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스리랑카에서 추진 중인 새로운 반테러법을 둘러싸고 종교적 소수자 인권 침해 우려가 제기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고 17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스리랑카 기독교계는 새 법안이 기존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며 소수 종교 공동체와 시민사회 활동에 대한 제약을 경고했다.
스리랑카 복음주의기독교연맹(National Christian Evangelical Alliance of Sri Lanka, NCEASL)은 최근 발표한 성명을 통해 법무부가 2025년 말 공개한 ‘국가테러방지법(Protection of the State from Terrorism Act, PSTA)’ 초안이 약속된 개혁 수준에 미치지 못하며, 민족·종교적 소수자에게 불균형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독교연합 측은 새로운 법이 국가 안보 강화를 명분으로 종교 활동과 시민사회 활동을 제한하는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법 개정 과정에서 보다 명확한 기준과 인권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논란은 과거 스리랑카에서 시행된 테러방지법(Prevention of Terrorism Act, PTA)이 장기간 인권 침해 논란을 불러온 전례와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장기 구금과 인권 침해 논란…기존 테러방지법의 역사
CDI는 스리랑카 테러방지법은 1979년 정부와 타밀 분리주의 세력 간 내전 상황에서 임시 조치로 도입됐다가 1982년 영구 법률로 전환됐다고 밝혔다. 이후 40여 년간 보안 당국에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며 장기 구금과 자의적 체포 등 인권 침해 논란을 지속적으로 낳았다.
해당 법은 기소 없이 최대 18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인권단체들은 이 과정에서 고문을 통한 허위 자백 강요와 소수 공동체에 대한 표적 수사가 이뤄졌다고 지적해 왔다. 특히 타밀족과 무슬림 공동체가 주요 적용 대상이 되면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심화됐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실제 사례로는 평화를 주제로 시를 발표했던 무슬림 시인 아나프 자짐이 2020년 극단주의 조장 혐의로 체포돼 재판 없이 19개월 구금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전문가 검증 결과 그의 작품에서 선동적 내용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결국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장기간 법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또한 인권 변호사 헤자즈 히즈불라는 2019년 부활절 테러와의 연관성 의혹으로 체포돼 22개월간 구금됐으며, 이후 혐의가 표현 관련 문제로 변경되는 등 수사 과정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일부 증인들이 강압적 진술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하는 등 법 적용 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이처럼 스리랑카 테러방지법은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공동체 전반에 불신과 위축 효과를 초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금 이력이 있는 인물들은 석방 이후에도 금융 활동 제한과 사회적 배제 등 지속적인 불이익을 겪는 사례가 보고됐다.
기독교 포함 종교 소수자 영향…종교 자유 침해 우려
CDI는 스리랑카에서 테러방지법 집행의 주요 대상은 타밀족과 무슬림 공동체였지만, 기독교 공동체 역시 다양한 형태의 압박과 공격을 경험해 왔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 국제종교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교회 공격, 목회자 협박, 예배 방해 등 기독교 관련 사건이 90여 건 이상 기록됐다. 일부 사례에서는 지역 당국이 종교 자유 보호보다 다수 종교 집단의 입장을 우선시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2019년 부활절 폭탄 테러 이후에는 종교 공동체 전반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당시 2천 명 이상이 체포됐으며 상당수가 무슬림 신자로 분류됐다. 이후에도 종교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확산되며 종교 간 갈등이 심화됐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최근 조사에서는 2023년 말부터 2024년까지 종교적 정체성을 이유로 한 공격 사건 124건이 기록됐으며, 이 가운데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독교 지도자에 대한 법 적용 사례도 논란이 됐다. 2023년 12월 콜롬보 소재 교회 지도자인 제롬 페르난도 목사는 설교 내용이 불교 감정을 자극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법원 체포 자제 명령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진행됐으며, 기독교 단체들은 표현의 자유와 종교 자유 침해 가능성을 제기했다.
기독교계는 이 같은 사례들이 종교 표현이 형사 처벌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하며 법적 기준의 명확화를 요구했다.
새 반테러법 PSTA, 개혁인가 반복인가
스리랑카 정부는 기존 법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국가테러방지법(PSTA)을 추진하고 있다. 초안에는 시위, 시민운동, 노동 활동 등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이 포함됐으며 집회 금지 권한 일부가 삭제되는 등 일부 변화가 제시됐다.
그러나 인권단체와 기독교계는 이러한 변화가 근본적 개혁이 아닌 형식적 수정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새 법안 역시 용의자를 최대 1년까지 기소 없이 구금할 수 있으며, 국방부 명령에 따른 구금에 대해 사법적 통제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한 ‘공중을 위협하거나 정부에 특정 행동을 강요하려는 행위’를 테러로 규정하는 등 광범위하고 모호한 정의가 유지되면서 시민운동과 인권 활동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새 법안이 국제 인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평가하며, 자의적 구금 방지와 고문 금지, 적법 절차 보장 등 핵심 요건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독교 단체 “종교 활동·시민사회 위축 우려”
스리랑카 기독교연합은 새로운 반테러법이 종교 활동, 인도주의 활동, 시민사회 조직 운영을 국가안보 명분 아래 제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법 적용 기준이 모호할 경우 소수 공동체가 자기 검열을 강화하고 표현을 자제하는 ‘위축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해외 거주 스리랑카 시민에게도 법을 적용하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인권 침해 사례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기독교연합은 진정한 국가 안보는 기본권 보호와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기존 테러방지법 폐지와 새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국제사회 압박과 향후 전망
유럽연합(EU)과 유엔 인권기구는 스리랑카 정부에 지속적으로 법 개정을 요구해 왔다. 유럽연합은 무역 특혜 유지 조건으로 장기 구금 기간 축소와 인권 보호 조치를 요구했으며, 유엔 역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법적 정의와 절차 마련을 촉구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인권 보호와 법 개혁을 약속했지만 실제 변화는 제한적이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까지도 기존 테러방지법에 따른 체포 사례가 발생하면서 개혁 의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스리랑카 기독교계는 국가 안보와 민주적 자유는 상충되는 가치가 아니라며, 법 개정이 소수 공동체 권리 보호와 민주주의 원칙을 동시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