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인간은 집 안에 홀로 머물며 자기 삶의 경계를 긋고 안주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관계와 영향력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야 하는 소명자들입니다. 개인은 가족이 되고, 가족은 공동체가 되며, 그 공동체는 온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라고 하신 명령의 핵심입니다. 인간이 상상으로 빚어낸 세상의 신들은 인간을 자신의 욕망에만 집중하는 존재로 만들 뿐, 관계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온전한 관계를 위해 인간을 만드시고 끝까지 함께하십니다. 낯설게 느껴질 만큼 관계에 진심이신 이 하나님은, 그 관계를 이어 가고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거절당하실 때 슬퍼하시고 노하시며, 질투하시고 오래 참으시다가 마침내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내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처음 뜻, 곧 온전한 사랑과 존중의 관계를 되찾기 위해 내미신 가장 절박하고도 확고한 화해의 손길입니다.
유재성 – 크리스투스
전도는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특히 신약성경은 전도로 시작하여 전도로 끝나는 전도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님의 성육신(聖肉身) 자체가 바로 복음전도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마가는 그의 복음서 서두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함으로(1:1), 예수님의 생애를 복음의 시작으로 서술했다. 그리고 그분의 재림(再酯)은 전도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마태는 어떻게 세상의 종말과 복음의 편만한 전파를 연결시킬 수 있었겠는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중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그러므로 예수님의 초림(初臨)과 재림 사이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핵심적인 사명은 전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성철 - 예수님의 복음 전도
우리는 왜 서로의 말을 듣지 못하는가? 사람들은 말하는 법은 빨리 배운다. 그러나 듣는 법은 평생을 살아도 여전히 서툴다. 우리는 누 군가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이미 속으로는 대답을 준비하고, 이해하기보다 판단하고, 공감하기보다 해결하려 든다. 그 사이 마음은 자주 놓쳐진다. 성경 속 예수님은 늘 바쁜 길 위에 계셨지만 한 번도 서두르신 적이 없었다. 그분은 부르짖는 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 으셨고, 말보다 마음을 먼저 들으셨다. 눈먼 소경 바디메오의 외침 앞에서 예수님이 걸음을 멈추신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말 잘하는 사람이 되는 법이 아니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길에 대한 기록이다. 경청은 기술 이 아니라 태도이며, 귀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박성희 - 사랑의 또 다른 이름 경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