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17–19절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깊이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아간 믿음이었다. 그는 자기 인생의 안전한 근거를 붙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다. 믿음은 모든 길이 보일 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말씀하신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바로 그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바울은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믿음의 본질을 드러낸다. 믿음은 인간의 가능성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위에 세워진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은 가능한 것을 계산하고, 보이는 현실을 판단한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다. 믿음은 불가능 앞에서 멈추지 않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상황은 인간적으로 아무 소망이 없었다. 아브라함은 백 세가 가까웠고, 사라의 태는 이미 죽은 것과 같았다. 생명이 나올 수 없는 자리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죽은 것 같은 자리에서 이삭을 주셨다. 사라는 단산하였으나 믿음으로 잉태하는 힘을 얻었고,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부터 하늘의 별과 해변의 모래와 같은 후손이 나오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일이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오래전 한 가정에 일어난 기적이 아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 안에서 부활 신앙의 그림자를 본다. 죽은 것 같은 몸에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은, 장차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실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부활의 능력을 앞서 바라본 믿음이었다. 그가 믿은 하나님은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으시고, 없는 것 가운데서도 새 생명을 부르시는 분이셨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온다. 우리 삶에도 바랄 수 없는 상황이 있다. 길이 막히고, 가능성이 사라지고,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도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았다. 그는 현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그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믿었다. 참된 믿음은 현실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붙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으로 우리 안에 확정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은 인간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서도 새 길을 여신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은 끝난 것 같은 자리에서도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신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음을 신뢰하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현실의 불가능인가, 하나님의 약속인가. 인간의 계산인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인가.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막연한 긍정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시다. 그분 안에서는 절망이 끝이 아니며, 불가능이 마지막 말이 아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