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전기
도서 「바울 전기」

바울은 한때 자신에게 걸림돌이었던 예수 십자가 죽음을 자신의 신학 중심으로 삼았다. 십자가에 걸려 넘어진 바울은 십자가를 들고 우뚝 일어섰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께 속하며, 바울의 사도직은 하느님께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다마스쿠스 체험의 핵심이다. 다마스쿠스 체험이 바울 신학의 시작이고 바울 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바울 신학의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바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뿐 아니라 역사의 예수도 주제로 삼았다. 바울은 추상적인 예수 역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예수 역사를 바울 신학의 기초로 삼았다. 바울의 예수 운동은 가난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했다. 예수 운동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활발히 교류했다. 편지, 여행, 협조자, 경제적 도움, 손님을 친절히 맞이하는 문화 덕분에 공동체끼리 소통도 활발했다. 군인, 상인, 노예들은 도시에 있는 예수 운동 공동체를 찾아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예수 운동은 소수파 그룹이지만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다. 예수 운동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활기찬 빵나눔, 감동적인 성령 체험, 일치하는 문화, 평등 의식을 느끼고 누릴 수 있었다. 예수 운동의 개방성과 평등은 그리스로마 사람들에게 큰 매력을 선사했다. 예수 운동은 그렇게 시작했다.

김근수 – 바울 전기

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
도서 「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

신화적 종말 각본의 중심에 자신을 위치시킨 역사적 예수는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경을 거부하거나 급진적으로 재해석하는 이들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예수는 자신을 전적으로 특별하며 유일무이한 존재로 생각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통주의나 그 반대파들은 이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 예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예수가 자신에 대해 생각했던 바와 일치하지 않는다. 슈바이처의 유명한 표현을 빌려 결론을 말하면, 역사적 예수는 여전히 이방인이자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인으로서 나는 이 결론이 그다지 끔찍한 결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신학적 꿈을 흐트러뜨리는 예수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분명 복음서의 예수는 현실 안주, 자기만족과 싸우는 인물이다.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간에 우리의 신학을 확증해주는 역사적 예수는 현실 안주와 자기만족만을 가져다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예수, 우리를 편안하게 하고, 우리처럼 말하고, 우리의 의견을 칭찬하는, 길들여진 예수는 결코 예수가 아니다.

데일 C. 엘리슨(저자), 김선용(옮긴이) - 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

자연적 성장의 길
도서 「자연적 성장의 길」

교회 성장 연구를 전문하는 우리는 팬데믹 3년 차가 되면서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 건강했던 교회들은 지금도 건강하다는 것이다. 이 교회들은 건강도 지수를 팬데믹 이전과 같은 수준에서 유지했으면 약 70~80% 정도의 현장 예배 출석률을 유지하고 있다. 헌금 액수도 큰 변화가 없고 오히려 150%까지 늘어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일부 교회는 새로운 출석자들(이동 신자, 새신자)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반대의 현상도 심각하다. 이전에도 명목상 교회 간판을 유지하던 교회 중에서 문을 닫은 곳도 있고 100여 명 이하 규모의 교회 중에서는 현장 예배 출석 인원이 팬데믹 이전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도 있다.

김한서, 이근배, 이인호, 이윤기 – 자연적 성장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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