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수 교수
가진수 교수

예배 찬양을 잘 인도하기 위해서는 예배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예배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성경적, 신학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예배에 대한 이해가 없이 찬양을 인도할 경우 가장 취약한 점은 곡을 선택하는 데 있다. 선곡할 때 예배에 이 곡이 왜 필요한지, 예배의 다른 요소들, 즉 설교나 기도, 성찬 등과의 밀접하고도 유기적인 흐름이 되어야 하는데, 단순히 요즘 ‘핫하다’는 이유로 또는 음정과 느낌, 감정만으로 찬양을 선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배와 찬양의 목적을 모르고서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부르고, 더 나아가 인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배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내러티브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온전히 가득차야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높여져야한다. 찬양을 통해, 말씀과 성찬 속에서, 예배의 마침까지, 예배의 모든 과정 속에서 빈틈없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경배하는 것이다.

찬양의 기본적인 이해와 더불어 곡을 고르는 작업은 정말 모든 것을 짜내는 작업이다. 한 곡을 고르기 위해 일주일 내내 수십 번 불러보는 것은 보통의 일이다. 주일 예배 곡을 토요일까지도 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상당히 모든 것을 쏟아놓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보다 중요한 것은 찬양의 목적을 명확히 아는 일이다. 찬양의 목적을 보다 선명히 하는 작업은 골방에서 개인이 부르는 찬양이 아닌 이상 매우 성경적이며, 공적이며 객관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수직적 찬양’과 ‘수평적 찬양’의 개념의 이해를 통해 예배에 참석한 예배자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좀 더 명확하게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 예배 공동체를 돕게 된다. 예배는 인도자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데, 그 이유는 선곡 때문이며, 선곡은 예배 찬양의 첫 단추다. 그러므로 예배의 찬양 인도자는 무한한 책임감을 가져야한다. 모임의 규모가 작든 크든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와 찬양은 모두 같다.

찬양을 선곡할 때 곡의 성격과 관점이 중요한데, 찬양의 속성이 대상과 목적에 따라 수직적(Vertical)인가, 수평적(Horizontal)인가를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직적 찬양(Vertical Worship)은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예배자인 우리들의 수직적 관계를 함축하는 찬양이다.

“거룩하신 주님(거룩 거룩 거룩 만군의 주여)” “존귀하신 주” “위대하신 주(빛나는 왕의 왕)” 등의 찬양은 ‘수직적 찬양’으로 하나님의 속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엄’과 ‘존귀하심’ 등을 찬양하고 있다. “거룩하신 주님(You Are A Holy God)”의 찬양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거룩 거룩 거룩 만군의 주여, 거룩 거룩 거룩 만군의 주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 거룩하신 주

존귀하신 예수 하나님 어린 양, 존귀하신 예수 하나님 어린 양
온 세상 죄를 구속하셨네 온 세상 죄를 구속하셨네
온 세상 죄를 구속하셨네 어린 양 예수

“거룩 거룩 거룩”과 “존귀하신 예수” “하나님 어린 양”의 고백이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구속의 내러티브를 명확하게 나타내준다. 하나님의 존전 앞에 예배자인 우리들이 “거룩 거룩 거룩”으로 나아가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하나님께서 예배의 자리에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는 감사함으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로 화답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이사야 6장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예배자인 우리들이 어떻게 나아가야하는 지 명확하게 말씀해주고 있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사 6:1-3)

역시 요한계시록 4장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나아가야하는지 예배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계 4:2-9)

우리는 “거룩하다”가 3번 반복될 때에의 히브리 언어의 엄청난 강조와 경외심을 기억해야한다. 한국 찬양으로 김국인의 “주께서 높은 보좌에”는 주일예배와 같은 공예배에 처음 찬양으로 매우 적합하고 성경적이다. 최근 유튜브 영상으로 예배를 검색한 결과, 온누리교회(서빙고) 예배에서 이 찬양을 선곡해 주일에 찬양하고 있는데, 성경적이며 많은 교회가 참조할 필요가 있다.

주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도다
천사들이 모여서 서로 창화하여 외치니 그 소리는 성전에 가득하도다
거룩 거룩 하다 만군의 여호와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시도다

찬송가에는 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이 모든 찬송가 중 주일예배 첫 찬양으로 매우 성경적이고 적합하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이른 아침 우리 주를 찬송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자비하신 주님 성 삼위일체 우리 주로다

예배

현대적인 경배와 찬양 곡으로는 크리스 탐린(Chris Tomlin)이 불러 많은 사랑을 받았던 “위대하신 주(How Great Is Our God)”이 있다. 가사의 내용이 모두 하나님을 대상으로 찬양하고 있고 찬양의 초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맞추어져 있다.

