았지만 이것은 의도적으로 미화된 오역이며 사실은 지하드의 의무가 너희에게 부과되었노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직한 번역이다. 알라를 위해서 생명과 재산을 바쳐 싸우는 지하드에 참여하지 않으면 진정한 무슬림이 아니라고 꾸란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꾸란49:15)

이 외에도 십자군 전쟁의 원인을 교황의 주도권 욕심 때문이라고 왜곡 시켜 놓았다든지 이슬람 부분을 기독교에 비하여 의도적으로 지면을 많이 할애하는 등 지적할 것이 많지만 결론적으로 이슬람을 미화시키는 ‘평등의 종교’니 ‘관용의 종교’니 ‘최고의 이슬람 문명’ ‘지하드의 개념’ 등의 문구는 사실을 엄격하게 조사해서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 후손들이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유럽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문명을 발전시켜 놓았지만 이슬람에 대한 바른 분별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매일 테러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절대로 그런 실수를 답습하지 말고 우리 후손들에게 이슬람에 대한 바른 교육을 시켜서 그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미래를 물려 줄 수 있어야 하겠다.

* 위 글은 한국이란인교회(4him.or.kr)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임을 밝힙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만석 #이슬람 #무슬림 #이슬람전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