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감수성은 본래부터 열린 마음이나 온화한 인격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성향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견고한 경계를 세워 본 사람에게서, 그 경계의 한계를 자각하는 순간 비로소 시작된다. 바울은 이 점에서 다문화 감수성을 논하기에 가장 역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타자를 배제하는 논리를 누구보다 철저히 내면화한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그 논리가 무너질 때의 충격 또한 깊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선교는 동화가 아니라 번역이었다. 동화는 타자를 기존의 중심 질서로 흡수하는 과정이지만, 번역은 타자의 언어와 삶의 문법을 존중하면서 의미를 전달하는 작업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이방인을 유대인처럼 만들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복음이 그들의 언어로 말해질 수 있도록 스스로의 언어를 조정했다. 이는 전략적 유연성이 아니라, 관계적 존중에서 비롯된 태도였다.
권주은 - 바울의 다문화 감수성
부모님께 가장 자주 듣는 걱정 중 하나는, 아이들이 성경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개념이 너무 어렵고 방대하다는 것이죠. “다섯 살 아이가 죄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린아이가 성경의 위대한 이야기나 하나님의 성품,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명령들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예”입니다. 아이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아이들도 죄인이며, 그들도 용서받고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가정의 문화를 만들어갑니다. 그것이 선을 향할 수도 있고, 악을 향할 수도 있지요. 아침, 점심, 저녁 식사처럼 늘 반복되는 시간을 신호로 삼는다면, 그 시간을 통해 습관, 즉 영적 훈련의 습관을 기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자녀가 평생 예수님을 찾고, 성경을 배우며, 말씀을 사랑하는 삶의 리듬을 익힐 수 있지요. 분주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나아가고, 가족과 함께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니카 쿨리 - 아이가 성경을 사랑하고 가까이하게 하라
방언은 받으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은사이지만, 받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방언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성령님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님은 어떤 특별한 능력을 받을 때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이미 믿는 자 안에 오셔서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은사보다 먼저, 성령님은 한 인격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방언은 성령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조건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여러 모습 중 하나입니다. 방언은 성령님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험이나 증거가 아닙니다. 방언한다고 해서 성령님이 더 계신 것도 아니고, 방언을 못 한다고 해서 성령님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받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그럼에도 방언을 사모하게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방언은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은사이며,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도록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받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구하고, 어떤 자리에서 기다리느냐입니다.
박예영 - 방언 어떤 일이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