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은 질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신앙을 지키는 핵심 원리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답하지 못한 질문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Unanswered questions, unshaken faith)를 5월 4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필자가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 한 사역으로 참여했던 일 가운데 하나는 GotQuestions.org에서 글을 쓰고, 신앙 관련 질문에 답하는 ‘편지 답변자’로 섬기는 일이었다. 이곳은 영적인 질문들에 대해 성경적인 답을 제공하는 온라인 사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필자는 변증학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었기에, 기독교 신앙이 왜 참된지에 대해 설명하는 글들과 신앙을 옹호하는 여러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개별적으로 들어오는 질문들에 답하기 시작하면서, 일정한 반복 패턴을 발견하게 되었다.

신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성도들이 자신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접하게 되는 경우였다. 어떤 질문은 지적인 영역에 속해 있었다. 예를 들어, 왜 악이 존재하는가, 진화론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세상을 문자 그대로 6일 만에 창조하셨는가와 같은 문제들이다. 또 다른 질문들은 감정적인 영역에서 나왔다. “왜 하나님은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도록 허락하셨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들이 점점 쌓이기 시작하면, 단순히 몇 가지를 의심하는 수준을 넘어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들은 고백한다. “이제 신앙을 완전히 포기하기 직전입니다.” 그러면서 도움을 요청해 왔다.

이는 필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필자 역시 몇 번 그런 방향으로 흔들린 적이 있었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의 끈을 던질 수 있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 도움에 감사를 표현했다. 이제 그때 나누었던 내용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신앙을 생각하는 것과 의심하는 것은 다르다

기독교 신앙에 대해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속에 맴도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답이 없는 질문은 신앙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은, 이런 질문들이 쌓여 신앙 자체를 의심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변증학자 윌리엄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는 그의 책 『Hard Questions, Real Answers』에서 ‘의심’과 ‘깊이 생각하는 것’을 이렇게 구분한다: “내가 위튼 대학에 다닐 때, 학생들 사이에는 의심이 미덕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신앙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지적으로 부족하거나 순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혼란스러운 생각이다. 성경에서 의심은 결코 미덕이 아니라 영적 삶에 해로운 것으로 묘사된다. 의심은 결코 세워주지 않고 무너뜨린다. 학생들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신앙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신앙을 의심하는 것을 혼동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둘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답이 없는 질문은 어떤 학문에도 존재한다. 과학자들 역시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서 해결되지 않은 질문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의 학문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을 붙들어주는 기초 원리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앙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필자는 신앙이 흔들리고 있다고 호소하던 이들에게 ‘핵심 교리’와 ‘비핵심 교리’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핵심 교리는 신앙의 토대이며, 이것이 무너지면 신앙 자체가 무너진다. 반면 비핵심 교리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핵심은 무엇인가? 물론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두 가지 근본적인 토대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첫째,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살았고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이 두 가지가 사실이라면 기독교는 참이며, 그것과 충돌하는 모든 것은 거짓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나이는 얼마인가, 악의 문제는 어떻게 설명되는가와 같은 질문은 어떻게 되는가? 이 질문들에도 분명한 답이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은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마치 과학자가 끊임없이 연구하며 답을 찾아가듯, 신앙도 계속 배우고 성장해 나가면 된다. 그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신앙의 근본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핵심에 집중할 때 흔들림은 줄어든다

최근 한 팟캐스트에서 윌리엄 크레이그는 필자의 지인이자 변증학자인 마이클 리코나(Michael Licona)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리코나 박사는 신학적 스승인 개리 하버마스(Gary Habermas)에게 계속해서 떠오르는 의문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하버마스는 이렇게 물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고 믿습니까, 아니면 믿지 않습니까?” 리코나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믿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하버마스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입니까?” 리코나는 계속해서 다른 질문을 던졌지만, 하버마스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핵심은 이것이다. 부활의 역사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성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면, 그 외의 추측적 질문들은 결국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변증가 워너 월래스(J. Warner Wallace)는 “나는 무신론자였을 때보다 지금 훨씬 더 답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해 편안함을 느낀다. 질문의 수는 줄었고, 핵심이 아닌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내가 가진 증거는 나를 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어 하는 것 사이의 간격은 이전보다 훨씬 좁아졌다.”라고 말했다.

의심은 지적 문제가 아니라 영적 전쟁이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의심은 단순한 지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영적 전쟁의 일부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던진 질문,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느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원수는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에베소서 6:11),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록 모든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답하지 못한 질문이 남아 있어도,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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