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크 크리치 목사의 기고글인 "미국은 기독교 국가였던 적이 없었을까? 한 목사의 주장과 그 반박"Was America ever a Christian nation? One pastor says no — here's why he's wrong) 7월 1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마크 H. 크리치 목사(Rev. Mark H. Creech)는 노스캐롤라이나 기독교행동연맹(Christian Action League of North Carolina, Inc.)의 사무총장이다. 그는 이 직책을 맡기 전에 20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다섯 곳의 남침례교회와 뉴욕주 북부에서 한 곳의 독립침례교회를 섬겼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무고한 생명을 고의적이고 부당하게 빼앗는 행위를 금지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계명이 다루는 악이 실제로 피를 흘리는 순간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셨다.
분노와 경멸, 증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우리 가운데서 없애버리고 싶어 하는 욕망은 실제 살인과 동일한 행위는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파괴적 도덕의 흐름에 놓여 있다(마 5:21~22). 이러한 원칙은 오늘날 미국의 종교 자유를 둘러싼 한 가지 불편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정부의 공권력이 단순히 사역을 합리적으로 규제하는 수준을 넘어, 조사와 막대한 법적 비용, 재정적 제재, 사실상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각종 제한을 통해 특정 사역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면 그리스도인은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기가 된 법과 행정력
종교 자유 옹호자인 안드레아 피치오티-베이어(Andrea Picciotti-Bayer)는 최근 「워싱턴 이그재미너(Washington Examiner)」 기고문에서 민주당이 주도하는 일부 주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 가지 흐름을 지적했다.
소환장과 소송, 소비자보호법, 막대한 법적 대응 비용 등을 활용해 기독교 사역 단체에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다. 그가 제시한 사례 가운데 하나는 뉴저지의 기독교 낙태 반대(pro-life) 임신 지원 단체인 ‘퍼스트 초이스 여성 리소스 센터(First Choice Women’s Resource Centers)’다.
해당 기고문에 따르면 뉴저지주 법무장관실은 이 단체에 수년간의 내부 문서와 후원자 관련 정보, 기타 기록 등을 요구하는 광범위한 행정 소환장을 발부했다.
퍼스트 초이스 측은 이러한 요구가 자신들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분쟁은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대법원은 해당 단체가 주 정부의 강제집행 절차가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연방법원에서 헌법적 구제를 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조사 자체나 소환장 발부가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중요한 문제를 보여준다. 종교 단체는 위법행위가 최종적으로 인정되기 전에도 조사와 소송 과정 자체로 상당한 부담과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법적 방어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수많은 자료를 제출하고, 후원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며, 이어지는 대중적 비판에 대응하는 과정은 본래 사역에 사용될 시간과 돈, 에너지를 고갈시킬 수 있다.
결국 단체가 승소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사실상 상당한 제재처럼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공정한 규제인가, 교묘한 강압인가
물론 정부에는 시민을 보호해야 할 정당한 책임이 있다. 종교 단체라고 해서 양심이나 신앙의 자유를 내세워 사기를 저지르거나, 학대를 은폐하거나, 보호해야 할 사람을 방치하거나, 일반적인 법질서를 무시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정부와의 모든 법적 충돌을 곧바로 ‘박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는 국가가 호의로 허락해 주는 특혜도 아니다.
정부가 일정한 행동을 합리적으로 규제할 수는 있지만, 특정 종교기관에만 선택적으로 부담을 지우거나, 그들의 신념 자체를 사회적 결격 사유처럼 취급하거나, 공적인 활동에 참여하려면 신념을 포기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국가가 중립적인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특정 종교적 목소리를 억누르기 위해 공권력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비슷한 성격의 세속 단체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특정 종교 단체만 집중적으로 조사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공무원들이 충분한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공개적으로 단체를 비난하거나, 법적 요구가 사실상 “신념을 포기하든지 활동을 중단하라”는 선택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규제를 넘어 강압의 성격을 띠게 된다.
‘제거하려는 충동’의 문제
국가 권력 행사의 목적이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가 특정 사역을 무너뜨리고, 그 목소리를 침묵시키며, 공공 영역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데 있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경우 적어도 유추적인 의미에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금지하는 파괴적 정신과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국가가 실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용납하지 않는 존재를 공적 공간에서 제거하려는 충동에 관한 문제다. 이 비유는 분명한 한계 안에서 사용해야 한다.
소환장은 사형 선고가 아니다. 재정적 손실은 살인이 아니다. 한 기관이 문을 닫는 것과 한 사람의 생명이 끝나는 것을 동일하게 취급해서도 안 된다. 문제는 그 배후에 작동하는 의도와 방향성이다.
상대의 존재를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그 목소리를 없애고, 활동할 수 없도록 만들며, 공적인 공간에서 밀어내려는 충동 말이다. 더구나 사역 단체는 단순한 법인이나 조직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특정 종교적 사명으로 연결된 직원과 자원봉사자, 후원자, 그리고 그들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한 사역을 무너뜨리는 일은 기관 하나의 소멸에 그치지 않고, 그 기관을 통해 도움을 받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의 ‘피 흘림 없는 순교’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느니 차라리 재정적 손실과 직업적 배제, 명예 훼손, 심지어 사역의 폐쇄까지 감수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이 겪는 고난은 신앙을 이유로 육체적 죽음을 맞이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순교와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부정하기보다 손해와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태도에는 순교적 증언과 닮은 면이 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때때로 이와 유사한 고난을 ‘백색 순교(white martyrdom)’라는 표현으로 설명해 왔다. 다만 오늘날에는 이 표현이 인종적 의미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 흘림 없는 순교(bloodless martyrdom)’라는 표현이 보다 직접적일 수 있다.
이 말은 육체적 죽음에 이르지는 않지만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실제적인 희생과 용기, 인내를 요구하는 증언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적대적인 힘이 한 사역의 생명력을 약화시키거나, 자신들이 용납하지 않는 공적 신앙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려 할 때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는 고난을 뜻한다.
모든 법적 분쟁이 박해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기독교 단체가 연루된 모든 법적 분쟁을 곧바로 종교 박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정부의 조사가 정당한 법 집행일 수도 있고, 실제 위법행위를 확인하기 위한 합리적인 절차일 수도 있다.
또 여러 주정부가 기독교 단체를 조직적으로 겨냥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구체적인 사건마다 충분한 증거를 통해 입증돼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 관리들이 반복적으로 특정 종교 단체를 선택적으로 조사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법적 절차를 동원하며, 신념을 포기하지 않으면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도록 강압적인 규제를 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러한 패턴이 확인된다면 이는 단순한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남용이자 실질적인 종교 자유 침해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신의 신앙을 저버리느니 손실을 감수하기로 선택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고난은 현대적인 의미의 ‘피 흘림 없는 순교’가 될 수 있다.
그것은 피를 흘리는 죽음은 아닐지라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실제적인 대가를 감당하는 증언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순교의 핵심은 단지 죽음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진리를 부정하라는 압력 앞에서도 끝까지 그리스도께 충실하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