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엽
연세대 교수, 추계예대 교수,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서울시합창단 단장을 역임했던 김명엽 교수

찬송가 부록에 실린 작사자 색인엔 마르틴 루터의 찬송이 두 장이나 됩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585장)는 워낙 유명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내가 깊은 곳에서’(363장)는 찬송가가 새로 나올 때마다 찬송 시를 지은 이가 각기 다릅니다. 통일찬송가(1987)는 피득(A.A.Pieters, 1898), 새찬송가(1972)는 시편 130편, 개편찬송가(1967)는 작자미상, 21C 찬송가(2008)와 한영찬송가(2010)는 루터(M.Luther)입니다. 이 시의 원작자는 과연 루터가 맞는 것일까요?

루터의 코랄 Aus tiefer Not

루터는 시편 130편을 의역하여 찬송 시 ‘내가 깊은 곳에서’(Aus tiefer Not schrei ich zu dir)를 1523년에 지었습니다. 시편 130편은 루터가 가장 좋아하는 시편입니다. 그는 시편의 시화(詩化)를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결과 이 시편 버전이 독일 시편 버전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 시는 최초의 루터교 찬송가(Achtliederbuch)에 실린 8곡 중 하나로 1524년에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같은 해 Erfurt Enchiridion에서도 나왔고, 이후 많이 번역되어 많은 찬송가에 실렸습니다. 이 텍스트는 J.S.바흐의 칸타타를 비롯하여 멘델스존, 막스 레거와 같은 작곡가를 포함하여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의 성악곡과 오르간 음악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루터는 시편 130편을 독일어를 사용하는 개신교 예배 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첫 번째 시도입니다. 그는 1523년에 라틴어 성경(Vulgara)의 참회 시편인 De profundis를 의역하여 지었습니다.

루터는 동료 개혁자들이 독일어 예배 시 사용할 시편 찬송 작시를 독려하기 위해 이 시를 샘플로 보냈습니다. 4절로 된 버전은 1524년 뉘른베르크에서 최초의 루터교 찬송가인 Achtliederbuch라고도 하는 일부 성가집(Etlich Cristlich lider)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5절로 된 버전은 2개의 절에서 ‘오직 은총’이라는 주제를 더욱 완전하게 발전시키는 가사로, 1524년 비텐베르그에서 Eyn geystlich Gesangk Buchleyn이 처음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곡명 AUS TIEFER NOT(아일랜드 교회 찬송가는 곡명 DE PROFUNDIS, 다른 곳은 LUTHER’S 130TH)는 루터가 작곡하였고, 1524년에 5절 시에 맞춰 처음 등장했습니다.
필수적인 종교개혁 교리를 담은 5절 버전은 여러 지역의 루터교 예전의 정규 구성 요소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코랄은 헤겐발트(Erhart Hegenwalt)의 시편 51편 코랄 버전과 함께 루터의 소요리문답(Small Catechism)의 다섯 번째 고백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이 코랄은 1546년 2월 20일 할레에서 진행된 루터의 장례식에서 불렸으며, 1681년 프랑스인에게 도시가 함락되기 전 스트라스부르그 대성당의 마지막 찬송으로 불렀습니다. 비텐베르그 Elector Friedrich 선제후의 장례식에서 등 많은 이들의 장례식에서 불렸습니다.

이 코랄은 가장 오래된 코터(H. Kotter)의 오르간 작품을 필두로 파헬벨, 샤이데만, 차코우, 가이스트, 프랑크(M. Franck), 프레토리우스의 오르간 전주곡과 4성부 합창 등의 작품을 낳았습니다. J.S.바흐는 코랄 칸타타 BWV 38과 클라비어 연습곡 BWV 686과 BWV 687을 썼고, 헨델은 메시아의 마지막 아리아에서 코랄의 모티브를 반복합니다. 멘델스존, 리스트, 레거와 20세기의 작곡가들이 여러 장르의 교회음악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 코랄을 영역(英譯)한 찬송은 무려 20편이 넘습니다. 이 중 윙크워드(Catherine Winkworth)가 번역한 Out of the depths I cry to Thee가 가장 많이 불립니다.

피터스의 시편촬요

우리말 신약성경은 1882년 존 로스 목사에 의한 누가복음을 시작으로 요한복음이 출판되었고, 1887년 신약전서 예수셩교전서가 출판된 것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말 구약성경은 이보다 11년 후인 1898년 알렉산더 피터스(Alexander Albert Pieters 1871-1958, 한국명 피득) 목사가 시편 150편 중 축복 편에 속하는 62편을 발췌하여 한국어로 번역한 ‘시편촬요’(詩篇撮要)가 최초입니다.

피터스 목사는 유태계 러시아인으로 정통파 유대교 가정에서 태생으로 회당에서 히브리어로 성경을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특별히 어학에 특출한 재능을 가졌습니다. 러시아어는 모국어였고, 집안에서는 히브리어와 독일어 합성어인 이디쉬(Yiddish)어를 사용했으며, 독일어, 라틴어, 희랍어 같은 고전어도 능통했습니다.

1895년(24세) 일본 나가사키에서 주님을 영접한 후 우리나라에 들어와 권서인(勸書人)으로 활동하면서 3년 만에 시편을 한글로 번역하였습니다. 히브리어에 능통했기에 중역(重譯) 아닌 직역입니다.

