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 정권이 러시아정교회를 활용해 다른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증언이 국제사회에서 제기됐다고 10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러한 억압은 우크라이나와 점령지에 국한되지 않고 러시아 국내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 3일 열린 국제종교자유정상회의(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Summit)에서 우크라이나 인권 활동가와 종교 지도자들의 발언을 통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참석자들은 러시아 정부와 러시아정교회가 긴밀하게 결합해 종교를 국가 통치와 전쟁 동원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인권단체 ‘트루스 하운즈(Truth Hounds)’의 공동대표인 드미트로 코발은 러시아가 러시아정교회를 활용한 종교 통제를 이미 2014년 동부 우크라이나 점령 초기부터 실행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러시아 분리주의 세력 가운데 ‘러시아정교군(Russian Orthodox Army)’이라는 조직이 존재했으며, 이 조직이 러시아정교회와 제도적으로 연결돼 있었다고 밝혔다.
코발은 이 무장 조직이 이른바 ‘러시아 세계(Russian world)’라는 이념과 새로운 제국주의 구상을 실현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통해 교회가 단순한 종교 기관을 넘어, 러시아 제국 재건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방식이 명확히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정교군은 2014년 도네츠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과 교전한 친러 분리주의 준군사 조직으로, 이후 다른 무장 부대에 흡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발은 이 조직이 점령지 주민들과 러시아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고, 크렘린의 목표를 위해 희생하도록 선동하는 기능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코발은 러시아정교군이 사용한 언어에도 주목했다. 그는 이들이 전쟁을 ‘성전’ 또는 ‘십자군’에 비유하며, 그 적을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서유럽과 미국까지 확장해 인식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담론은 러시아의 전쟁이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서방 전체와의 문명적 대결로 포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코발은 러시아 점령이 종교 자유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사회의 강한 저항과 러시아와의 영토 타협을 거부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싸우는 대상은 영토가 아니라 사람이며, 점령이 지역 주민의 자유와 신앙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지난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분명히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2017년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 보고서를 언급하며, 러시아가 자국 내 종교 탄압에 그치지 않고 해외로 종교 박해를 수출해 온 국가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코발은 점령지에서 벌어지는 종교 억압이 러시아 본토에서의 억압을 위한 시험장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코발은 러시아가 점령지에서 시행한 통제와 탄압 방식을 국제적으로 인정된 러시아 영토로 확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4년 이후 점령지에서 관찰된 현상이 현재 러시아 전역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억압 전략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대응 방안과 관련해 코발은 러시아의 공식 교회 지도부와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 정부와 교회 지도부가 서방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라이나의 종교 자유 억압을 주장하는 담론을 확산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는 러시아 내부에서 종교의 자유가 더욱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는 점을 국제사회가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회의에서 ‘이스턴 인권 그룹(Eastern Human Rights Group)’의 비라 야스트레보바 국장은 러시아정교회가 청소년 군사화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러시아정교회가 운영하거나 연계된 여러 청소년 프로그램과 준군사 클럽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무기 사용을 훈련시키고, 증오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념을 주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스트레보바는 이러한 교육과 훈련이 우크라이나 영토 재통합과 종교 자유 회복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돼야 할 심각한 장기적 위험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군사화와 이념 주입이 향후 지역 안정과 신앙 공동체 회복에 중대한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정교회 사제이자 현재 유럽에 거주 중인 안드레이 코르도치킨 신부도 증언에 나섰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공개서한에 공동 서명했다는 이유로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으로부터 제재와 직무 정지를 당한 인물이다.
코르도치킨 신부는 크렘린이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청을 선전 도구로 활용하는 수준이 공식 기도문에까지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는 2022년 9월 도입된 공식 기도문이 형식상 기도문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당 기도문이 우크라이나를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러시아를 침략자가 아닌 외부의 적대 세력에 의해 위협받는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도문의 핵심 메시지가 화해나 평화가 아닌 ‘승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코르도치킨 신부는 한 사제가 기도문을 낭독하던 중 ‘승리’라는 표현을 ‘평화’로 바꿔 읽었다가 성직 박탈 처분을 받았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이 사건이 러시아정교회 내부에서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가 얼마나 강하게 억압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대변인이 해당 징계에 대해 “교회는 군대와 같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성직자들도 서약을 어길 경우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발언한 점을 언급했다. 코르도치킨 신부는 이러한 발언이 교회 스스로를 준군사 조직처럼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최근 키릴 총대주교가 러시아의 국가적 합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을 ‘조국의 배신자’로 규정한 발언도 회의에서 언급됐다. 코르도치킨 신부는 ‘조국 배신’이 더 이상 도덕적 표현이 아니라 형사 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법적 개념이라는 점에서, 교회와 국가가 결합된 억압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러시아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종교 통제와 억압이 단순한 국내 문제를 넘어 국제 종교 자유 질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러시아정교회와 국가 권력이 결합된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고, 점령지와 러시아 본토에서 벌어지는 종교 자유 침해에 대해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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