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3일 유엔 총회 연설 도중에 북한군 포로 2명을 한국으로 보낸 사실을 공개했다. 뜻밖의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두 북한 청년이 무사히 한국 땅에 들어왔다는 데 안도하면서도 이처럼 반가운 소식을 우리 정부가 아닌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북한군 포로 두 명의 한국 송환 사실을 밝힌 건 러시아와의 전쟁 중인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목적이 있어 보인다. 그 와중에 포로로 억류했던 북한군 병사들의 자발적인 한국행 의사를 존중해 인도적 차원에서 한국으로 송환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송환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의 협력 등 별다른 설명 없이 단독으로 공개하는 바람에 북한군 병사 송환에 함구해 온 정부의 입장만 난처하게 됐다.
러-우 전쟁에 강제 동원되었다가 지난 2025년 1월 생포돼 우크라이나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었던 북한 청년 2명이 무려 1년 8개월 만에 대한민국 품에 안기게 된 건 경위야 어찌 됐든 다행스러운 일이다. 온 국민과 국제사회가 바라던 일이 성사되기까지 한국 정부와 우크라이나 간의 긴밀한 외교적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또한 ‘우크라이나북한군포로구출국민운동’ 등 민간 차원에서 기울인 성과이기에 찬사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이뤄낸 성과를 온 국민이 정부가 아닌 다른 나라 대통령의 입을 통해 들어야 하나 하는 아쉬움과 함께 왜 정부가 사실을 여태껏 함구해 왔는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정부가 북한군 포로 송환 문제에 북한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국내 송환이 완료된 이후까지 공개하지 못할 사정이 도대체 뭐냐는 거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 연설 도중에 이 사실을 공개한 것에 대해 정부와 청와대는 불변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측과 물밑 협상을 거치는 과정에서 두 포로의 한국 송환 사실을 함구하기로 하고 나서 일방적으로 어겼다는 건데 우크라이나 측은 반대로 비밀 유지를 합의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 당국과 이 문제를 비밀리에 진행한 걸 뭐라 할 순 없다. 남북 및 한러 관계 등에 미칠 파장과 북한군 포로의 신변 안전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충분히 납득이 된다. 송환 사실이 사전에 외부로 알려질 경우 북한과 러시아의 방해 공작으로 모든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포로 송환이 완료되기 전까지의 일이다. 만에 하나 벌어질 위기 상황을 피하려고 철저히 비밀 작전을 펼쳤더라도 안전한 송환이 끝난 마당에 사실을 함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논란이 정치권으로 확산하자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글을 올렸는데 이 글 내용이 논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 대통령은 북한 포로 국내 송환 문제에 대해 “공개로 생길 여러 문제를 생각할 때 비공개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타당했고 그렇게 합의했다”고 밝히면서 우크라이나 측을 향해 비공개 합의를 어겨 “많이 아쉽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불편한 속내를 비치는 수준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부가 포로 송환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은 야권을 향해 “소소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과 국익, 안보를 해치는 사람을 살인자나 매국노라 부른다”는 거친 표현을 쏟아낸 게 문제다.
이 대통령의 SNS는 결국 두 가지 문제를 유발했다. 하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소식통이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을 비밀로 유지하기로 한국 측과 약속한 적이 없다고 반박함으로써 양국 간의 외교 분쟁으로 비화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대통령의 거친 표현에 대해 “김정은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그렇게도 두려웠나” “2명의 포로를 북한에 송환하려는 것 아니냐”고 맞받아친 야권과의 갈등 증폭이다.
북한군 포로를 국내로 송환하는 문제를 놓고 정부가 얼마나 고심했을지는 예상이 된다. 북한과 러시아를 자극하는 예민한 사안이기에 비공개가 유지되기를 바랐을 거고, 우크라이나 측이 느닷없이 공개하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측이 끝까지 함구했으면 정부가 언제까지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비밀에 부치려 했는지가 궁금하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이 사안이 외교, 안보, 한반도 정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예민한 의제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비밀리에 추진했던 거고 곧 직접 발표하려고 했는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먼저 발표하게 돼 유감이라고 했으면 국민이 정황을 받아들이기 훨씬 수월했을 거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그런 정도를 버리고 밖으론 외교 갈등을, 안으론 야권을 싸잡아 비난하는 정쟁의 수단을 선택했다.
북한군 포로 송환을 위해 정부가 오랫동안 기울여온 노력이 폄하돼선 안 될 것이다. 동시에 북한 청년이 안전하게 국내로 송환된 뒤에도 정부가 이 문제를 쉬쉬할 이유가 무엇인지 국민 앞에 명쾌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이재명 정부가 국민보다 북한을 더 무서워한다는 일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크라이나북한군포로구출국민운동’은 북한 청년 두 명이 자신이 원한 대한민국에 무사히 귀환한 것에 ‘인간 생명과 자유의 위대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정부가 이 문제를 미적거리는 동안 민간 차원에서 펼친 각고의 노력과 수고가 함축된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이 사실을 공개한 우크라이나와 야당의 공세에 불만을 표출하기 전에 헌법상 명백한 대한민국 국민이 무려 1년 8개월 만에 국내로 송환되기까지 무얼 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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