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으로 기소된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 인사들이 항소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형의 선고를 유예했던 1심보다 무거운 판결을 받았다. 함께 기소된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15-3부(성언주·원익선·이희준 고법판사)는 21일 국가정보원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 전 장관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제 북송으로 북한 어민들의 권리 행사를 방해했다는 1심의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여기에 북송 과정에 동원된 실무 공무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한 혐의도 추가로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정 전 실장 등이 국가안보와 남북관계, 국민의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업무를 담당한 정부 최고위직 공무원이었다는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이들에게는 다른 공무원보다 법령과 적법절차를 준수할 의무가 높다고 판단했다.
◈“신중한 검토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나포 이틀 만에 북송 결정”
재판부는 북송에 앞서 법적 근거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관계 공무원들의 의견이 있었음에도 의사결정과 집행이 단기간에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법적 근거가 없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관계 공무원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나포된 지 불과 이틀 만에 북송을 결정하고 5일 만에 이를 집행했다”며 “직권을 남용해 대한민국 국민에 해당하는 북한 주민들의 신체의 자유와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고 밝혔다.
또 이를 “북한 주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판단했다. 위법한 결정과 지시에 동원된 하급 공무원들이 정신적 충격을 겪고 법적·도덕적 책임에 직면했으며, 국내에 정착한 탈북 주민들에게도 강제 북송에 대한 두려움을 안겼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이례적인 상황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양형에 참작했다. 과거 형사처벌 전력이 거의 없고 고령인 점 등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노영민은 공모 증명 부족… 1심 유죄 판단 뒤집혀
노 전 실장에 대해서는 다른 피고인들과 범행을 공모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징역 6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던 1심 판결과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노 전 실장이 다른 이들과 순차적·암묵적으로 직권남용 범행을 공모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동해에서 나포된 북한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북한으로 송환되면서 불거졌다. 당시 정부는 두 사람이 동료 선원 등 16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는 이유로 나포 닷새 만에 북송했다.
정 전 실장 등은 북송 과정에서 어민들의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내 법령과 절차에 따라 재판받을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한 혐의 등으로 2023년 2월 기소됐다.
◈1심은 위법성 인정하면서 선고유예… 양측 항소로 재판 이어져
1심도 두 어민이 여러 차례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로 송환한 행위를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어민들을 체포·감금한 혐의와 중대범죄자백보고서 관련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 등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어민들의 범죄가 흉악하고 잔인하다는 점과 남북 분단에 따른 제도적 공백 등을 참작했다. 이에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에게는 각각 징역 10개월, 노 전 실장과 김 전 장관에게는 각각 징역 6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이후 피고인들과 검찰 측이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하면서 항소심이 진행됐다. 공소유지 측은 지난 6월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에게 각각 징역 5년, 노 전 실장에게 징역 4년, 김 전 장관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결심공판 전후로 항소심 재판부에 이들의 무죄를 탄원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