아울러 찬송 시 ‘주여 우리 무리를’(75장)과 ‘눈을 들어 산을 보니’(383장), ‘내가 깊은 곳에서’(363장), ‘내가 한 맘으로’(통 17장) 등 운율 시 14편을 지어 1898년 출간된 장로교 찬송가인 ‘찬셩 시’ 제2판에 수록하였습니다.

피터스 목사는 미국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 그의 도움으로 최초의 한글번역 ‘구약젼셔(1911년)’도 출판되었고, 구약성경 개역위원회의 평생위원으로서 ‘개역 구약성경(1938)’ 출간에도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찬송 시 ‘내가 깊은 곳에서’(363장)

이제 찬송 시 ‘내가 깊은 곳에서’(363장)의 지은이가 누구인지 비교해보겠습니다.

첫째, 루터의 코랄 Aus tiefer Not와 피터스의 ‘내가 깊은 곳에서’는 운율(meter)이 다릅니다. 루터의 시는 Aus① tie②-fer③ Not④ schrei'⑤ ich⑥ zu⑦ dir⑧, / Herr① Gott,② er③-hör'④ mein⑤ Ru⑥-fen,⑦이고, 피터스의 시는 내① 가② 깊③ 은④ 곳⑤에⑥ 서⑦ / 주① 를② 불③ 러④ 아⑤ 뢰⑥ 되⑦입니다. 즉 루터의 운율은 8.7.8.7.8.8.7.이고, 피터스의 ‘내가 깊은 곳에서’의 운율은 7.7.7.7.7.7.7.입니다. 21C 찬송가의 악보 오른편 위의 ‘운율 표기’가 7.7.7.7.7.7.7.인 것으로 보아 피터스의 작품과 같습니다.

참고로, 칼뱅의 프랑스어 시편가(Genevan Psalter, 1545)는 Du fons de ma pensée, au fond de mes ennuys로 7.6.7.6.D.이고, 영어로 된 스코틀랜드 시편가(The Scottish Psalter, 1650)는 Lord, from the depths to thee I cried로 8.6.8.6.D.입니다. 루터나 칼뱅, 그 어느 것도 우리 찬송 곡조 ST. PETERSBURG엔 맞지 않는 운율입니다.

둘째, 루터의 코랄 Aus tiefer Not와 피터스의 ‘내가 깊은 곳에서’의 영시 첫 줄과 시어(詩語)가 다릅니다. 찬송가 하단 좌측에 표기된 영어 첫줄 가사를 보면 ‘새찬송가’, ‘개편찬송가’, ‘통일찬송가’엔 Out of the deaths have I cried이고, ‘21C 찬송가’와 ‘한영찬송가’엔 From the death, O Lord, I cry입니다. ‘내가 깊은 곳에서’가 루터의 시 Aus tiefer Not를 영역한 것이라면 왜 같은 영역을 사용하는 외국의 찬송가가 한 편도 없을까요? 피터스가 루터의 코랄 Aus tiefer Not를 영역하거나 한역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From the deaths, O Lord, I cry는 ‘한영찬송가’ 편찬 시 우리말 가사를 원요한(J.Underwood) 목사가 영역한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자료(Hymnary.org)엔 이 시를 작자미상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셋째, 다른 나라 찬송가에 실린 루터의 코랄 Aus tiefer Not는 대부분 곡명 AUS TIEFER NOT 멜로디로 불립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피터스의 ‘내가 깊은 곳에서’를 여러 곡조로 불렀습니다. ‘찬셩시’(1898)엔 ‘만세 반석 열리니’(494장)의 곡명 ROCK OF AGES, ‘찬숑가’(1909년)엔 REPOSE, ‘신편찬송가’(1947)엔 WELLS, 지금은 ST.PETERSBURG로 불립니다(WELLS는 ST.PETERSBURG와 같은 곡).

시편 130편을 보르티안스키의 곡명 ST.PETERSBURG으로 노래하는 찬송가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넷째, 루터의 코랄 Aus tiefer Not는 5절 7행 시이고, 피터스의 찬송 시 ‘내가 깊은 곳에서’는 4절 6행 시입니다.

다섯째, 루터의 코랄 Aus tiefer Not는 라틴어 성경(Vulgate) 시편 130편을 의역한 창작 시이고, 피터스의 찬송 시 ‘내가 깊은 곳에서’는 ‘시편촬요’ 시편 130편을 기초로 만든 운율 시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불러 아뢰었삽나이다. 주여 내 목소리를 들으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와 “내가 깊은 곳에서 주를 불러 아뢰되 주여 내 목소리를 듣기를 바라옵고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와 비교해보면 거울 같지 않습니까. ‘시편촬요’와 피터스의 시는 1절만 보아도 42음절 중 34음절이 똑같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루터의 코랄과 피터스의 찬송은 전혀 다른 찬송 시입니다. 운율과 절수와 행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시어도 전혀 다릅니다. 루터의 Aus tiefer Not가 훌륭한 시임에 틀림이 없지만, 21C 찬송가에 수록된 ‘내가 깊은 곳에서’의 저자는 피터스입니다.

필자가 이끄는 교회음악아카데미는 지난 2019년, 오후 3시 피터스 목사가 세운 서울 세곡교회에서 ‘알렉산더 피터스의 시편촬요와 운율 시편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며, 그 자리에서 ‘찬셩시’에 실린 피터스 목사의 찬송 17편 전곡을 함께 불렀습니다.

김명엽(교회음악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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