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윌 스펜서의 기고글인 '희생양 만들기의 8단계: 지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음모론을 믿게 되는가'(8 steps to scapegoating: How smart people end up believing conspiracy theories)를 2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윌 스펜서(Will Spencer)는 기업가이자 여행가이며 스토리텔러다. 그는 남성들이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 속에서 의로운 권위를 회복하도록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만약 음모론이 단지 사람들이 어리석기 때문에 확산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글은 아마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모론이 실제로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도 이 글은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훨씬 더 복잡한 문제다. 어떻게 지적이고 진지한 사람들이 결국 서로를 적대하게 만드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는지, 그리고 왜 그 길의 끝에서 반유대주의, 즉 유대인을 향한 증오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문제는 필자에게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관찰하며 여덟 단계의 흐름을 정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급격히 진행된다. 이 패턴을 이해하게 되면 비슷한 현상이 다양한 영역에서 반복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 단계는 엘리트 집단의 협력에 대한 인식이다. 오랫동안 주류 언론은 음모론이 무지하거나 악의적이거나 불안정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퍼진다고 설명해 왔다.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음모론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많은 경우 음모론적 사고는 망상에서 출발하기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 시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실제로 글로벌 엘리트 집단이 공유하는 언어와 가치,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예를 들어 매년 프라이드의 달이 되면 전혀 다른 상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동시에 동일한 도덕적 메시지를 사용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코로나19와 같은 공중보건 문제에서도 여러 국가의 정책과 메시지가 유사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누구나 관찰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두 번째 단계는 권력이 추상적이고 얼굴 없는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다. 협력에 대한 인식만으로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로 의도적인 계획인지, 아니면 비슷한 배경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유사한 결정을 내린 결과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책이나 문화, 미디어를 실제로 형성하는 인물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다. 우리는 뉴스 진행자의 이름은 알지만 제작자의 이름은 모른다. 대통령의 이름은 알지만 정책 보좌관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 이렇게 권력은 점점 비인격적이고 관료적인 구조로 인식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구조가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특정 개인을 지목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책임 주체를 찾으려 하기 때문에, 이름을 찾기 시작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기존의 역사적 이야기 구조가 등장한다. 인간은 복잡한 현실을 해석할 때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 틀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혼란을 신들의 이야기로 설명했고, 중세 사회는 불행을 악령의 영향으로 이해했다. 현대 사회 역시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이야기 틀은 현실을 해석하는 일종의 개념적 격자가 된다. 새로운 정보는 그 틀을 통해 해석되고, 맞지 않는 정보는 무시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설명이 안도감을 제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현실이 이야기 구조에 맞추어 해석되기 시작한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엘리트 권력에 대한 막연한 인식이 특정 집단, 특히 유대인에 대한 의심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변화는 갑작스럽게 노골적인 증오로 나타나기보다 연관성을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된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이 금융, 법률, 의학, 미디어, 예술, 학문 분야에서 눈에 띄는 존재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조직적인 침투 계획 때문이라기보다 디아스포라 경험, 높은 문해율, 가족 중심 문화, 그리고 오랜 박해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조건의 결과였다. 특정 분야에서 나타난 성취라는 사실이 왜곡되면서 복잡한 사회 구조가 하나의 집단으로 단순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추상적이었던 권력이 특정 얼굴을 갖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설명이 가능해졌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잘못된 단순화일 수 있다.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분석이 신화로 변한다. 설명은 더 이상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대 사례조차 오히려 음모가 더 정교하게 숨겨져 있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증거가 부족한 것은 음모가 깊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등장한다. 이때 믿음은 검증 가능한 설명이 아니라 스스로를 강화하는 폐쇄적 체계가 된다.
여섯 번째 단계에서는 이러한 믿음이 개인적 설명을 넘어 도덕적 신호가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이전처럼 생각할 수 없다”는 표현은 단순한 주장이라기보다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시가 된다. 이러한 믿음을 공유하는 것은 자신이 순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작용한다. 특히 온라인 중심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러한 정체성 표시는 강한 영향력을 갖는다.
일곱 번째 단계에서는 믿음이 공동체 소속의 기준이 된다.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유머와 밈을 통해 동일한 관점을 공유하는 것이 소속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합의에 동의하는 것이 인정받는 길이 되고, 질문은 비난이나 배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부 젊은 기독교인 남성들이 현실 교회 공동체에서 충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이러한 온라인 공간에서 대안을 찾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는 진실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동일한 관점을 강화하는 구조가 되기 쉽다.
여덟 번째 단계에서는 의심 자체가 배신으로 간주된다.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협하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복잡성을 인정하려는 시도는 의심받고, 희생양 만들기를 거부하면 공동체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결국 외부의 적을 찾던 과정이 내부의 갈등으로 이어지며 공동체 자체가 분열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잘못된 믿음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의 흐름이다. 합리적인 관찰이 의심으로 바뀌고, 의심이 신화가 되며, 신화가 공동체 소속의 기준이 되는 구조다. 이러한 흐름은 특히 온라인 환경 속에서 젊은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사고가 완전히 근거 없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의 제도와 구조 속에는 문제점이 존재하며, 많은 사람들이 제도적 불투명성이나 엘리트 집단의 폐쇄성에 대한 불만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설명으로 축소할 때 문제 해결 능력은 오히려 약화된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은 음모론보다 더 깊은 설명 틀을 제공한다. 성경은 악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특정 집단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에베소서 6장 12절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적 세력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거짓 증언을 금하며,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태도를 경고한다(출애굽기 23:1-2, 잠언 17:15).
현실에는 실제로 권력 구조와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비난보다 더 깊은 분석과 분별이 필요하다. 복잡한 현실을 신화로 단순화하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잘못된 적을 설정하면 진짜 문제를 해결할 기회도 사라진다.
거짓에 기반한 공동체는 더 많은 거짓을 요구하게 된다. 반대로 진실을 향한 공동의 노력은 때로 더 큰 용기를 요구하지만, 결국 공동체를 분열이 아니라 성숙으로 이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순진함도 아니고 검열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더 깊은 사고와 더 정확한 분별이다. 성경적 세계관 속에서 악의 본질을 이해하고, 질문을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질문을 배신으로 취급하는 공동체는 진리를 추구하기보다 동조를 강요하는 집단이 되기 쉽다.
그리스도인은 그보다 더 나은 길로 부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