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성숙의 방향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무조건적 수용 속에서 존재의 안정을 얻는 동시에 법과 책임 속에서 자기 삶을 형성해 가는 것. 품어 주는 사랑과 일으켜 세우는 요구, 위로와 훈련, 은총과 책임을 함께 통합하는 것. 그것이 성숙한 신앙이다. 사랑은 안식처이면서 길이고, 품이면서 부르심이다. 나는 그날 통일호 안에서 두 사랑을 한꺼번에 만났다. 정의로운 아버지의 사랑과 아낌없이 내어 주는 어머니의 사랑. 지상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천상의 하나님을 본 셈이다. 그렇다. 그분은 인간의 죄를 참지 못하고 심판하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잃어버린 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용서와 무한한 사랑이야말로 최종심급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마지막 고백이다. 엔도의 말로는 ‘부-모 하나님’, 나의 언어로는 ‘아빠 하나님, 엄마 하나님’. 이것이 제1계명의 하나님에 이어 내가 만난 두 번째 하나님이다.
김기현 -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교인의 귤농장을 방문하면 귤나무를 바라보며 기도한다. 귤나무가 제때 꽃피고 병충해를 이겨내어 맛 좋은 열매를 맺도록. 그리고 저 귤을 먹는 소비자는 기쁘고 귤을 재배하는 교인은 수입이 늘어 수고하는 보람을 누리기를. 블루베리농장에 가면 블루베리나무를 붙잡고 기도하고, 단호박밭에 가면 호박꽃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추수 때가 된 보리밭을 지날 때면 수확할 때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콤바인이 고장 났다고 하면 제때 고쳐 작업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평생 해본 적이 없는 기도를 매일같이 배우고 드리다보면 일상이 기도 언어로 가득 채워진다.
주성학 - 일상의 틈새로 하늘을 보다
이사야가 본격적으로 선지자 사역을 시작하게 되는 결정적 출발점이 바로 웃시야 왕의 죽음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것이 우연인가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깊은 신앙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어떤 왕이었습니까? 남유다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52년을 통치했던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남유다 백성에게 든든한 인간적 의지처가 퇴어 주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웃시야 왕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하다'라는 생각이 백성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웃시야가 죽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의지하던 산이 무너진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고서 이사이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사6:1).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요? 인간적인 의지처가 사라졌을 때, 우리가 의지하던 사람이 무너지고, 우리가 붙들던 권력이 떠나가고, 우리가 자랑하던 환경이 사라질 때 비로소 우리는 고개를 들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양옥규 - 맥락이 잡히는 성경 개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