빛나는 왕의 왕 영광의 주님 온 땅 기뻐하라 온 땅 기뻐하라
광채의 옷 입고 어두움 물리쳐 저 원수는 떠네 저 원수는 떠네
위대하신 주 찬양해 위대하신 주 모두 알게 되리라 위대하신 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다 찬양해 위대하신 주

‘왕이신 하나님’과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찬양의 모든 가사와 내용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찬양하고 있다. 수직적 찬양들은 예배에 모인 예배자들이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의 찬양은 반드시 수직적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존전에 모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계시하시는 말씀을 듣고 결단하고 고백하는 모든 예배의 행위가 주일 예배에 이루어지며, 하나님께만 집중되는 예배가 되기 위해 찬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에 부족함과 빈틈이 없어야한다.

반면 기도회의 찬양들은 수평적 찬양(Horizontal Worship)들이 사용될 때 많은 효과가 있다. 기도회의 모임 성격상 개인적인 고백과 간증, 삶의 감사와 평안 등 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과 표현이 찬양의 주제가 된다. 수평적 찬양들을 통해 입으로 시인하게 되고 신앙의 강건함을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한마디로 찬양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고백, 즉 곡조 있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선곡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수평적 찬양들이 주일 예배에 사용될 때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희미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고백과 간증들이 혹여 개인적인 감정만 드러나게 되고 가장 큰 목적인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영원하심을 노래하고 찬양하는 부분을 희석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일은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내 생각과 감정으로 축소시키는 행위다.

대부분의 미국 교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찬양의 선곡에 있어서 성경적인 토대가 이루어져 주일 예배에서 대부분 수직적인 찬양을 부른다. 개인적인 고백과 간증으로 된 CCM은 예배에서 부르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음악적으로도 오래전에 세속적인 장르로 구분되었다. 예배에서의 찬양은 ‘워십(Worship)’으로 통칭한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경우 대부분 수직적 찬양과 수평적 찬양들을 혼합해 사용한다. 찬양의 잘못된 선곡으로 인해 예배를 너무 가볍게 만들고 잡념이 들게 하며, 무엇보다도 예배에 참석한 예배자들을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도록 한다. 심지어 주일 예배에 교제에 관한 찬양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주제의 CCM 등을 선곡해 부르는 경우도 많다.

어느 교회 주일 예배에서는 모두 일어나게 해 “이렇게 좋은 날”을 서로 바라보며 부르게 했던 기억도 있다. 주일에 서로 인사하게 하려는 의도는 잘 알겠지만, 이 찬양의 가사와 목적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자로서의 영적 마음을 담기는 어렵다.

이렇게 좋은 날 아름다운 우리의 만남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득한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만남을 기뻐해요

때론 슬플 때도 있고 견디기 힘들 때도 있겠지만
우리 예수님 당신과 함께 늘 동행하셔요

최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우리의 고백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곡이다. 하지만 이 곡은 주일 공예배에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아야한다. 이 곡의 가사에 “거룩 거룩 거룩”은 물론, 어디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내러티브와 경배와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주일 공예배가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찬양이 되어야하는 이유는 성경적일뿐 아니라 예배자들에게 매우 객관적이고 공통의 목적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배자들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전, 어떤 사람은 주중 매우 감사한 일이 있어서 발걸음이 가볍고 기쁘게 교회에 오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은 매우 슬픈 일을 당해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이 어두울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는데 수평적이고 주관적인 찬양들이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똑같이 하나님께 향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무거운 사람이 오자마자 기쁘게 서로 쳐다보면서 웃고 교제해야하는가 또는 기쁜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한 사람이 축 처지고 무거운 찬양을 통해 다시 마음을 다스려야하는가?

그러므로 특히 주일 예배에 경우에는 모두 하나님께만 향할 수 있도록 찬양을 선곡해야한다. 슬픈 마음으로 참석한 예배자든, 기쁜 마음으로 참석한 예배자든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하는 피조물인 예배자일뿐이라는 것을 예배의 찬양 속에서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해야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온전히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불러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b)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주일 한 시간 남짓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시간이다. 그리고 설문에 의하며 한국 전체 크리스천의 약 60%가 주일에 한 시간 단 한번만 예배드린다. 그러므로 찬양 한곡, 한곡의 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담임목사를 비롯해 찬양을 선곡하는 사역자들은 그 책임감을 매우 무겁게 여겨야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가 영적이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예배의 임재를 경험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의 영이 온전히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고 경배해야한다는 당위성을 나타내준다. 모든 것을 ‘은혜’라는 이름으로 대충 넘어가서는 안된다. 찬양의 선곡도 마찬가지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의 잘못된 선곡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과 존귀하심과 우주보다 광활하시고 바다보다 넓고 깊음을 축소시키지 말라.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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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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