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만 장로
신동만 장로

여호수아 장군이 죽자, 이스라엘 민족은 지도자 없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가나안 부족과 혼인하여 장가가고 시집가며 며느리를 얻고 사위를 얻는 등 가나안 족속에 동화되었다. 가나안의 풍요로운 물질과 우상들을 섬기며 타락한 기간이 사사기다.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있어도 늘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행과 죄를 반복하여 저지르는 인생들인데 지도자까지 없으니 오죽했겠는가? 눈에 보이는 우상과 물질에 취하고 현혹되어 어떤 때는 하나님을 부르짖고, 어떤 때는 육신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타협하며 인생을 산 것이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6)"는 대상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된 것이다. 이렇듯 사사기 시대를 마치고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를 지도할 왕이 필요하다며 사무엘 사사에게 '하나님께 구하여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왕정 시대를 열어주었다.

초대 이스라엘의 왕은 사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의 범죄로 왕위를 다윗에게 넘겨주었다.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음으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대상10:13~14)"고 하였다. 다윗왕은 하나님의 주권과 왕의 역할을 구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한 인물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대상11:9)"

다윗은 이스라엘의 인물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분별하고 순종하여 엄청난 축복을 받은 인물이다. 물질이 가장 풍요롭고 음란한 이방신이 난무할 때도 하나님께 범죄하지 아니하고 우상을 제거하고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이스라엘은 물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위대한 왕 지도자가 되었다. 온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당시 가나안 땅의 대표적인 우상은 바로 바알과 아세라와 아스다롯이었다. 이들은 풍요와 음란의 신이다. 가나안 땅의 풍부한 물산과 두루와 시돈 지역의 페니키아인들과 해상무역으로 지중해 전 지역에서 들어오는 금과 은, 상아와 잔나비, 백향목 등 각종 진귀한 보물들이 가장 풍성한 시절이었다.

절정기는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로 궁궐에서 직접 운영하는 선단을 꾸려서 수백 척의 배를 지중해 전 지역에 운용하였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팍에 새기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지도자다. 다윗왕은 후계자로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을 택하였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의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2910~13)"라고 찬양하였으며, 다윗의 마지막 유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비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삼하23:4~5)"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 왕 후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팍에 새기고 끝까지 아버지 다윗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이방 나라들과 혼인 정책을 취하여 말년에 아내들이 섬기는 이방 신들에 취해 결국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나라가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다.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에게 망하였다. 이어 남 유다도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멸망한 것이다. 북이스라엘이 망하는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왕은 아합과 왕비 이사벨이다. 이사벨은 시돈 왕의 딸이다. 페니키아인의 후손에 의해 지배된 시돈은 당시 두루와 함께 지중해 연안의 모든 나라들과 해상무역을 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한 나라로 우상인 바알과 아스다롯을 숭배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들과 함께 지중해를 곳곳을 누비며 식민지를 세우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들은 사사시대부터 남북 이스라엘이 망할 때까지 이들과 함께 지중해의 많은 나라들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어 아이러니하게도 가나안 땅은 식민지가 되었지만, 세계화의 주역이 된 것이다.

북이스라엘 아합왕이 멸망한 이유는 아합궁에서 가까운 나봇의 포도원 때문이다. 아합은 포도원을 갖고 싶었으나 나봇이 팔지 않자 상심하여 누워버린 사건으로 이에 아내 이사벨이 비류출신 조폭들을 사주하여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은 사건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고 결국은 호세아 9년 기원전 722년에 멸망하였다. 성경은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 열조로 더불어 세운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좇아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하사 본받지 말라 하신 사면 이방사람을 본 받아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노를 격발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왕하17:15~18)"고 말씀하고 있다. 우상인 이방신의 열열한 숭배자 이사벨과의 혼인이 멸망을 앞당긴 것이다.

이사벨은 북이스라엘만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남 유다의 멸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남 유댜의 왕인 여호사밧의 아들인 여호람과 아합과 이사벨의 딸인 아달랴를 혼인시킨 사건이다. 아달랴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이사벨로부터 악함과 우상 숭배하는 것을 배우고 본인의 성정도 아주 악하여 아들 아하시아가 왕 위에 오른 지 1년 만에 죽자 반역하여 남 유다 왕의 씨를 진멸하고 6년 동안 남 유다를 통치하였다. 후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동원하여 아하시아의 형제 중 생존자 여호람의 아들 요아스를 왕위에 복원시켜 남 유다의 왕위 계승을 이어 나가도록 했다. 당시 제사장 여호야다의 기록을 보면 아달랴를 죽이기 전에 얼마나 많은 우상을 남 유다에서 숭배했는지 "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그 당을 훼파하고 그 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왕하11:18)"고 기록하고 있다. 후에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의 개혁이 있었으나 결국 남 유다도 우상숭배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반복적으로 행함으로 바벨론에 의해 수도 예루살렘이 멸망함으로써 기원전 586년에 망하였다.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바벨론 군사들에 의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왕하24:7)"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나라가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팍에 새김으로 국가의 흥망성쇠와 개인의 생사화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성경은 예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사조 같은 유대민족 이스라엘은 물리적으로는 망한 것 같았지만 면면히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운동력을 발휘하고 있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수많은 이스라엘 민족의 후예들은 바사(페르시아)왕국 시대에 포로의 귀환정책으로 예루살렘으로 복귀하게 된다. 기원전 538년 바사왕 원년 고레스 왕에 의해 귀환조서가 발표되고 이듬해 스룹바벨에 의한 1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지며 성전재건 사역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479년 아하수에로 왕 시대에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이야기 즉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하만의 흉계를 물리친 역사와 기원전 458년 아닥사스다 왕의 2차 포로 귀환정책은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에 의해 이루어지며, 동왕 기원전 444년 3차 포로 귀환은 왕의 술 관원이었다가 후에 유대의 총독이 된 느혜미야가 3차 포로 귀환을 주도한 시기다. 참고로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 선지자의 사역은 기원전 430년의 일이다. <계속>

신동만 장로(국군중앙교회, 예비역 육군소장, 정치학 박사)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신동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