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교생 피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사라졌던 케이블 타이가 장윤기의 부친 자택에서 발견되면서 경찰의 초동 수사 부실과 증거 관리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검찰은 해당 물품이 범행 목적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정황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확보 경위와 유출 과정을 수사하고 있다.
광주지검은 8일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 부친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장윤기의 차량에서 발견됐다가 사라졌던 케이블 타이 다발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확보한 케이블 타이는 포장이 뜯기지 않은 상태였으며, 길이 40㎝, 폭 0.5㎝의 검정색 제품으로 파악됐다.
수사기관은 일정 길이 이상의 케이블 타이가 사람의 손목이나 발목을 묶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번에 확보한 케이블 타이가 장윤기의 범행 목적과 계획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차량서 발견됐지만 압수되지 않은 케이블 타이
케이블 타이는 장윤기 검거 직후 그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됐지만, 당시 수사팀은 이를 정식 압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기록 일부에는 케이블 타이 관련 내용이 기재됐지만, 실제 압수 절차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주요 증거물 목록에서는 제외됐다.
당시 수사팀은 장윤기에게 케이블 타이의 용도를 물었고, 장윤기는 집에서 전선을 묶기 위해 구입한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장윤기가 버린 흉기 확보를 우선해야 한다고 판단해 케이블 타이를 차량에 남겨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차량은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장윤기의 부친에게 반환됐다. 장윤기의 부친은 해당 케이블 타이를 자택에 보관하고 있었으며, 별다른 의도 없이 보관해뒀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케이블 타이가 차량에서 사라진 뒤 장윤기 부친 자택에 보관되기까지의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 특히 장윤기의 부친과 당시 수사팀 사이에 부적절한 소통이나 유착이 있었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다만 검찰은 현재까지 확인된 수사팀과 장윤기 부친 간 통화 기록에서 케이블 타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사팀장 긴급체포…경찰 내부 논란 확산
검찰 수사와 별도로 경찰은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광주 광산경찰서 소속 A경감을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A경감은 장윤기 차량 수색 당시 케이블 타이가 촬영된 채증 영상을 뒤늦게 삭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경감이 검찰 기소 이후 케이블 타이가 장윤기의 범행 목적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 증거라는 점을 인식했는지, 이후 실물 확보를 시도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A경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도 이를 청구했다.
A경감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뒤늦게 케이블 타이가 중요 증거라고 판단해 실물만 확보하면 채증 자료와 함께 제출할 수 있다고 봤으며, 증거 누락 경위 보고서 송부를 잠시 보류하자고 했을 뿐 삭제를 지시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장윤기는 올해 어린이날 광주 광산구 한 고등학교 앞 인도에서 귀가하던 여고생을 차량으로 끌고 가려다 흉기로 살해하고, 이를 제지하려던 남고생을 다치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장윤기는 첫 재판에서 공소사실을 대체로 인정했지만, 성범죄 목적 여부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잇단 경찰 비위 논란에 신뢰도 흔들
장윤기 사건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은 최근 이어진 경찰 내부 비위 의혹과 맞물리며 경찰 조직 전반의 신뢰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수사정보 유출 의혹과 고위 간부의 공용차 사적 이용 논란 등이 잇따라 제기됐다.
장윤기의 부친인 현직 경찰관은 수사팀으로부터 구속영장 신청 내용과 자취방 현관문 비밀번호 등을 전달받아 아들의 사건과 관련된 핵심 물증 일부를 폐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청은 27명 규모의 광주 광산서 살인사건 관련 진상규명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서울 강남경찰서에서도 한 수사관이 코스닥 상장사 주가조작 사건 피의자에게 수사 정보를 전달한 정황이 드러나 감찰과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권미예 전 성동경찰서장이 관용차를 출퇴근과 개인 일정 등에 사용했다는 의혹으로 대기발령과 징계 절차 대상이 됐다.
전문가들은 일부 사례를 경찰 조직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반복되는 내부 비위를 걸러내지 못한 통제와 감찰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수사정보 유출은 피의자의 증거인멸이나 도주 가능성을 높이고, 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로 평가된다.
보완수사권 폐지 논쟁으로 번진 장윤기 사건
장윤기 사건 수사 논란은 정치권의 보완수사권 폐지 논쟁으로도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건을 근거로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추진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8일 논평에서 장윤기 사건이 견제 장치 없는 경찰 권력의 문제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사팀이 장윤기 부친에게 사건 관련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녹취록을 언급하며, 조직적 은폐 의혹의 정황이라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핵심 증거가 사라지고 DNA 감정 보고서가 송치 과정에서 누락됐으며, 수사팀장까지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체포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사실이 검찰 보완수사를 통해 드러났다며, 보완수사권은 경찰 권력의 독주를 막는 안전장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의 조직적 은폐 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진행하고 관련자들에게 법과 원칙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장윤기 사건은 초동 수사의 적절성과 증거 관리 문제를 넘어 경찰 내부 통제, 수사정보 관리, 형사사법 체계의 견제 장치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사라졌던 케이블 타이의 확보 경위와 수사팀의 대응, 장윤기 부친과 경찰 수사팀 간 관계가 향후 수사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