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둘째, 흙의 존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오늘 본문의 이 구절은 가장 하찮은 존재를 가장 존귀한 존재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 줌 흙으로 만든 작품을 다이아몬드보다 더 값비싸고 귀한 작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창조를 통해 인간의 태생이 무엇인가를 기억하게 함으로써 교만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대표적인 청교도 성경 주석가인 ‘메튜 헨리’는 이것을 두고 하나님이 금이나 진주나 다이아몬드가 아닌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은 사람의 비천한 태생을 강조하신 것이라 해석했습니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만물의 지배권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존재이지만 그 본질은 흙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은 것입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여 드디어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결혼할 짝을 데리고 와서 부모에게 선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며느리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하면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때 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엄마도 가난한 집안 출신이고 학교도 다니지 못한 무학이면서 반대만 하니 나는 이 집을 떠나겠다고 했다 합니다. 훗날 아들 며느리가 손주를 낳고 잘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부모는 아들 내외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크게 후회하고 뉘우쳤다고 합니다.

인간은 지난 과거를 잘 잊어버립니다. 특히 자수성가한 사람일수록 과거의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오히려 더 핍박한다고 합니다. 자수성가한 사장님일수록 직원들의 임금을 더 짜게 줍니다(캡틴 신드롬). 자신이 직원으로 있을 땐 임금을 짜게 주는 사장을 그렇게 욕하고 비난했으면서 정작 자신은 그때를 잊어버리고 갑질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새 아들을 다 키워서 장가보내고 자신이 시어머니가 되자 자신의 며느리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며느리를 더 핍박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얼마나 인간이 모순덩어리입니까? 이것을 두고 요즘 말로 ‘내로남불’이라 합니다. 지위에 따라, 입장에 따라 원칙이 바뀌고 말이 달라지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 속담에 ‘과부 심정 과부가 안다’고 했는데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억울하게 당했으나 너만은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는 섬김과 헌신과 배려를 하는 아름다운 사람을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잊으면 아니 됩니다.

제목을 ‘흙의 영광’으로 한 것은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흙으로 지음을 받은 하찮은 존재가 만물의 영장이 되었습니까? 그 비결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생기’란 히브리어로 ‘루아흐’(ראה)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숨’을 뜻하고 구약 성경에서 ‘영’(spirit)으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특히 ‘루아흐’라는 단어는 숨을 내쉬지 않고는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루아흐는 ‘숨을 내쉬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이 단어의 뜻을 이해하면 창세기 1장 2절 끝부분에 있는 “하나님의 영(루아흐)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느니라”는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숨을 내쉬자 물결이 일어나고 파도가 일어났다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하나님이 숨을 내쉬자 바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흙에 불과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시자 인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인간이 ‘생령’(네페쉬 하야, living being)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동물들에게도 사용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동물들은 영원토록 자신에게 주어진 루아흐의 근원이 누구인지를 모르지만 인간은 이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도록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능력과 기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능력과 기능들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루아흐’는 모든 움직임의 근거이며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이 우주 만물이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움직이고 기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루아흐가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루아흐는 하나님의 엔진입니다. 이 엔진은 영원토록 멈추지 않습니다. 태양의 불꽃도 하나님의 루아흐에 의해 점화되고 영원히 타고 타도 소멸하지 않습니다. 이 비밀을 알게 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이 단어는 라틴어로 ‘스피리투스’(spiritus)로 파생되면서 ‘열망하고, 협력하고, 땀을 흘리는 모습’으로 발전했습니다. 즉, 사람이 무엇을 열망할 때 숨을 크게 내쉽니다. 축구 시합을 할 때 같은 편끼리 머리를 맞대고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선수들은 이때 마음속으로 협력과 단결을 생각하며 승리를 꿈꿉니다. 기절을 한 사람에게 숨을 불어넣으면 그 사람에게 숨이 돌아옵니다. 우리가 숨을 거둘 때 마지막으로 숨을 크게 내뱉습니다. 그러므로 ‘루아흐’ 즉 ‘숨’은 곧 ‘생명이요 활력이요 열망이요 협력이요 희망의 징조’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숨’과 ‘영’에 해당하는 단어는 ‘프뉴마’(πνευμα)입니다. 이 단어 역시 ‘숨을 쉰다’ 생동감이 있다‘ 살아 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바울 사도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롬 8:6)고 했습니다. 이때 영은 ‘프뉴마’입니다. 이 죽었던 인간의 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소생하게 된 것입니다. (계속)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최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