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개항기의 조선사회와 기독교(대한민국의 근원)

박명수 교수
박명수 교수 ©기독일보 DB

서양의 기독교가 한반도에 들어왔다면 그 기독교는 어떤 성격의 것이었을까? 세계 기독교는 크게 동방 정교회, 카톨릭, 그리고 개신교로 나눈다. 우리와 가까이 있던 러시아는 동방정교회 국가였다. 하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서방 카톨릭이며, 임진왜란 이후부터 청을 통하여 한국에 소개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1784년 이승훈이 중국에서 세례를 받고 들어온 다음 부터이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온 카톨릭은 아직 유럽의 봉건 질서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근현대사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국에 근대문명을 전하였던 것은 영미의 개신교문명이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바로 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한반도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크게 보아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려는 프랑스와 이것을 견제하려는 영국/미국의 도전이었다. 병인박해 이후 이것을 빌미로 조선을 정복하려는 프랑스와 이것을 막으려는 중국, 그리고 여기에 편승하여 조선을 무역시장과 선교지역으로 만들려는 영미의 공동 노력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다. 중국은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서 영미를 활용하고자 하였다. 제너럴 셔먼호는 영국과 미국 개신교 문명의 상업과 종교가 하나로 묶인 사건이다. 비록 제너럴 셔먼호의 목적은 실패했지만 이 통로를 통하여 근대 영미 기독교문명이 한반도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미국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프랑스, 영국에 공동보조를 갖추자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와 영국은 이것을 거부하였다. 사실 당시 영국은 이미 너무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마음이 없었고, 프랑스 역시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멕시코에서 미국과 전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1867년 3월 미국에서 열린 회의에서 유럽의 국가들은 조선문제는 미국에 맡길 것을 결정하였다. 이렇게 해서 조선의 개방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반도는 유럽의 입장에서는 아시아의 극동이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본과 함께 아시아로 가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조미조약을 성사시킨 사람은 바로 로버트 슈펠트이다. 그는 남북전쟁이후 미국은 대양의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태평양진출을 강조하였다. 그는 역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진행되는 것, 즉 서양에서 동양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쪽에서 서쪽, 즉 미국에서 아시아로 오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페리가 일본을 개항한 것처럼, 자신은 조선을 개항하고자 하였다. 이와 더불어 슈펠트는 19세기 말의 미국은 지금까지 “서구 기독교문명의 총화”라고 생각하면서 이제 미국은 영국의 2중대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조선은 아직 세계에서 서양과 정식으로 교역을 하지 않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였다. 다시 말하면 꼴지가 일등과 만나게 된 것이다.

