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가 쓴 '고통의 문제' 라는 저서에서 "고통은 영웅의 자질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놀라울 만큼 많은 이들이 그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라고 서술하며 책을 마무리 합니다. 이 말을 이루며 한 시대에 음악 예술 분야에 영웅으로 살았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쥬세피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1901)입니다. 그가 남긴 음악 작품은 여느 유명한 작곡자들처럼 다양한 장르를 가지고 많은 것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26개의 오페라와 레퀴엠, 이것이 그를 대표하는 음악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를 지칭하여 후대 사람들은 '근대 오페라의 가장 큰 거목' 이라고 말합니다.

베르디는 가정사와 음악적인 큰 시련을 연거푸 겪게 됩니다. 그가 1839, 40년, 두 해에 걸쳐 차례로 두 개의 오페라(오베르토 Oberto, 하루만의 임금님-Un Giorno di Regno)를 만들어 각각 초연을 했습니다. 하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싸늘하였고 무참히 실패하여 나락에 빠지면서 자신을 잃게 되었습니다. 1836년 결혼하여 그 이듬해에 낳은 아들과 아내를 차례로 잃어버리게 되며 큰 아픔을 겪던 차에 연속되는 그의 비극은 베르디로 하여금 한 때 작곡마저 단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깊은 실의 속에 두 해를 보낸 베르디는 1842년 당시 스칼라극장의 지배인으로 있던 바르톨로메 메렐리(Bartolomeo Merelli, 1794~1879)의 집요한 설득으로 솔레라(Temistocle Solera, 1815~1878)가 쓴 나부코 왕의 행적을 그린 오페라 대본을 건네게 됩니다. 오페라 '나부코'(Nabucco)는 바빌로니아 왕국의 통치자 나부코 왕(성경 속 느부갓네살)이 유대 민족을 침략하는 구약 성경의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마음에 내키지 않은 심정으로 오페라 대본을 접하게 된 베르디는 이것을 통해 의욕을 되찾아 작곡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하며 재기의 의욕의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베르디가 이 오페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두 가지로 추적해 볼 수 있습니다. 민족주의 작곡가로 유명한 그는 대본의 내용이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이란 확신이었습니다. 당시의 북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하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전국민적인 애국운동으로 온통 술렁거리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민족의식과 자유의지의 열망이 베르디의 오페라 정신을 지배하고 있던 중 "나부코"의 대본을 읽고 완전히 매혹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 오페라 작곡가로서 그는 두 개의 작품이 완전한 실패된 이후 재기를 다져야 하는 절대적인 위기상황 속에서 "나부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작곡에 손을 대고 이 작품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스케일과 스펙테클한 무대규모를 마음껏 표현하면서 유대왕국의 멸망에 따른 나부코의 행적을 쫓는 그의 음악 정신은 뜨거운 불꽃을 피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처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민족인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수난, 그로 인한 고통과 환난, 이렇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절함 속에 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민족의식과 신앙을 잃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는 그들의 강인한 결속력은 베르디 스스로 감동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거대한 불을 지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오페라는 주연, 혹은 조연가수들의 아리아나, 듀엣 앙상블에서 하이라이트를 찾아볼 수 있지만, 이 '나부코'는 합창에서 가장 중요한 크라이막스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제 3막에서 부르는 '노예들의 합창'(Va Pensearo)으로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와 억압과 노역에 시달리는 히브리 노예들이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조국을 향해 노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솔로가 아닌 합창으로 표현된 예루살렘을 향한 그들의 간절한 그리움은 단번에 이탈리아 국민들을 사로잡아버리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베르디는 이 합창곡으로 조국의 해방과 통일을 염원하는 이탈리아 국민의 마음을 단숨에 흔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결국 베르디는 1842년 3월 9일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에서 감격적인 초연이 이루어 져 그것이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무려 67회나 연속 상연될 정도로 오페라 팬들을 열광시켰던 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베르디는 나부코 대 흥행 이후 50여 년에 걸쳐 23개의 오페라를 지속적으로 작곡하게 되었고 모든 오페라 작품은 하나도 빠짐없이 대단한 인기를 독차지하며 오늘날까지 전 세계의 오페라 시장에 주 레퍼토리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이 그로 하여금 근대 오페라의 거장이라는 호칭을 받게 된 것입니다.

시편 27편 1-2절을 보면 이 시편의 저자 다윗은 여러 시련과 환란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가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빛이요 구원이시며 생명의 능력이 되시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베르디는 그가 당시 겪게 되었던 숱한 시련 속에서도 바벨론 포로 당시 이스라엘 민족들이 품고 있던 하나님의 약속을 간직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이 고백을 베르디는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 소망을 잃지 않고 재기의 시동을 걸어서 위대한 작곡가로 성공하였습니다.

베르디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오페라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베르디는 루이스가 이야기 한 "고통은 영웅의 자질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 합니다." 라는 말을 이룬 대표적인 음악가 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크고 작은 시련과 고통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며 때로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아픔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영웅의 자질을 드러낼 기회" 라고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으로 직시하지 않으시렵니까?

윤임상 교수(월드미션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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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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