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지키며 연합하는 길: 기독교 에큐메니즘의 바람직한 방향

존 스톤스트리트 회장.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존 스톤스트리트 회장의 기고글인 ‘기독교 에큐메니즘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모습은 무엇인가’(What constructive ecumenism in Christianity looks like)를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스톤스트리트 회장은 콜슨 기독교 세계관 센터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신앙과 문화, 신학, 세계관, 교육 및 변증법 분야에서 인기 있는 작가이자 연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최근 Religion Unplugged의 한 기사에 따르면 로마 가톨릭 관계자들이 기독교 연합의 토대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Augsburg Confession)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회사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 신앙고백은 1530년 독일 종교개혁 시기 필립 멜랑히톤(Philip Melanchthon)이 독일의 개신교 지도자들을 대표해 작성한 문서다.

당시 이 문서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와 로마 교황청에 의해 거부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루터교회의 핵심 교리 문서로 남아 있으며 지난 500년 동안 여러 개신교 신앙고백의 중요한 토대가 되어 왔다.

가톨릭이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일종의 상징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마치 펩시가 소비자에게 코카콜라를 마셔보라고 권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평가도 있다. 기사에 인용된 한 예수회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개혁의 기여를 인정하고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기독교 연합의 하나의 모델로 받아들인다면, 복음이 필요한 이 시대 속에서 교회의 선교와 일치된 증언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움직임이 단순한 상징적 발언에 그칠지 실제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교회 일치 운동(에큐메니즘)은 오랫동안 복잡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왔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더 큰 연합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실제 문제는 구체적인 내용에 있다. 교회의 일치를 위한 노력은 결코 도덕적 타협이나 복음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반대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태도 역시 극단적인 배타성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특정 교단이나 전통만을 절대화하면 개인적 선호가 교리가 되고,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요소들이 구원의 조건처럼 취급될 수 있다. 이 경우 기독교 신앙은 복음의 진리나 이단에 대한 분별보다는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지키는 문제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또 다른 위험은 ‘연합’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가 무시되는 경우다. 척 콜슨(Chuck Colson)은 이를 “무른 에큐메니즘(Mushy Ecumenism)” 혹은 “쉬운 에큐메니즘(Easy-going Ecumenism)”이라고 불렀다. 20세기 일부 주류 교단에서 나타났던 현상처럼, 모호한 일치를 추구하다가 진리 자체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일부 대중적 복음주의 흐름에서는 교리와 진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가 사랑이 부족한 것처럼 오해되기도 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실제로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구원의 방식, 성찬의 의미와 집례 방식, 예배 형태와 신앙 교육 방식 등 다양한 신학적 차이가 있다. 모든 논쟁이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문제들은 분명히 신앙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콜슨은 2011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앙고백과 교리가 없다면, 그리고 수세기 동안 수많은 신자들이 축적해 온 지혜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종교는 결국 의미를 잃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영원한 목적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다.”

결국 교회의 연합은 진리를 굳게 붙드는 태도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신 연합을 추구하는 태도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랜시스 쉐퍼는 이를 “공동 전선(co-belligerency)”이라고 불렀고, 척 콜슨은 “참호 속의 에큐메니즘(ecumenism of the trenches)”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모든 신학적 문제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더라도,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공동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접근이다.

이러한 접근은 윤리적·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면서도, 반기독교적이고 극단적으로 세속적인 공격에 대해서는 서로 협력해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이 타협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를 향한 논의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마리아에 대한 이해에 있어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양쪽 모두가 동시에 옳을 수는 없다. 진리는 우리의 소속 집단보다 더 중요하다. 건강한 에큐메니즘은 서로 다른 전통 사이에서 진리를 진지하게 탐구할 때 가능하다.

논쟁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G.K. 체스터턴(G.K. Chesterton)은 논쟁이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논쟁(argument)과 다툼(quarrel)을 구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자주 다투는 이유는 제대로 논쟁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논쟁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 놀라울 정도다. 그래서 수많은 다툼이 반복되지만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신학적으로 C.S. 루이스(C.S. Lewis)는 다양한 교단과 전통을 하나의 집 안에 있는 여러 방에 비유했다. 그는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가 아니라 어떤 문이 진짜 문인지 묻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예배 방식이 마음에 드는가?’가 아니라 ‘이 교리가 참된가?’를 물어야 한다.”

결국 타협 없는 건강한 교회 연합은 진리가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하나님께서 특정 집단만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겸손한 태도를 함께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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