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무슬림은 구원의 대상

유해석 교수
유해석 교수

칼빈은 무슬림이 구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는 신명기 23장 7절을 인용하여 “너는 에돔 사람(로마 가톨릭)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너의 형제니라 애굽 사람(무슬림)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으니라” 할례 받지 못한 에돔 족속 안에 이스라엘의 형제들이 있는 것같이 세례 받지 못한 무슬림이 아직은 우리의 형제는 아니지만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모세는 만약 에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들어오도록 기꺼이 자신을 드린다면 그들은 용납되어질 것이며.... 그들 모두가 그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할례 받도록 자신을 드린 사람은 이미 용납된 자이기 때문이다. ... 개종가능하고 세례 받는 것이 가능한 무슬림들은 할례 받았거나 개종 가능한 애굽인들보다 더 나았고 지금도 더 낫다. ... 애굽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 역시 도 교회 안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 였기 때문이다. ... 기근의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곳에서 피난처를 가졌고, 거기서 구원받았다(창 41:1- 출 1:7)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모세에게 하신 특별한 언급 때문이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사야 19장 21-25절 주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경의 참 삼위일체 하나님 앞으로 많은 무슬림이 돌아오도록 예정하셨음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교훈을 받아들이고 따른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예언하고 있으며 여호와께서 애굽인들에게 은혜로우시며 그들과 화해하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애굽인들은 개종하자마자 즉시 용서받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 2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하심을 온 세계로 퍼뜨리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특히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가장 뿌리 깊은 원수였으며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하나님 나라에서 더 멀리 떨어진 것같이 보였던 두 민족(앗수르와 애굽)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언을 통하여 교회의 치명적인 원수를 용서하시고 그의 자녀 삼으실 만큼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기꺼이 모든 민족을 부르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 부르심에 완고한 이슬람이 포함되어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24절에 애굽인들과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축복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끝으로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사야는 이 축복이 애굽인들과 앗수르인들에게도 나누어질 것이라고 말하며, 또한 이 두 민족의 이름 아래에 나머지 모든 민족을 포함시키시는 것이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여호와의 날에 이슬람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와 그와 연합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선지자는 주께서는 자비로우셔서 애굽인에 대하여 화해를 이루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동시 에 그들이 돌이키자마자 용서받을 것을 보이신다. ... 애굽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취하시는 방식 에서 전 세계를 향한 모범을 볼 수 있다 만약에 주께서 교회에 치명적인 대적에 대해서조차도 그토 록 자비로우셔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그의 자녀들로 받아들이신다면, 다른 민족이야 오죽하겠는가? 예언이야말로 모든 민족에 대한 소명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칼빈의 견해는 무슬림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애굽의 무슬림들과 이스라엘의 유대주의자들과 신앗시리아인 이라크와 이란의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에게 나아오게 되고 그의 교회에 가담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칼빈은 1547년에 익명의 감찰관이 제기한 “유대인이나 무슬림이 세례를 요청하면 거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전에 유대인이었던 사람이나 무슬림이었던 사람이 마음속으로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고자 했을 때, 진정으로 그들이 세례를 요청하는 것은 이미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기독교인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답변하였다. 칼빈은 익명의 감찰관의 질문을 어리석게 생각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독교 신앙은 이미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고 그들 또한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으로서 통일이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칼빈은 아랍인들이 자신을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상징적이고 모든 무슬림들을 그의 영적인 후손들이고 주장하는 것도 상징적으로 보았다. 결과적으로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세례가 할례를 대체했기 때문에(골 2:11-13: 마 28:19) 무슬림들도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칼빈은 이슬람을 교리적인 차원에서 예리하게 비판하였지만, 무슬림들이 도덕적으로 질이 낮다고 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슬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소재는 교리적 차이였지, 윤리적 도덕적 행위가 아니었다. 물론 칼빈은 이슬람을 단지 유럽 기독교에 대한 위협으로만 아니라 전 세계의 잠재적인 기독교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다. 하지만 칼빈은 이러한 교리적, 신학적 잘못을 단호히 배격하고 비판하면서도 무슬림들이 바른 진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촉구하였고 기대하였다. 출애굽 할 때 어떤 이집트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처럼(출 12:33-51, 레 24:10) 복음을 받아드린 무슬림들은 교회에 들어올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많은 무슬림들이 그런 방식으로 신구약 성경의 참되신 삼위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정확히 예정하였다고 믿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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