슈펠트는 1880년 조선과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나가사끼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쓴 보고서에서 조선의 지정학적인 위치와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조선은 지리적으로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가 싸울 수 밖에 없는 전쟁터이며, 이미 이같은 싸움은 시작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은 미국과의 조약이 갖는 정책을 이해할 뿐만이 아니라 주변 강국들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 이런 조약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이해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슈펠트의 이 말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조선을 위태롭게 하는 나라는 멀리 서양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에 있는 강국이다. 이들의 위협에서 조선이 벗어나려면 미국과 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 근현대사를 보통 서구제국주의와 조선민족의 갈등으로 이해하지만 사실은 서양국가들 가운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나라는 없었다. 슈펠트는 조선을 위협하는 세력을 오히려 조선을 둘러싼 중국, 러시아, 일본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 이들을 불리칠 수 없다. 조선을 도와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근현대사는 “서구제국주의 vs 조선”의 구도가 아니라 “주변 3대국 vs 조선 + 미국”의 구도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미국과 연대해서 주변 3대국의 위협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한국 근현대사의 여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한미관계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서구제국주의의 주요한 관심은 무역과 선교이다. 상업과 종교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제너럴 셔먼호는 상선이며, 동시에 선교의 통로였다. 프랑스는 여기에서 종교에 더 큰 관심을 가졌고, 영국과 미국은 무역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성리학을 국교로 하고 있는 조선은 무역보다는 선교를 더욱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조선은 기독교를 반대했고, 미국은 자신들은 조선에 자신의 종교를 강요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은 선교를 내세우지 않고, 무역을 내세우면서 조미조약을 맺게 되었다. 조미조약에는 서구국가들이 아시아의 국가와 조약을 맺을 때 다 들어있던 종교에 관한 내용이 없다. 그러나 이 조약에는 문화교류라는 이름으로 선교를 시작할 수 있는 틈을 갖고 있었다. 이 틈을 통해서 기독교가 들어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무역은 조선에 앞문으로 들어왔지만 선교는 뒷문으로 들어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문으로 들어온 무역은 별로 성공하지 못한 반면 뒷문으로 들어온 선교는 성공하게 되었다. 이후에 조선에 들어온 서구 문화는 무역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선교를 통해서 들어왔다. 중국이 아편을 통해서 서양과 만났다면 조선은 복음을 통해서 서양과 만났던 것이다. 이 통로를 통해서 새로운 사상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선교와 함께 들어온 서구 사상을 몇 가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첫째, 우주의 근원인 절대자 재발견이다. 성리학적 원리에 의하면 天과 上帝는 하나이며, 이 천이 우리에게 명한 것이 性이다. 하지만 기독교는(천주교와 개신교를 포함하여) 하늘과 하나님을 구별한다. 하나님은 하늘을 창조한 분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하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만든 하나님, 즉 천주를 섬긴다. 성리학적인 원리에 의하면 인간이 하늘과 만나는 것은 성리학적인 격에 따라 천자의 몫이라면 기독교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으며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성리학적 질서에 의해서 세상 만물의 격이 정해지지만 기독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평등하다. 이것은 중화질서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을 가짐으로 성리학적 질서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게 되었다. 서양의 기본권은 바로 하늘이 성리학적 질서에 의해서 부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인류에게 직접 부여했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둘째, 개인의 자유의 발견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근대사회의 핵심은 개인의 재발견이다. 봉건사회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개인이 없다. 그러나 개신교는 신앙이란 공동체의 결단(국교)이나, 신비한 전례(성례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결단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 역사에 개인이라는 것을 등장시켰다. 이런 신앙의 자유는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이것은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쳐서 오늘의 서구문명을 만들어 냈다.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는 한국사회의 많은 영역에 개인의 자유를 확대시켰다. 먼저 종교영역에서 조선정부가 개신교의 선교를 용인하자 그 다음에는 천주교, 그 다음에는 동학, 그리고 불교가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게 되었다. 한국사회에 다종교사회, 즉 종교시장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이런 자유가 결혼의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결혼은 부모의 선택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근대문명을 위한 기관을 만든 것이다. 서양문명이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중화질서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 이 공간에서 과거와는 다른 세계관이 가르쳐 지고, 언어가 형성되며, 그 결과가 보여져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교회, 학교, 병원이라고 생각한다.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는 성리학적인 질서와는 다른 질서를 가르쳤다. 여기에서 추상적인 “하늘”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이 가르쳐지고, 유교적인 신분질서가 아닌 기독교적인 하나님 앞의 만민평등이 가르쳐졌다. 과거 서당이나 향교에서 한문을 배웠다면 미션 스쿨에서는 영어를 배워 서구무명를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특별히 병원은 서구문명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기관이었다. 서울에 창궐한 콜레라를 서양병원에서 치료했다는 것은 서구문명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기관(교회, 학교, 병원)들은 새로운 직업(목사, 교사, 의사)을 만들어 냈으며, 이들이 바로 새로운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

넷째, 민족과 한글의 재발견이다. 개신교는 유럽의 민족주의와 함께 시작되었다. 루터는 로마 카톨릭의 보편주의(Catholicism)에 맞서 독일 민족주의를 강조했으며, 라틴어 대신 독일어를 사용했다. 성공회는 영국의 민족주의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절정은 킹 제임스 영어성경이다. 개신교 선교는 민족의 언어를 강조하며, 개신교가 바로 그 민족의 종교가 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는 바로 한글을 강조하였고, 한국에 전파된 기독교는 한국적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유명한 네비어스 선교정책(自立, 自治, 自傳)이다. 네비어스는 선교의 목적은 교회를 그 민족의 교회로 만드는데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개신교의 민족과 한글의 재발견은 우리 민족을 중화주의에서 벗어나 독립된 국가를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원래 개항기의 개화에는 세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중국을 통한 길이었다. 사실 중국은 1860년대 양무운동을 시작하면서 조선도 여기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런 개화는 중국의 통제아래서 진행되는 것이었다. 다음은 러시아를 통한 길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자체가 근대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고종과 러시아의 밀착은 조선을 개화로 이끈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이라는 보다 강화된 절대군주체재를 지향하게 되었다. 또 다른 방향은 일본을 통한 길이었다. 위의 세 방향 가운데 가장 서구적인 것은 일본을 통한 개화였다. 그러나 이런 초기 개화세력도 1882년에는 임오군란을 통해서 당시 조미조약을 체결하는데 적극적이었으며, 대원군의 형으로 당시 영의정이었던 이최응 등이 제거되고, 1884년에는 갑신정변을 통해서 김옥균 등 개화세력이 사라지고, 1894년에는 청일전쟁 이후 갑오개혁이 시작되고, 을미사변으로 본격적인 개혁이 시작되었지만 1896년 아관파천 이후 김홍집을 중심으로 한 개화세력이 붕괴되었다. 이렇게 친일개화세력이 힘을 잃고 난 다음에 등장한 것이 친미개화세력이며, 이들은 독립협회를 만들었고, 여기에서 기독교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런 친미개홰세력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기원이 되고 있다고 본다. (계속)

박명수 박사(서울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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