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열 목사
인천 송월교회 담임 박삼열 목사. ©최승연 기자

박삼열 목사는 인천 송월교회 3대 담임으로서 30년 이상 목회를 하고 있다. 박 목사는 목회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로마서 5장 말씀을 읽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됐다. 로마서 5장을 읽으면서 당시 선교단체 훈련을 이끌고 있던 이태웅 목사를 만나 성경 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목회의 꿈을 가지게 됐다.

박 목사는 성경을 읽으면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잘 설명해서 전하고자 하는 삶을 살고자 목회자의 길을 택했다. 박 목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1953년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모여 시작된 교회

송월교회는 1953년 4월 12일 한국전쟁 끝자락 시절 이북에서 남쪽으로 피난을 왔던 사람들이 모여 시작됐다. 이에 대해 박 목사는 “우리 교회는 피난민들이 모여서 시작된 교회다. 당시 4월 12일은 둘째 주일이었으며 피난민 중 한 명이 ‘주일인데 예배를 드립시다’고 해서 시작된 게 오늘의 송월교회다. 따라서 이 교회는 어떤 목사님이 개척한 것이 아니라 피난가던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함에 따라 개척된 교회”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송월교회의 시작이 좀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세월이 지난 지금 피난민들이 모였던 당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역사하셔서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개척 7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송월교회

박 목사는 “70년을 돌아보면 ‘우리 교회는 정말 감사한 교회’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건 목회자로서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피난민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을 때 당시 목사님이 이국에서 피난을 나오셨으며 그분은 피난민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었다. 그 목사님은 새벽 기도를 마치고 피난민들을 만나러 집마다 찾아가셨고 그들에게 기도해주셨다”고 했다.

이어 “당시 교회와 예배당의 모습은 초라했다. 초라하게 시작했지만, 당시 목사님께서 ‘눈물로 씨를 뿌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거두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피난민들에게 있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말씀이 되었다. 우리 교회의 70년 역사를 절반으로 나눈다면 그 목사님과 함께한 성도들의 시대였으며 저는 1992년에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지금까지 성도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세분된 제자훈련 시스템 및 크리스천을 위한 인문학 교실

송월교회는 새 신자부터 청년까지 세분된 제자훈련 및 크리스천을 위한 인문학 교실을 갖추고 있다. 이 중 S1~S4 과정이 있는데 이에 대해 박삼열 목사는 “우리 교회의 제자훈련과 주일학교는 송월교회의 선배 담임 목사님께서 세우셨다. 요즘에는 교회마다 제자훈련 시스템, 주일학교가 잘 갖춰진 곳이 많지만 그런 것이 없었던 시절 선배 목사님은 인천고등선교학교를 세우시고 선교 공부 운동을 인천에서 펼치셨다. 그 학교를 통해 약 500명 정도의 목사, 전도사들이 배출됐다”고 했다.

이어 “S1부터 S4 과정은 SLDT(Seoul Lifetime Disciple Training) 코스에 해당된다. 이는 처음 교회에 들어오면 복음에 대해서, 교회 정착에 대해서 학습하고 이어 세례에 대해서도 교육을 받게 된다”며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하고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 안 평신도 중 전문가들이 있는데 그런 성도들에게 각 분야에 대한 전문 강의를 맡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을 통해 크리스천 인문학 교실, 문학반, 기독교 경제학반, 역사반, 미술학반 등이 만들어졌다. 이런 과정이 SLDT를 통한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대 원로 목사님이 시작하셨던 인천고등성경학교는 이 시대에 와서는 ‘인천 밀레니엄 제자 아카데미’로 명칭을 바꿨다. 여기서는 교회 교역자 뿐만 아니라 제가 소속되어 있는 교단의 인천노회 여러 목사님들이 강사로 나서서 각 교회에서 보내는 평신도들에게 여러 강의를 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아카데미에 모여서 성경 강의 그리고 기독교 인문학 강의를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

▲송월교회의 국내·외 선교

송월교회는 튀르키예, 필리핀, 일본, 말레이시아 등 각 나라에 선교사들을 파송하며 국내의 미자립교회 등을 지원하고 있다. 박삼열 목사는 “해외선교는 어느 교회나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교회에서는 해외선교를 시작할 때 교회, 예배당을 건축할 때 지원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복음적인 기관, 미자립 교회들에도 지원하고 있다. 이 지원이 코로나 기간에도 끊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도합 30개 정도의 선교단체 그리고 25개의 미자립교회에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박삼열 목사
박삼열 목사는 교회 내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한 공원을 조성했다. ©최승연 기자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념하는 기념관

박삼열 목사는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념하고자 교회 내 작은 기념관을 세웠으며 교회 주변에 기념비도 세웠다. 이에 대해 박 목사는 “인천에서 목회하면서 인천이 우리나라의 첫 선교사가 들어온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기념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독자적으로 두 선교사를 위한 기념공원을 마련하게 됐다”며 “기념공원에 당시 언더우드 선교사가 했던 대표 어록이 있었는데 그것을 돌판에 새겨 공원을 조성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당시 언더우드 선교사는 ‘지금 내 눈 앞에는 새로운 조선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장차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사랑과 화목과 협동의 기독교 정신으로 가르치는 학교들이 보이고, 도시와 마을마다 자비량으로 운영되는 기독교 병원들이 보인다. 이 나라의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 긍휼을 베푸는 기관들이 세워져서 고통당하는 자들을 섬기고 여기저기 죽어가는 자들에게 빛과 기쁨을 주는 모습이 보인다. 이 나라가 힘 있고 복된 감화의 두 팔을 내밀어서 한 팔로는 중국을, 다른 한 팔로는 일본을 껴안아 세 나라가 다 기독교 국가가 되어 모두 손에 손 잡고 한 큰 원을 그려 어린 양을 영원토록 찬송하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예수를 소리 높여 찬양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이런 어록은 당시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 어록을 접하면서 다른 교회들은 몰라도 우리 교회는 이렇게라도 기념을 해야겠다고 해서 기념공원을 조성하게 됐다”고 했다.

▲복음 전파의 핵심은 ‘복음 설교’

박삼열 목사는 “저는 설교를 전할 때 ‘복음 설교’를 전하는 것이 가장 재밌다고 여겨진다.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는 언제나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후원을 생각하게 된다. 복음을 생각하고 말하는 동안에 우리는 좋지 않은 생각을 할 수가 없고, 복음을 전하는 순간에는 영혼을 사랑하게 되고 그 영혼 속에 수많은 가능성을 보게 된다. 따라서 전도와 관련해서는 복음 전도 설교가 너무 즐겁게 느껴진다”고 했다.

▲한국교회에 바라는 점

박삼열 목사는 “저는 박윤선 목사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분 밑에서 4년 동안 부목사로 섬겼던 적이 있었다. 당시 박윤선 목사님은 80이 넘으셨으며 저는 30대 초·중반까지 옆에서 사회를 보고 있었다. 박 목사님은 연세가 있으셔서 설교하러 나가실 때 숨이 차셨지만, 단 위에서 설교를 논리 있게 전하셨다. 박 목사님은 본문이 주어지면 그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논리를 가지고 철저하게 그 논리만을 전하셨던 분이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에 좋은 목사님들도 많고 기도 운동, 부흥 운동이 다 잘 되었으면 좋겠지만, 성경 말씀을 논리와 순서대로 빛과 열을 가지고 설교했던 박윤선 목사님을 통한 교훈을 계속해서 우리 모두가 이어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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