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실 연구원(카도쉬아카데미)
이신실 연구원(카도쉬아카데미)

어린 시절 나에게 가을은 선물 같은 계절이었다. 긴긴 여름을 보낸 후에 찾아온 선선한 바람에 햇빛을 받으며 쏟아지는 노란 낙엽의 낭만을 가득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이제 가을이 되면 걱정부터 찾아오게 되었다. 우리 동네 식당, 카페, 마트, 심지어 아파트 입구까지 호박들과 귀신들이 대롱대롱 달리고, 우리 자녀들이 이상한 캐릭터 분장을 하는 계절로 바뀐 것이다. 어떤 아이는 입가에 피를 묻히고 동네를 돌아다녀서 순수한 미소가 보여야 할 어린 아이 얼굴에 저런 기괴한 분장을 해도 되는지 염려가 되었다. 이번 가을에도 이런 걱정들로 마음이 무겁던 차에 이태원의 할로윈 참사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 속에 단 한숨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뉴스에서 보이는 장면들이 믿을 수 없었고 황망하게 가족을 잃으신 유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지 그 아픔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고대 켈트족이 악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인신 제사를 드리며 유래된 할로윈의 의미를 모른 채 할로윈 문화가 대한민국에 퍼져가는 현상을 바라보며, 할로윈 문화의 문제점에 대하여 더 깊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대학교 정신의학과 민성길 명예교수님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할로윈 기간에 교통사고, 낙상사고, 피부 찰과상, 유아 유괴, 독이 든 과자로 인한 각종 사건과 사고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아이들이 알지도 못하는 어른들 집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는 행위는 매우 위험할뿐더러, 나이가 들어갈수록 잔인해지는 분장과 코스튬으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거나, 피부에 독이 오르기도 하며, 확인하지 않고 받아먹는 과자나 사탕에 독이나 마약이 타져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악령들이 돌아다닌다고 믿는 어두캄캄한 밤에 벌어지다보니 보호를 받아야할 아이들이 오히려 위험에 많이 노출되게 된다고 한다. 또한 그 내용을 들여다보아도 교육적으로 염려스러운 것들이 많았다. 사탕을 받기 위해 아이들은 “Trick or treat” (장난칠까요, 아니면 한 턱 내실래요?)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협박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또한 얼굴이나 옷에 피를 묻히고 칼이나 도끼를 들고 다니는 행동도 폭력적인 행위의 모방으로써 실제 그 행동을 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적 효과가 난다고 하니 우리 아이들에게 악의 모습을 학습시키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가르치던 제자들도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선생님, 놀이공원에 갔더니 머리에 도끼 찍은 조형물들이 있고 너무 무서웠어요.”, “선생님, 트릭 오알 트릿이 영혼을 파는 거래요.”, “선생님, 가면을 쓰면 힘이 쎄지고, 마약을 하면 더 힘이 쎄져서, 성스러운 것들을 다 무너뜨릴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할로윈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느끼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순수한 아이들을 상대로 비교육적인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걱정되어 학부모님들께 아이들을 할로윈 행사에 참여시키지 않도록 권면을 드린 적도 있었으나 “다들 하는 건데 어쩔 수 없어요.”, “어릴 때 재미로 하는 건데 괜찮지 않나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지어 자녀들의 얼굴에 립스틱으로 피를 그려주고 그 모습을 SNS에 올리시는 학부모님도 계셨다. 그러나 아무리 재미로 하는 행사일지라도 염려되는 것은 어린 시절에 시작한 공포놀이와 분장이 일본 시부야 거리의 학생들처럼 교복에 낭자한 피를 묻히고 돌아다니는 더 잔인하고 자극적인 형태로 변형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번에 이태원 참사에 희생된 젊은이들은 유치원, 어린이집, 영어학원의 무분별한 할로윈 교육과, 이제는 방송, 문화, 상업 전술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할로윈 문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세대들이다. 할로윈 교육을 지금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자녀들과 이 다음세대가 먼 훗날 청년이 되어 술, 마약, 음란이 도사리고 있는 여러모로 위험한 환경 속에서 왜곡된 방식으로 욕망을 또 다시 표출하게 될 것이다.

거대한 문화의 시류 앞에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방조할 수밖에 없었던 한 무책임한 어른으로서, 할로윈 참사와도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다. 누구의 탓을 하기에 앞서, 악을 학습시키고, 그저 재미와 유흥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을 어두운 거리와 낯선 이들에게 내보내며, 출처를 알 수 없는 간식을 받아먹게 하는 이 위험한 문화를 이제는 그만 멈추자고 우리 어른들이 외쳐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 앞으로 혹시나 벌어지게 될 제2의, 제3의 할로윈 참사를 막고, 우리 자녀들을 사고와 범죄가 도사리는 문화 가운데에서 보호하고 예방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로윈 핼러윈

이러한 의견을 필자가 속한 카도쉬 아카데미 강사들과 공유 했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한 목소리를 내주며 여러 문구들을 제안해주었고 포스터 디자인에도 손길을 보태주었다. 우리 대한민국의 소중한 아이들, 학생들, 젊은이들을 더 밝고 아름다운 문화로 지켜주지 못하고, 학업과 취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분장과 가면 속으로 내몰아야했던 어른들의 미안함이 다음세대에 조금이나마 전달되고 사죄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며, 이미 예견되었던 어둠의 문화인 할로윈에 동조하고 너도 나도 장려했던 우리 모두의 교육적, 문화적 책임임을 가슴깊이 통감하며,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젊은이들과 슬픔 속에 잠겨 있을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할로윈 참사는 우리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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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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